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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몬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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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28. 2023

리노베이션 (3)

  "네, 저놈입니다."

  정범은 둘 사이의 대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말투나 언행을 봤을 때 저 사장으로 보이는 놈이 덩치 아저씨의 상사인 듯했고, 뭔가 정범에 대해서 얘기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사장은 정범을 보며 말했다.

  "너, 일로 와봐"

  사장의 말에 정범은 본인도 모르게 일어나 사장 앞으로 갈 뻔했다. 하지만 정범은 이렇게 마냥 질질 끌려다녔다가는 정말 간도 쓸개도 다 빼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보여주기는 해야겠다 싶었다. 최소한 얕보이지는 않았으면 해서.

  "왜요?"

  그러자 사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주변 덩치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의 아저씨도 험악한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범은 너무 놀라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태연한 척했다. 그러자 사장이 손을 들어 다들 제자리에 있으라는 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 왜는 왜야. 어른이 오라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제깍 와야지."

  그 말에 정범은 조금 자신감이 생겨서 좀 더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가 다리가 좀 아파서요."

  그 말과 함께 정범은 손가락으로 깁스를 한 다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사장의 시선이 정범의 다리로 갔다가 다시 정범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곤 사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다리. 그래 다리를 다쳤지 참. 내가 그걸 깜박했어. 허허허."

  사장은 의자에 눕혔던 몸을 일으키며 담배를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정범의 앞으로와 정범을 내려다보았다. 이에 질세라 정범도 눈을 피하지 않고 사장을 그대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다.

  "다리가 아프면 내가 가야지 그럼. 근데말야, 만약 니 다리가 안 아프면, 아까 내가 불렀을 때 나한테 왔을 거지?"

  정범은 사장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겠다 싶었기에 당당하게 대꾸했다.

  "뭐, 어른이 부르면 갈 수도 있죠."

  그러자 사장이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지 그럼. 근데 있잖아, 내가 왕년에 좀 많이 다쳐봤거든? 그래서 내가 다리 다쳤을 때 어떻게 하면 빨리 낫는지 잘 알아."

  말이 끝나자마자 정범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정범은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파 위로 그대로 넘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은 계속해서 정범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좀 전까지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정범을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그 와중에 정범은 반쯤 누운 상태로 팔을 들어 사장을 주먹을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자 사장이 잠깐 멈추고는 말했다.

  "잡아."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덩치 둘이 곧바로 정범에 달려들어 양팔을 하나식 붙잡아서 펼쳤다. 그러자 곧바로 다시 사장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사장이 주먹을 멈추고는 눈을 크게 뜨고 정범을 쳐다보았다. 

  "아, 맞다. 얼굴은 건들면 안 되는데 깜빡했네?"

  그리고는 계속해서 정범의 복부를 가격했다. 처음에는 억 소리라도 나왔지만, 배에 힘을 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에 계속 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은 옷이 다 흐트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정범을 때렸다. 

  그렇게 영원 같은 1분 여가 지나자 사장은 때리기를 그만두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정범은 너무 맞은 나머지 죽음의 위기를 마주한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너무 뿜어져 나와 아프다고는 느끼지 못했지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런 정범을 놔두고 사장은 다시 자기 의자로 가 앉았다.

  "너."

  사장은 다시 정범을 쳐다보았다.

  "일로 와봐."

  정범은 살고 싶은 마음에 목발이고 뭐고를 떠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반쯤은 기어가다시피 해서 사장 앞으로 가서 섰다. 그러자 사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정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이러면 다리는 빨리 나아. 어때? 내가 니 다리 고쳐준 거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사장의 모습에 정범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정범은 이제 자기가 잘못 걸려도 된통 잘못 걸렸음을 직감했다. 이제는 뭐가 됐든 몸성히 이곳을 나가고만 싶었다.

  사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니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들어~?"

  정범은 다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소파로 가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러자 앞에 앉아있던 덩치 아저씨가 노려보며 말했다.

  "자세 똑바로 해 새끼야."

  "아, 놔둬놔둬. 귀만 열어놔."

  그제야 정범의 온몸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정범은 자신이 지금 아무리 아프더라도 저 사장 놈이 하는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온 신경을 귀로 집중했다.

  "자, 잘 들어봐. 니가 박은 차는 우리 사무소 영업용 차야 영업용 차. 무슨 말인지 알아?"

  정범은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네는 무슨 네야. 그 말인즉슨, 너 땜에 우리가 영업을 못하게 됐다~ 이 말이야."

  그제야 정범은 사장이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러니까 너 땜에 영업을 못한 것에 대한 손해보상도 해줘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정범은 그거 사장의 말에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그래 말귀를 잘 알아먹어서 좋네. 그래서 자… 보자, 우리가 차도 고쳐야 하고 그사이 영업 못한 거에 대한 손실이랑… 그래 그 정신적 뭐시기냐. 그거. 그거까지 해서 얼마더라?"

  "다해서 2500만 원입니다."

  덩치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 2500만 원. 그것만 딱 내놓으면 내가 곱게 돌려보내 드릴게. 요새는 그 뭐냐, 계좌 이체? 그걸로 하면 되더라고. 세상 참 좋아 그지? 계좌 불러줄까?"

  결국 정범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사고를 핑계로 정범에게서 한껏 돈을 쥐어짤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싶은 게, 정범에게는 정말로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도윤에게 지불하려던 돈 800만 원 정도는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도윤에게 차를 산 잔금을 치르면 곧 없는 돈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정범은 일단 이걸로 당장 눈앞의 불을 끄려 했다. 

  "제가, 지금 800만 원뿐이라서요… 죄송한데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덩치 아저씨가 일어나 말했다.

  "씨X새끼야. 시간 달래서 시간 줬어, 안 줬어?"

  그와 동시에 구둣발이 정범의 명치로 날아와 꽂혔다.

  "컥…"

  "야, 그만해라 애 죽겠다."

  사장의 말에 덩치 아저씨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뭐야 지금 없다고?"

  "그게…"

  "나, 말 긴 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결론만 말해 지금 있어, 없어?'

  "어, 없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뭔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정범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사장은 정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첫 번째는 우리 계약서에 사인하는 거야. 별건 아니고 니가 우리한테 2500만 원을. 아니, 아까 800은 있다고? 1700만 원을 빌려서 그걸로 우리에게 갚는 거지."

  역시 사장은 정범에게 사채 얘기를 꺼냈다. 정범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는 좀 양심적인 업체거든? 그래서 이자 같은 거 많이 안 붙여. 달에 10% 복리야. 어때 싸지?"

  사장의 얘기에 정범은 아찔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장은 신나게 얘기를 했다.

  "근데, 요새는 보니까 뭐 순진한 애들 꼬셔먹을라고 첫 달은 이자무료 이런 거 광고를 하더라? 나도 요새 그걸 따라서 너도 첫 달은 봐줄게. 어때?"

  사장의 질문에 정범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도통 오질 않았다. 그러자 덩치 아저씨가 일어나며 말했다.

  "씹X끼야 대답 안 해?"

  "야! 너 왜 자꾸 나랑 얘랑 말하는데 끼어들어?"

  그러자 덩치 아저씨는 바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았다.

  "자, 우리 그 누구야."

  "저, 정범입니다."

  "그래 우리 정범친구. 아니면 두 번째 방법이 있어. 니가 하는 일이 그거라매? 그거 뭐냐, 그, 요새 애들 말로 뭐라 하더라?"

  "호스트요?"

  "그래, 호스트, 호스트. 니가 좀 잘 나간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 들었어. 에이스 급이라매?"

  "…"

  사장은 정범의 턱을 잡고 정범의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말했다.

  "그래, 이 정도 와꾸면 에이스 될만하지."

  사장은 정범의 얼굴을 밀면서 턱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우리 에이스 정범이~. 나랑 일 하나만 하면, 사고고 나발이고 내가 완~~~~전 없던 걸로 하고 봐줄게. 어때?"

  정범은 사장이 진짜 자신에게 원하는 게 바로 이것임을 직감했다. 무언가 범죄에 연루될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만약 거절하면 정범은 골수까지 빨아먹힐 것이 분명했다.

  "어떤… 일인가요?"

  "응? 뭐라고? 하겠다고?"

  "…"

  정범이 대답이 없자, 사장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라고오~~~?"

  "… 하겠습니다."

  사장은 짝짝짝 박수를 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래, 좋아. 젊은 친구 결정이 빨라서 좋네."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별건 아니고, 너 박상미라고 알지?"

  정범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상미 누님이요?"

  "그래그래, 그 상미 누님."

  정범은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긴 알죠."

  "그래 별건 아니고 그 상미누님 유부녀잖아?"

  "…"

  정범은 저 사장 놈이 대체 어디까지 뒷조사를 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자기 직업을 아는 건 그렇다 쳐도 갑자기 상미 누님에 대해 언급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별건 아니고, 니가 자알~설득해서 그 누님 남편 인감을 받아오면 돼. 인감증명서도 같이 오면 더 좋겠네."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시는 거죠?"

  사장은 씨익 웃으면서 정범을 쳐다보았다.

  "그게 궁금해? 깡다구도 좋아 그치?"

  그러자 정범 앞의 덩치 아저씨가 일어나 정범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야,야,야 얼굴은 건들지 말라니까 씁. 쟤 그거 온전해야 일하지 인마."

  "죄송합니다."

  덩치 아저씨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범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 인감도장이랑 그 증명선지 뭔지를 얻어오면 다 끝이라는 거죠?"

  사장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정범을 쳐다보았다.

  "그럼그럼. 그것만 갖고 오면 우리는 이제 영~~~원히 얼굴볼일 없을 거야. 아, 그리고 걱정할 거 하~~~나도 없는 게, 우리가 다 시나리오를 짜놨거든? 너는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돼. 캬~ 얼마나 좋냐 뭐 하는 것도 없이 그냥 2500만 원  버는 거야 너."

  모든 걸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건 그저 구두약속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약속을 받아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결국 정범은 사장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덩치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니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가르쳐 주고 도와줘라. 다시 말하지만 쟤 장사밑천 좀 그만 건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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