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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몬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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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15. 2023

리노베이션 (2)

  "똑똑"

  정범은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온몸과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얼굴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느껴졌다.

  "똑똑"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정범은 안간힘을 써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에어백이 터진 핸들이 보였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삭발한 험악한 인상의 덩치가 큰 아저씨가 잔뜩 인상을 쓰고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정범의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정범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긴 했지만, 좀 불편하다 느껴 일부러 꽤 느슨하게 매고 운전을 했었다. 그 탓인지 사람들이 컴퓨터를 할 때 의자를 타고 내려가 반쯤 누운 자세가 되는 것처럼 정범의 몸도 그렇게 기울어진 상태가 되었었고, 그 상태 그대로 운전을 했었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오른쪽 다리가 핸들 밑에 세게 부딪혔고 그게 지금의 통증으로 이어졌다.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정범은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악!"

  정범은 일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아있던 상미를 바라보았다. 상미도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는지, 에어백에 머리를 대고 움직이지 않았다.

  "똑똑"

  또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범은 몸은 그대로 둔 채 왼손으로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씨X. 뭔 운전을 그따구로 해?"

  정범은 다짜고짜 욕부터 내지르는 아저씨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다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따질 기운도 없었다.

  "119 좀… 불러주세요."

  "119고 나발이고, 뭔 운전을 그따구로 하냐고."

  정범이 아프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정범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이 어디가 크게 다친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었고, 옆에 있는 상미가 계속 깨어나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눈앞의 아저씨가 무언가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는 진작에 사라졌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서 차 밖으로 나가보고는 싶었지만 여전히 다리에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야, 대답 안 해?"

  정범은 일단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얘기했다.

  "죄송… 합니다."

  "하, 씨X.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저씨는 계속해서 욕지거리만 내뱉었다. 정범은 내비게이션을 틀기 위해 꽂아둔 휴대폰을 들어 직접 119에 전화를 걸었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위치는… 미사터널 쪽이에요…"

  금방 출동하겠다는 119의 말에 전화를 끊었다. 전화 통화가 끝나자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너 보험은 있어? 보험 불러 보험."

  정범은 눈앞에 사람이 사고가 나서 다쳐있는데, 계속 욕하며 자기 말만 하는 이 아저씨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은 지금 다친 데다가, 아저씨는 딱 봐도 운동선수처럼 큰 덩치를 갖고 있었기에 무리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저씨는 팔뚝만 봐도 너무 굵어서, 사람 하나쯤은 쉽게 때려죽일 수 있을법해 보였다.

  "보험… 없어요."

  조금 전에 인수한 차니 보험이 있을 리 없었다. 아직 명의도 이전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범은 아직 차가 도윤의 명의로 되어있으니, 자기가 도윤이라고 하고 도윤이 가입한 보험을 통해 배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일단은 도윤이 보험에 들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내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보험이 없어? 아, 오늘 존나 X같네, 씨X. 새끼야, 그럼 돈은? 씨X. 물어줄 돈 있어?"

  가뜩이나 통증에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아저씨가 계속 옆에서 욕하는 통에 정범의 정신은 더욱 혼미해졌다. 정범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말했다.

  "몰라… 씨X새끼야…."




  사고 일주일 뒤, 정범은 낯선 사무실에 소파에 앉아있었다. 9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사무실 안은 벽이고 바닥이고 다 시멘트로만 발라져 있었다. 사무실 문 반대편 벽의 알루미늄 새시로 된 창문이 삐걱거렸다. 창문 바로 앞에는 큰 철제 책상이 놓여있었으나, 그 자리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책상 앞에는 1인용 가죽 소파 1개가 상석위치에, 2인용 소파가 중간의 테이블 옆에 각각 놓여있었다. 2인용 소파 중 한 곳에는 정범이 앉아있었고, 반대편에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의 그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소파 주변으로 그 아저씨 못지않게 험악하고 덩치가 큰 사람 5명이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정범은 가만히 앉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사건 이후 정범과 상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상미는 그저 정신을 잃었을 뿐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하루만 입원하고 퇴원했다. 정범은 오른쪽 허벅지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입원을 했다. 정범이 정신을 잃은 사이 차는 사설 렉카가 끌고 가, 견인비를 내놓으라며 정범에게 계속 전화를 해댔다. 그리고 입원 3일째, 정범과 사고가 났던 아저씨가 비슷한 체구의 덩치 둘을 데리고 정범의 병실로 찾아왔다.

  "너, 돈 있어, 없어."

  역시나 돈얘기부터 나왔다. 정범은 화가 치밀었지만 본인이 뒤에서 박았으니 본인의 과실 비율의 높은 데다가 보험도 없고 물어줄 여윳돈도 없기 때문에 화를 억눌렀다. 어떻게든 상대의 과실비율을 높여서 돈을 깎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이 갑자기 멈추니까 그런 거잖아요."

  정범의 말에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범을 노려보며 말했다.

  "씨X새끼가, 지금 뭐라 그랬냐?"

  그 모습에 정범은 바로 위축되었다.

  "아니, 그쪽이 갑자기 멈춰서 그런 거니까 그쪽 책임도 있잖아요. 나는 보자마자 브레이크 밟았다구요."

  그러자 그 아저씨는 생각 외로 선선히 정범의 얘기를 받아들였다.

  "그래. 그럼 내가 1 니가 9라고 하자."

  그리고는 다시 바로 돈 얘기로 돌아왔다.

  "그럼 차 수리비 90프로는 니가 내. 800 들었으니까, 어디 보자…. 720 내라."

  "뭘 수리를 했길래요?"

  "뭘 수리했는지 말하면 니가 알아? 그리고 나도 다쳤으니까 병원비도 니가 90프로 내고 너 땜에 일도 쉬어야 하니까 일당도 내놔."

  정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뒤에서 박은 정범의 차는 본네트가 다 구겨질 정도로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정작 앞 차는 생각보다 부서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었다. 거기에 아저씨는 사고 3일 만에 병원까지 직접 걸어서 찾아온 걸로 봐서는 다치기는커녕 완전 멀쩡한 상태처럼 보였다.

  "아니, 차 얼마 안 부서졌잖아요. 그리고 아저씨 지금 완전 말짱해 보이는데 무슨 소리예요."

  그러자 아저씨는 정범의 멱살을 잡았다. 정범은 다급히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아저씨의 악력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니가 뭔데. 어? 니가 의사야? 내가 아프다면 아픈거지 새끼가 말이 많아. 그래서 못 물어주겠다는 거야 뭐야."

  아저씨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정범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정범이 아저씨의 팔을 두드리자 그제야 멱살을 풀어주었다.

  "콜록, 콜록. 드릴게요. 콜록. 드릴 테니까 말로 하세요."

  "그럼 말귀를 잘 알아먹으셨어야지."

  막상 말은 저렇게 하긴 했지만, 정범의 수중에 딱히 돈이 있지는 않았기에, 돈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세요. 일주일 내로 마련해 볼게요."

  "뭐? 일주일? 시간이 필요해? 너 솔직히 말해 새끼야. 돈 없지?"

  아저씨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금방이라도 정범을 때리려는 듯이. 그러자 아저씨 뒤의 두 사람이 아저씨에게 작게 말했다.

  "형님. 그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순간 멈칫하더니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주일. 딱 일주일 준다. 그 안에 준비 못하면. 아니다 준비해 놔."

  그 말을 남기고 아저씨 일행은 병실을 나섰다. 그 직후 정범은 바로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돈을 빌리기 위해서. 하지만 정범의 인간관계라는 게 그리 넓지도 않거니와 다 표면적인 관계들 뿐인지라, 돈 얘기를 꺼내는 순간 전화가 끊어지기 일쑤였다.

  '도윤이. 도윤이는 빌려주겠지.'

  하지만 왜인지 도윤은 아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 차 값을 입금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정범은 어디서도 돈을 구하지 못했고, 그 사이 시간은 하루하루 착실히 지나갔다.



  아저씨가 병실에 방문했던 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다시 아저씨가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은 정범의 퇴원일이기도 해서, 정범은 퇴원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아저씨는 정범을 보자마자 외쳤다.

  "야, 돈!"

  "…"

  "새끼야, 돈 없지?"

  정범은 그저 시선을 피하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이제 끌려가서 두들겨 맞든, 장기가 팔리든 좋지 않은 일만 남았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었다.

  "짐 챙겨서 따라와."

  일단 한대쯤 맞을 것을 각오했던 정범은, 아저씨의 얘기에 놀라 물어봤다.

  "어디로요?"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따라오라면 곱게 따라와."

  정범은 부랴부랴 목발을 짚고 일어나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같이 따라온 덩치 두 명이 정범의 뒤에서 따라갔다. 마치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병원 정문을 나서자 까만 그랜저 한대가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뒷 범퍼가 찌그러져 있는 걸로 봐서는 저번에 정범이 박은 바로 그 차인 듯했다.

  '씨X 범퍼만 조금 찌그러졌는데, 뭔 몇백만 원이야. 개 같은 새끼…'

  정범은 속으로 계속 욕을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범을 따라오던 두 덩치는 정범을 붙들고 뒷좌석에 앉았다. 정범은 두 덩치 사이에 낀 데다가 다리마저 깁스를 한 상태라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한 마디라도 했다간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을 한껏 움츠려서 껴앉았다.

  '몸이 성치도 않은데 몸으로 때우라니. 장기라도 내다 팔 셈인가.'

  정범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려서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 정범은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나 주택들이 있는 것들이 보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기매매 같은 불법적인 일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위치로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정범은 차에서 내려 덩치들에게 끌려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니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위에는 자그마한 간판이 걸려있었다.

  '캐피탈? 여기 사채 빌리는데 아냐? 아 씨X. 진짜 돈 뜯어낼 생각이구나.'

  아저씨가 문 옆의 벨을 누르자 인터폰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오셨슴까?"

  "나다."

  그러자 철커덩하고 자물쇠를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이 아저씨를 보며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어, 사장님은?"

  "아직 안 오셨습니다."

  아저씨가 먼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다. 정범도 덩치들에게 이끌려가 소파에 앉았다. 아저씨는 그저 정범을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정범은 앞으로 자기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두렵기만 했다.

  '사채를 쓰게 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더니, 본인이 사채업자였을 줄이야. 도윤이가 사채 썼을 때 보니까 이자가 미친 듯이 불어나던데. X됐다'

  정범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벨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 중 한 명이 문 앞으로 걸어가 수화기를 들고 물었다.

  "어떻게…"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인터폰에서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덩치는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작고 왜소한 남자가 들어왔다. 진짜 작고 왜소한 게 아니라 정범 주변에 있는 덩치들에 비하면 작고 왜소해 보일 뿐 그 남자도 평균 이상은 되어 보였다. 목에는 금목걸이를 하고 팔에는 금팔찌를 차고 있었다. 위에는 옷깃을 세운 골프웨어를 입고 아래는 신사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눈은 작은 데다가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긴 했으나, 눈빛은 또렷하면서도 매우 차가웠다.

  "오셨습니까!!"

  사무실 안의 정범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남자는 인사도 받지 않고 그대로 철제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앞에 털썩 앉아 곧바로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 한두 모금 빨고는 연기를 후 내뿜고는 정범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이어 아저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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