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공허

이루어졌는데도 비어 있던 이유

by 하얀 오목눈이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이 이루어졌으니까.

기다리던 순간이니까.

이제는 안도해도 되니까.


그런데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기쁨은 잠깐 머물다

금세 사라졌고,

그 자리에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가 남았다.


나는 그 감정을

한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고,

감사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분명했다.

이루어졌는데도

마음은 가득 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나는 오직 하나의 방향만 보고 있었다.


‘이루어지면 괜찮아질 거야.’

‘거기까지 가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그 믿음 하나로

불안도, 의심도, 외로움도

미뤄 두었다.


그래서 도착한 순간,

미뤄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공허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속도의 결과였다.


너무 오래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에,

멈췄을 때

비어 보였을 뿐이다.


이루어진 뒤의 삶에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더 높은 곳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무를 이유.


그걸 찾지 못하면

꿈은 금세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기 시작했다.


‘왜 쓰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꿈 이후의 나를 상상했다.


아마도

공허는

다음 계절의 문턱이었을 것이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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