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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pr 25. 2022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을지로 산수갑산]

가장 서민적인, 가장 세계화된 음식. 순대

농사를 짓으며 곡물을 주식으로 섭취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육식을 통해서만 섭취가 가능한 단백질, 철분, 지방 등을 한 번에 제공해 줄 수 있는 [순대]와 같은 음식은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생겨날 수밖에 없던 그런 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치 옛 조상들에게는 '종합 영양제'같은 그런 역할을 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동물의 내장에 피와 고기 등을 주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 많은데, 

돼지의 내장과 피, 그리고 오트밀을 넣고 익히는 영국의 '블랙 푸딩(Black Pudding)', 

양의 위에 채소와 곡식을 넣은 스코틀랜드의 해기스(haggis), 프랑스의 부댕 누아(Boudin Noir), 그리고 스페인의 모르시아(Morcilla) 등이 바로 그런 종류의 음식들.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순대와(우리의 관점에서) 비슷한 재료와 형태, 그리고 요리방법을 가진 음식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순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화된 '인터내셔널 푸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소개할 집은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순대집 중의 하나인 을지로 [산수갑산].

흔히 '경치가 좋은 곳, 또는 풍경'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산수갑산'이라는 말은 예전 교외의 식당 상호명으로도 많이 쓰였는데, 실상 그 속뜻을 알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백두산 밑의 '삼수'와 '갑산'이라는 지명을 한데 붙여 표현한 [삼수갑산]의 오기이며, 실제의 뜻은 '춥고 궁핍한 오지 지역'을 뜻하는 것이니 우리네 식당들이 추구했던 이미지와 그 쓰임새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수갑산]은 순대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번 들러야 할 그런 노포이다.

아름다운 경치는 없으나, 이 집에서 내놓는 순대는 '아름답다'라는 단어로 감히 한정 지을 수 없는 그런 수준의 음식이기 때문. 이곳은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주메뉴로 내놓는데, 그 맛이 우리가 시장에서 사 먹는 일반 '비닐' 순대와 비교하기엔 너무나 훌륭하다.



이북 음식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순대는 크게 세 종류가 있는데, 바로 고기순대, 명태순대 그리고 아바이 순대이다.  '아바이 순대'란 함경도에서 많이 먹던 음식으로 대창에 찹쌀밥과 다른 순대 소의 재료를 넣고 만들어 내는 음식.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오래된 아바이 순대 노포이다.


많은 손님들이 이 집에선 '순대 모둠'을 주문하는데, 순대 모둠에는 술국과 같은 국물은 덤으로 내주기 때문.

한 접시 가득 담긴 순대와 오소리감투, 막창, 머리 고기 등을 보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손님들이 많이 찾아 각각의 재료들의 선도 또한 나무랄 데 없다. 특히 순대에 함께 나오는 '돼지 간'을 보면 재료의 선도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잡내 없고 부드러운 간은 쉬이 찾을 수 없다.


첫 시작은 반드시 오소리감투나 머리 고기로 시작하길 권장한다.  

막 나온 대창 순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기 때문. 대창 순대는 한 김 식은 후 먹어야 더 맛있는데 대창의 질감이 열을 품고 있을 땐 식감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 고기나 오소리감투를 먼저 먹어보고, 소주 한잔 들이키고 난 후, 음식이 몸 안의 열기를 조금 빼내었을 때, 그때 맛보길 권한다. 


대창 순대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술꾼들에겐 쫄깃한 식감과 포만감을 주는데 이만한 안주가 없다. 대창 순대를 입 안에 넣고 씹을 때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 쫄깃함과 부드러움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가 없는 대창 순대만의 매력이다. 그 식감이 가시기 전에 찹쌀과 선지의 식감이 올라오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함께 접시에 올려진 오소리감투나 편육의 기세도 무시할 수 없다. 조그만 접시 위에서 돼지 한 마리가 모두 올라와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이랄까.  

 


음식의 종류가 순대와 순댓국이다 보니 손님들의 연령층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여러 방송에서 소개한 적이 있어 6시 정도만 되면 이삼십 대 젊은 층들의 모습이 웨이팅 줄에 꽤 많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가게를 찾았던 손님들은 거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었는데, 이제는 젊은 고객들과 함께 섞여 각자의 하루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아마도 이런 부분이 오래된 노포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고.  


[메뉴추천]

1. 1인 : 순대 정식 + 소주 1병

2. 2인 이상 : 시작은 순대 모둠 하나와 소주 그리고 추가.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시간이 넉넉하다면 저녁 6시 이후보다 5시에서 5시 반경에 찾기를 강추.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이다.

2. 2차는 너무나 다양하다. 을지로 OB베어부터(2022년 4월 철거되었다), 인현시장, 골뱅이 골목 등등 술에 취하고 싶다면,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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