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ovation : 건물을 구조체의 변경 없이 시설물의 노후화를 억제시키고,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외관이나 내부 일부 혹은 전체를 개ㆍ보수하거나 증ㆍ개축하는 것
정범은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며 횡재를 불렀다. 하지만 좋은 티를 내기는 싫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표정을 감췄다. 그리곤 나름 표정관리를 하며 되물었다.
"정말 내가 사도 돼?"
"그래 뭐 어차피 나는 쓸 일이 없어서."
정범의 친구인 도윤은 전형적인 카푸어였다. 차는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녔지만, 돈이라고는 쓰고 죽을래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단칸방 월세라도 살법했지만, 고작 그만큼의 돈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잠도 차에서 자는 생활을 해왔다. 그런 도윤이 정범에게 차를 헐값에 넘기겠다고 한 것이다.
"아니, 근데 이 가격이면 네가 산 가격의 반도 안되는 거 아냐? 괜찮겠어? 너 차 없으면 어디서 살라고?"
정범의 우려에 도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오히려 이 차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 빨리 눈에서 치워버리는 게 낫겠더라고. 안 그래도 엄마한테도 연락했어. 본가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도윤은 무리를 해서라도 차를 사고 차 할부금과 유지비를 갚기 위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해왔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생활비까지 충당하는 것은 부족해서 부모님께 손을 벌렸으나, 차를 사서 이 모양이 되었다는 걸 안 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내시며 정신 차릴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그래서 결국 도윤은 혼자 나와 차에서 살며 반년 넘게 생활을 해왔다. 그랬던 도윤이 차를 정범에게 넘기고 다시 본가로 돌아가겠다는 걸 보면 어지간히 삶에 지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 한계였거든. 그거 산다고 사채도 끌어 썼는데, 갚을 수가 없어 지금 내 벌이로는."
"사채까지? 얼마나?"
"천만 원 빌렸는데, 지금 이자가 불어나서 이천이백이 되었더라."
"그거 뭐 그런 X같은 새끼들이 있어?"
"휴, 담배나 한 대 주라."
도윤은 정범에게 받아 든 담배를 들고 흡연실로 향했다. 정범도 도윤을 따라 흡연실로 향했다. 도윤은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쾌쾌한 연기를 내뿜으니 약간은 표정이 풀린 듯 보였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솔직하게 말한 거지 뭐. 차도 팔고 정신 차릴 테니까, 한 번만 갚아달라고."
"그래서 오케이 하셨어?"
"그렇지 뭐. 그래서 이제 돌아가서 정신 차리고 살라고."
도윤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차키를 꺼내 정범의 손에 넘겼다.
"자, 이제 니꺼다. 나름 깨끗하게 썼으니까 괜찮을 거야. 담배냄새가 조금 날 순 있는데 어차피 너도 흡연 자니까 뭐."
정범은 받아 든 키를 꽉 쥐었다. 도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정범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고맙다 야. 돈은 니 계좌로 쏠게."
도윤은 다 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그래. 차는 카페 뒤에 주차장에 주차해 놨어. 차 뭔지 알지?"
"그래 알지."
"그럼 잘 쓰고, 다음에 보자."
도윤은 정범을 놔두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도윤이 나가고 정범은 혹시나 도윤이 다시 와서 열쇠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몇 분 정도 기다렸지만, 도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제야 정범은 굳은 얼굴을 풀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안 그래도 정범은 요즘 주변에서 자기만 차가 없던 터라 왠지 가오가 상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 잘 둔 덕에 좋은 외제차를 싸게 얻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빨리 차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반 이상 남아있는 커피를 반납하곤 카페 뒤편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카페를 빙 둘러서 뒤쪽 공터에 마련된 주차장에 가니 하얀색 BMW가 보였다. 도윤이 몰던 차였다. 정범은 그 차를 볼 때마다 도윤이 부러웠다. 지금 자기 형편에는 꿈도 꾸지 못할 차를 몰고 있다는 것에 질투도 났었다. 하지만 도윤이 카푸어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부러워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지내왔었다. 하지만 결국에 그 차는 정범에게 넘어왔다. 도윤이 중고로 이천만 원을 주고 산 차를 고작 천만 원에 사게 된 것이다. 아무리 돈을 갚는 게 급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헐값에 파는 도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범은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 가격에 이만한 차를 살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일단 무조건 사겠다고 하고 차를 손에 넣었다. 아무래도 도윤의 부모님이 어느 정도 돈을 갚아주신다고 했으니, 빨리 헐값에라도 넘겨서 돈을 마련하고 치우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게 정범은 미소를 띠며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역시 외제차라 그런지 운전석 계기판 모양부터가 남달라 보였다. 내부 장식들 마저 고급져 보였다. 생각보다 실내는 깨끗했고, 액세서리라고는 방향제 하나만 꽂혀있었다. 담배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시동을 걸고 부르릉하는 배기음과 차의 떨림을 느껴보았다. 기쁘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범은 이대로 차를 몰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번호 목록을 검색했다. '상미 누님'이라 적힌 연락처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누님? 오늘 뭐 하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차를 하나 뽑았는데 누님 한번 모시고 드라이브 가려고요"
"웬일로 차를 다 뽑았어? 너 맨날 차 없다고 그랬는데."
"누님 모시고 다닐라고 하나 뽑았죠. 얼른 타세요."
상미는 보조석에 앉으며 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냈다. 룸미러를 쳐다보며 입술 화장을 고쳤다. 정범은 그런 상미를 쳐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래서, 오늘 어디 갈라고 불렀어?? 어디 뭐 좋은데 데려가줄 거야?"
정범은 당황하며 얘기했다.
"어…, 딱 여기다 정한 건 없긴 해요. 혹시 누님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세요?"
상미는 입을 삐쭉 거리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내가~. 우리 정범 씨가 딱 알아서 모셔야지~"
"그럼 일단 춘천 쪽이라도 당일로 다녀올까요?"
상미는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럼 당연히 당일이지. 뭐야? 혹시 뭐 일박하려고 그랬어?"
상미의 놀림에 정범은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정범은 제대로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차를 움직였다. 그렇게 상미와 정범은 양양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서로 얘기도 나누고 상미가 가져온 간식도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한 시간여를 달렸을 무렵, 정범의 앞으로 까만 그랜저 한대가 끼어들었다. 다른 차선이 다 비어있음에도 굳이 정범의 앞에서 달리는 꼴이 꽤나 거슬렸다.
'느려 터진 새끼가 빈 차선 다 놔두고 왜 1차선이 기어들어와?'
정범이 참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려는 찰나, 앞의 그랜저가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범은 차선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그랜저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자기,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니야?"
상미가 약간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정범에게 말했다.
"에이, 누님, 고속도로잖아요. 차도 없고. 이 정도는 괜찮아요. 차 잘 나가고 좋구만."
"그래도 터널이라 캄캄한데…."
정범은 씨익 웃어 보이며 걱정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 누님 저 밤눈 밝아요. 어두워도 잘 보이니까 걱정 마세요."
잠시 후, 정범의 앞을 달리던 그랜저가 터널을 나가자마자 황급히 속도를 줄였다. 그 순간 터널의 끝에 다다라서 갑자기 들이닥친 햇빛에 앞이 잘 보이지 않던 정범은 그랜저의 속도가 줄었음을 알아채는 것이 늦었다.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결국에는 그랜저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
'쾅'
정범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