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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Sep 08.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경남 마산 반달집]

40여 년 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돼지 석쇠불고기 집, 반달집.  

나라도 흥망성쇠가 있듯이, 도시도 그런 흐름들이 있는  같다.

뜬금없이 웬 나라와 도시의 흥망성쇠이냐 싶겠지만, 오늘 이야기는(너무나 안타깝지만) 우리 행정구역에서는 사라져 버린 도시(2010년 7월 1일 진해시와 함께 창원시에 통합), 경남 마산에 있는 참 좋아하는 노포를 소개할 예정이기 때문. (아직도 마산이 고향인 사람은 창원이라 하지 않고 마산이라 한답니다.)


마산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거주해 온 곳이라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래도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것은 통일신라 시대 말 국제적인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들과 흔적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그가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 마산 지역에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월영대'는 '월영동'이라는 동네에 아직 남아 있으며, 인근의 완월동(玩月洞), 반월동(半月洞) 등의 동명도 월영대에서 기원한다.

이렇게 갑자기 마산의 동네 이름을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노포가 바로 마산 반월동에 있는 오래된 노포 '반달집'이기 때문.


이 집의 이름은 동네 이름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반월동의 '월'자를 우리말 '달'로 훈차한 것.

1953년에 처음 문을 연 이곳은 마산 어시장에서 댓거리(경남대학교 앞)로 넘어가는 길의 중간 정도에 있다. 이 지역 원주민들이 구마산(마산의 구도심)이라 부르는 지역.


이 집은 나도 마산에 살던 시절엔 두어 번 밖에 못 가본 곳이지만 막상 마산을 떠나고 난 후 요즘은 마산에 내려갈 때마다 찾게 되는 집이 되어버렸다. 흔히들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땐 그 가치를 모르다, 막상 곁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 가치를 알게 된다'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집이 내게는 딱 그런 집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 업무상 출장으로 마산에 내려가 상경하기 전, 부러 이 집을 찾아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평일 낮 11시경 즈음 막 영업을 시작한 시간이라 그리 붐비지 않았지만,

해가 저물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소주 생각이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할 시간 즈음에는(우린 보통 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술시'라고 하기도 한다) 웨이팅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집의 메뉴는 우직한 '경상도 싸나이'처럼 단일 메뉴.

연탄에 초벌구이를 해서 내는 돼지 석쇠불고기가 바로 그것인데 참 매력적인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말로는 국내 최초로 '돼지 석쇠불고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아 진위를 가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이 집에서 가족 식사를 하고 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미 그 시절에도 연탄 석쇠구이를 했던 집임에는 틀림없다.  

초벌구이 전, 석쇠에 담긴 돼지 불고기


돼지고기에서 불고기나 양념구이로 가장 많이 쓰는 부위는 전문용어로 '후지'라고 부르는 돼지 뒷다리 살이다. 돼지의 뒷다리는 많이 움직이고 자주 활용하는 부위이다 보니 근육이 많고 기름이 적어 식감으로는 조금 뻑뻑한 느낌이 나지만, 양념을 하고 불에 구웠을 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변하는 부위이다. 반달집의 고기도 내가 추측엔 후지살로 만든 전형적인 돼지불고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아니 어쩌면 이 집이 요즘의 많은 돼지불고기 집의 기준일수도 있다)


요즘의 고깃집들과 달리 오래된 불고기 집의 양념은 담백하게 진하지 않은 곳이 꽤 있다.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입맛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입맛과는 달리, 오래된 음식점들은 자극적인 양념보다는 재료에 적정한 생기를 주는 정도의 모양을 내거나, 원재료의 맛으로만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족한 2%' 정도의 맛을 끌어올리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써의 양념이 역할을 한정 지었던 곳이 많았기 때문.

 

이곳 반달집의 돼지불고기도 그런 오래된 노포의 모습을 잘 지켜내고 있는데, 요즘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이게 도대체 뭔 맛이야'라고 의아해 할 수도 있는 부분이 되겠다.


석쇠 한 판(2인분)         /      양념이 참 연하다. 최소한의 간장과 고추가루 등으로만 만들어 낸 작품
이런 비주얼을 가진 돼지불고기의 유혹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다.

잘 달궈진 주철판에 고기를 올리면 마치 빗소리를 듣는 듯, 고기 굽는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사방으로 튀는 양념과 기름마저도 너끈히 담을 수 있는 포용력마저 생기는 듯하다. 집게를 든 손이 무언가에 쫓기듯 주철판 위에서 눈치를 보며 어슬렁 거린다. 조금씩 고기에 불기가 스며들고, 불향이 조금씩 피어오르면, 젓가락 집어 들 시간도 아까운 듯 집게로 한 움큼의 고기를 집어 입에 넣는다.


일단 순수한 불고기로만 한 입.

그리고 조심스레 상추를 손 위에 펴고 고기와 새우젓을 올리고 또 한 입.


차를 가지고 온 출장이라 소주 한 잔을 못하는 것이 이리도 아쉬울 줄이야.

이 안주라면 낮술 한잔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스케줄을 잘못 잡은 내 탓을 해야지 누구 탓을 할까라고 체념한다.


다시 고기 몇 점 입안으로 밀어 넣으니 기억 속 저편으로 묻어두었던 상념들이 연이어 떠 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인근 대학교 앞 시장통 떡볶이 집에서 소주를 나눠 마시던 옛 친구들의 얼굴도,

나와 비슷한 연배라던 무학소주 회장의 딸은 원 없이 소주는 마시겠지 하는 아무 소용없는 상상도 공유하던 친구들과의 그 시간들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흐르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먹어버린 나이도 만만치 않아, 예전처럼 아무 조건 없이 무작정 만나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은 지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없이 많은 변하는 것들 속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 집의 석쇠 불고기 맛인 듯하다.


참고로 요즘 좋은 고깃집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보는 몇 가지 판단 기준이 있다.

 
1. 고기는 물론 좋은 녀석을 써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일단 좋은 고기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입이

    금세 반응한다.  


2. 두 번째는 찬도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말 저가의 싸구려 중국산 김치나 내놓는 집이라면 한번 고민을

    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게 내 판단. 중국산 김치도 좋은 김치가 굉장히 많다. 저렴한 것만 찾으면서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니 엉망인 음식을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찾기 힘들지만, '찬모'(주방에서

    반찬만 전문으로 만드시는 분)를 별도로 고용해서 찬을 만들어 내는 집도 믿음의 지수는 올라간다.


3. 또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고깃집이라면 당연히 나오는 마늘과 새우젓을 볼 것.

   마늘을 잘 다듬어서 내는 곳은 괜찮은 음식을 내는 집일 가능성이 많다. 그만큼 식재료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식당에서 마늘 다듬는 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을 요하는 일인지 일해

   본 사람은 안다) 새우젓도 좋은 퀄리티의 제품을 쓰는 곳이 대체로 괜찮다.

 

4. 특히 여름에는 상추도 판단의 기준이 되는데, 내 경우에는 상추 인심을 보는 편이다.

    야채가 많이 나오는 여름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뜨거운 날이 계속되면 상추가 녹아내려 가격이 오르고

    비가 많이와도 상추가 물러져 가격이 오른다. 참고로 불과 한 달 반 전까지만 해도 상추 10kg 1박스에

    최고가 22만 원을 찍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시기에도 손님에게 흔쾌히 상추를 내는 곳이라면 내 경우에는

    잊지 않고 찾아간다. 정말 괜찮은 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할까?  


마늘 꼭지를 다 제거하고 편으로 썰어낸다. / 새우젓은 전체적인 색상과 형태가 선명한 것들이 좋다.

물론 위의 기준들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런 기준을 가지고 찾는 집들에서는 내 경험상 실패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돼지 석쇠불고기 2인분을 금세 해치우고, 된장찌개까지 추가로 주문하여 바닥을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선다. 여전히 소주 한잔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있다.


장거리 운전을 바로 하기에 부담스러워 인근 가포의 카페를 찾아간다. 마산 앞바다에 조성된 인공섬의 거대함에 한번 놀라고 그 인근 풍경에 다시 한번 더 감동받는다. 어릴 적 소풍장소로 자주 가던 돝섬과 마산 앞바다를 눈에 담으며 나름 짧은 여행기분도 낸다.


이제 다시 집으로 오면 언제 또 이 집의 고기를 먹게 되려나 하는 아쉬움도 점점 커진다.

이곳 반달집은 내게는 십 대의 추억이 남아있는 그런 집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돼지 석쇠불고기 1판(2인분)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돼지 석쇠불고기 3~4판 + 소주(좀 많이 먹어요 제가)

3. 3인 이상 방문 시 : 돼지 석쇠불고기 3판 이상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시장통 골목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기는 힘드나, 가게 바로 옆 전용주차장이 갖춰져 있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자.

2. 내 경우에는 혼자서 3판까지도 먹어본 기억이 있다. 솔직히 예전보다 양은 좀 줄어든 편이긴 하다.

3. 여기서 1차 후, 인근 마산어시장(마산장이 열리던 곳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에서 2차로

    회를 먹을 수 있으며, 마산 어시장의 복국 거리도 굉장히 유명하다.

3. 마산 어시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산 아구찜 거리와 통술골목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4. 예전 마산에 유일하게 있던 해수욕장으로 가포해수욕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카페 등이 모여있는 곳으로

    변모했다.(해수욕장은 폐쇄) 고기를 먹은 후 커피 한잔의 여유도 나쁘진 않다.

5. 구마산의 중간에 위치하여 위에서 언급한 마산 어시장에서의 2차 술자리나 가포 유원지에서의 커피 한잔,

    마산 오동동 아구찜 골목, 통술 골목 등에 접근성이 좋다.

6. 마산 앞바다를 전망할 수도 있어 지리적 이점도 나쁘지 않다. 마산 여행 또는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경남대학교 앞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 월영대를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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