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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몬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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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Jul 31. 2023

겨우 사진 한 장

  평소 자식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은 잘 꺼내지도 않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지만 이제는 나이가 70줄에 들어서니 아무래도 힘이 많이 떨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웬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더니 주말에 이삿짐 싸는 걸 도와달라 하셨다. 이사가 당장 다음 주인데 도통 힘이 나질 않아 짐을 싸지 못하겠다 하셨다. 가능하면 동생에게는 내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라 하셨다.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생도 이번 주말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세 모자는 토요일 오전에 오랜만에 모였다.


  오랜만에 방문한 엄마 집은 여전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평소 깔끔한 것을 좋아하시는지라 먼지가 쌓이거나 청소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냉장고, 냉동실에는 음식이 한가득 쌓여있었고,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각종 약봉지부터 영양제들과 에어프라이어, 토스터기 등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있었다. 옷장 속에는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옷들로 그득했고, 이불장에는 언제 덮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이불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오로지 말끔한 상태의 벽지와 바닥, 천장만이 이 집이 불과 3년 전에 지어진 새 집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렇게 물건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동생이 발끈할 것이 분명했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그 쌓여있는 물건들을 포장하고 버리고 치우는 날인지라 동생도 딱히 뭐라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구석구석을 살펴가며 포장해야 할 물건들을 하나둘씩 꺼내보았다.


  주방 찬장을 열어보니 한 30여 년 전부터 쓰지도 않고 쌓여있는 그릇들이 보였다. 동생이 이 그릇들을 보면 아무리 오늘 같은 날이라 하더라도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을 것이 분명했기에, 황급히 찬장을 닫고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동생에게 나가서 장을 봐오라고 하면서 마트에 간 김에, 물건들을 담을 종이 박스들도 가져오라고 시켰다. 이미 나와 동생이 주문해 놓은 이사박스가 한가득이라 동생은 가기 싫어했지만, 충격에 약한 물건들은 따로 잘 싸서 딱 맞는 박스에 넣는 게 좋겠다는 말로 설득해서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동생을 부랴부랴 내보내고는 그릇들을 꺼내서 상하지 않도록 신문지와 애어캡으로 하나하나 감쌌다. 하지만 물건들을 꺼내서 포장하다 보니, 정작 엄마에게 잔소리할까 봐 동생을 밖으로 내보냈음에도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10년 넘게 안 쓴 것들은 앞으로도 안 쓸 테니까 버려라. 이런 거는 쌓아놓으면 곰팡이 생겨서 옷들이 다 못쓰게 된다. 냉동실에 넣어놔도 오래되면 상하니까 다 버려라. 계속해서 잔소리를 이어가며 이삿짐을 쌌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냅둬. 내가 다 쓸 거야."


  어릴 때부터 엄마는 물건에 대한 내 잔소리를 늘 저런 식으로 받아쳐왔다. 앞으로도 쓰지 않을게 뻔히 보이는데도 굳이 본인이 쓸 것이니 놔두라고 했다. 어릴 때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되다 못해 답답해서 환장할 노릇이었으나,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7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오신 분일 테니 이제 와서 그런 성격이나 습관이 바뀔 리도 없으니까. 


  그렇게 하나 둘 짐을 정리하다가 안방으로 자리를 옮겨 옷들을 하나 둘 꺼냈다. 너무 낡고 유행이 한참은 지난 옷들 투성이었지만, 엄마는 옆에서 계속 비싼 옷이라느니 좋은 브랜드라느니 하면서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 나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물건의 값어치는 돈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고 반박하고 이 옷들이 예전에는 아무리 비쌌어도 이제는 어디 중고시장에서도 못 팔 물건이 되었으니 그리 귀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겠냐고 얘기했다. 하지만 역시나 엄마는 내 얘기에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당신 할 말만 계속하셨다. 


  옷을 얼추 다 정리했을 때쯤, 옷장 안쪽으로 익숙한 물건이 보였다. 내 어릴 적 사진들을 모아놓은 앨범이었다. 권장 100장씩은 들어가는 앨범 세 권이었다. 전에 독립하면서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해 엄마 집에 계속 놔두었다가 결국에는 찾아가지 못했던 앨범들이었다. 이삿짐을 쌀 때 어디선가 이런 것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고 그런 물건들을 보며 추억여행을 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 생각하기에, 이삿짐 싸는 것은 잠시 멈추고 앨범을 펼쳤다.


  1권이라 라벨이 붙은 앨범을 펼치니, 신생아 때부터의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끼워져 있었다. 각각의 사진 옆에는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엄마의 심정이나 걱정이 짧게나마 적혀있었다. 첫 사진은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집에 온 첫날의 사진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옆에는 온통 엄마의 걱정이 한가득 적혀있었다. 그렇게 한 장, 두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돌잔치가 나오고, 유치원 입학식이 나오고, 초등학교 입학식이 나왔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찍는 게 싫었던 나는, 몰래 찍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만이 한가득 차있는 표정으로 나와있었다. 놀이공원을 놀러 가면 놀이기구를 타고 싶고, 바닷가를 가면 바다에 들어가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나에게, 사진을 찍을 테니 기다려라, 포즈를 잡아봐라, 웃어봐라 등 엄마의 요구는 매우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이쁘게 웃는 사진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5살 이전 무렵의 사진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반쪽은 파란색, 반쪽은 빨간색인 삼각 수영복을 입고는 한강 야외 수영장 사다리에 튜브를 대고, 그 튜브를 등받이 삼아 걸터앉아서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은 너무나도 햇빛이 뜨거운 날이었다. 나는 그저 동네 수영장을 가고 싶었을 뿐인데 엄마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걸려서 한강 야외 수영장에 도착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영장은 수영장인지라 기쁜 마음에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뛰쳐나왔다. 그런데 웬걸, 수영장 바닥은 이미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 때문에 철판처럼 달궈진 상태여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지금이라면 크록스라도 신고 다녔겠지만, 그 당시에는 크록스는커녕 슬리퍼조차 없었기 때문에 입으로 앗 뜨거를 연신 외치며 엄마가 기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벗은 옷을 엄마에게 건네주고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엄마가 불어놓은 튜브를 뺏어 들고는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수영장의 물은 생각보다는 많이 시원한 편이어서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머리까지 물속으로 푹 넣었다가 튜브 가운데 구멍으로 머리를 쏙 내밀었다. 하지만 시원함도 잠시뿐 그늘하나 없는 야외수영장인지라 물 밖에 내밀고 있는 상반신은 금방 바싹 말랐고 금세 튜브는 뜨거워져서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계속해서 물을 끼얹으며 버텼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물조차도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물놀이 같지 않은 물놀이를 억지로 즐기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때마침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점심을 먹자고 부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수영장에서 나가려고 사다리 쪽으로 이동을 했더니 어느새 엄마가 사다리 위에 와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어서 사다리 앞에 앉아보라 했다. 사진 하나만 찍자고. 하지만 원래도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나인 데다가 얼마 전에 한 파마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배도 고픈 데다가 햇빛은 너무나도 뜨거웠기 때문에 사진 따위는 도저히 찍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진을 찍으려는 엄마를 도저히 말릴 수는 없었다. 결국 똥 씹은 표정으로 걸터앉아서 눈부신 햇살에 눈빛을 한껏 찌푸리며 엄마가 들고 있는 카메라 쪽을 향했다. 

  그렇게 사진을 하나 찍고는 파라솔 밑에 앉아서 엄마가 싸 온 김밥을 먹었다. 지금은 굳이 다른 메뉴들을 놔두고 김밥을 사 먹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김밥을 꼽던 때라 김밥을 잔뜩 입에 넣으며 상했던 기분을 급히 달랬다. 그렇게 배부르게 김밥을 먹고 나니 엄마가 다시 물에 들어가 놀라고 했지만, 이미 햇빛의 뜨거움을 충분히 맛본 나는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껏 멀리까지 나왔으니 조금 더 놀라는 엄마의 말에 투덜거리며 억지로 물속에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흥도 떨어졌고 생각보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기에 오전만큼 놀지는 못하고 한 시간여 가량을 그저 물속에서 둥둥 떠있기만 했다.

  더 이상 햇빛을 참을 수 없을 때쯤 물밖로 뛰쳐나와 엄마에게 가서 집에 가자고 졸랐다. 엄마는 아직 더 놀다가 가자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더 놀 수가 없었기에 엄마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는 결국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옷을 집어 들고 후다닥 탈의실로 뛰어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렇게 수영장을 나와 버스에 올라타니 뜨거운 햇빛을 피해서 집에 간다는 생각에 오히려 조금 신이 났다. 그리고 곧 방전된 체력으로 인해 버스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든 나를 엄마가 업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온 모양인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게 사진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있자, 엄마가 슬며시 내 등 뒤로 와서 내가 든 사진을 물끄러미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아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니, 뭘 보는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내가 들고 있는 사진을 본 엄마가 나에게 그 사진을 찍은 날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나는 기억이 난다 하고는 그날의 기억을 쭉 읊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아직까지 다 기억하느냐며 놀라워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엄마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쉽게 사진을 그거 하나 밖에 못 찍었네."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 아빠가 직장에서 잘린 후 재취업이 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으로 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러다 죽겠다 싶은 엄마가 빚을 내어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차렸다. 다행히도 가게는 어느 정도 장사가 되어서 세 가족이 먹고살 만큼은 되었다. 그러다가 곧 동생이 태어났고 우리 네 가족은 단칸방에서 어찌어찌 살았다.

  하지만 철이 없던 나는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린 것에 계속 질투를 했다. 엄마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먹고살기 바쁘니 차마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밤낮없이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네 동생을 돌봐야 했으니까 정작 너한테는 신경을 거의 못썼어. 그러다가 보니까 옆집에 시현이네는 여름 방학이라고 애들 데리고 바다도 갔다 오고 산에도 갔다 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나도 그거 보니까 안 되겠다 싶었지."


  내 기억 속에서 그날은 그저 엄마가 갑자기 나를 데리고 나간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갑자기 엄마가 수영장에 가자고 했을 뿐이었다. 그전에도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종종 받아왔던 터라 당연히 동네 수영장에 가자는 얘기인 줄 알고 흔쾌히 따라나섰었다. 엄마가 짐을 챙기는 것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봤다면 동네 수영장이 아니라 어디 먼데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런 것을 살펴보고 알아채기에 나는 너무 어려서 그저 수영장 갈 생각에 살짝 들떠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네 아빠가 그날은 웬일로 어디 안 나가고 있길래 하루만 가게랑 네 동생 좀 봐달라고 했지.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너 데리고 수영장 좀 갔다 와야겠다니까 선선히 허락하더라고. 불같이 승질낼 줄 알았는데. 맘 같아서는 어디 바다라도 갔다 오고 싶지만 차도 없지, 운전도 못하지, 돈도 없지, 그러니까 뭐 어디 갈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나마 한강으로 데려간 거야."


  얘기를 들어보니 그날의 외출은 나를 위한 것이긴 했지만 정작 엄마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야 나이 70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때의 엄마 나이는 고작 30대 중후반이었을 테니. 


  "근데 가려고 보니까 우리가 뭐 돈이 있냐? 먹는 거야 뭐 부랴부랴 김밥을 싸서 갔으니 그렇다 치는데, 수영장 입장료 낼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너 혼자 수영하게 하고 나는 그냥 옆에 앉아서 보고만 있었지. 근데 그럴 것 같아서 나는 애초에 수영복도 안 챙겨가긴 했어. 어차피 비싸서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게 네가 중간에 음료수나 간식 사달라고 하면 어떡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더라. 그래서 갖고 간 얼음물 마시고 김밥 먹고 하면서 배 채웠지 뭐."


  엄마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며 꾹 참고 살았을 엄마의 심정에 감정이 이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입해서 울적해하는 모습이나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돌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척하며 앨범을 덥고 주섬주섬 옷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얘기는 계속 됐다.


  "그때, 없는 형편에 어디 가서 기죽지는 말라고 너 머리나 옷차림은 나름 신경 썼었거든? 그래서 파마까지 이쁘게 한 거였고. 너는 싫다고 울었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수영장에도 왔겠다, 너 머리도 이쁘게 했겠다 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거든. 네 아빠가 언젠지도 모를 옛날에 일본 갔다 오면서 사 왔던 카메라로. 그거 비싼 거였는데. 아무튼 그걸로 찍을라고 카메라를 갖고는 왔는데, 필름이 없는 거야. 딱 한 장 찍을 분량만 남아있더라고. 그래서 필름을 사야 하는데 돈도 없지, 살 곳도 없지. 아이고 우리 아들 이쁘게 사진 한 장 찍어줘야 하는데 어쩌나 싶더라고."


  엄마가 해준 힘든 과거 얘기들은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많이 들어왔기에, 그런 얘기들에는 익숙했으나, 이 얘기는 처음 들어본 얘기다 보니 다른 얘기들을 들을 때와는 다르게 감정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엄마가 날 볼 수 없도록 돌아 앉아, 훌쩍이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떻게 한 장만이라도 잘 찍어보고 싶은데 너는 덥다고 칭얼거리고 그러니까 힘이 들더라고. 그래도 이왕 놀러 나온 거 사진이라도 꼭 남겨야겠더라. 네가 싫어하는 게 뻔히 보이지만, 사진도 없으면 그냥 그런 하루로 쓱 지나갈 것 같은 거야. 어떻게 보면 오기로 찍은 거지. 그렇게라도 사진을 하나 찍으니까, 그래 어찌어찌 집 밖으로 나와서 덥고 힘들지만 그래도 사진 하나는 건졌네 라는 생각에 좀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살면서 낙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네 사진 찍는 거가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나는 손을 멈추고 입을 굳게 다문상태로 엄마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같으면 그게 무슨 낙이냐며 한소리를 했겠지만, 혹여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울음을 참고 있는 것이 티가 날까 싶어 묵묵히 엄마의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에 오는데 네가 많이 고됐는지, 버스에서 까무러치듯이 잠이 들더라고. 날도 더운데, 차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버스를 탄 데다가, 거기 가서는 땡볕에서 놀게 했으니까 너도 어지간히 힘들었겠구나 싶더라고. 네가 그렇게 안쓰럽더라. 어쩌다 내 이쁜 자식이 이런 부모를 만나서 고생을 하나 싶고. 그래서 깨우지 말아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원래는 중간에 내려서 환승해야 하는데, 그럼 널 깨워야 하니까 그냥 널 업고 내려서 집까지 한참 걸어왔었지. 얼마나 곤히 잤는지, 집에서 깨더니 언제 집에 왔냐고 물어보더라."


  들썩이는 내 어깨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고는 빨래 널어놓은 걸 걷어야겠다며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엄마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 등뒤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다 추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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