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ellani Art Museum
이 그림을 보자마자 호손의 <주홍글씨>가 생각났다. 작품에서 펄은 엄마 헤스터의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동시에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헤스터에게 있어서 펄은 주홍글씨에 얽힌 자신의 죄를 다시 한번 입증해 주면서도 자신의 내적 이상을 실현시켜 줄 존재이다.
호손은 펄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흐릿하면서도 분명한 존재, 실존하는 어린아이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영적인 존재 (dim or distinct figure - now like a real child, now like a child's spirt)" 이런 관점에서 펄은 엄마의 감춰진 이상을 드러내주는("to reveal the mother's hidden heart") 다리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림 속 모녀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녀를 비추는 거울이 현재이고, 엄마가 과거, 딸이 미래라면 <주홍글씨> 헤스터와 펄의 관계처럼 거울은 두 모녀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거울에 비친 딸의 모습은 엄마의 관점에서 과거이고, 거울 속 엄마의 모습은 딸의 시선에서는 자신의 미래인 것이다. 딸이 성장해서 엄마가 되는 과도기에 거울이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속 인형을 든 소녀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19세기 여성을 묘사한 작품들은 대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거나 피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감상자와 눈을 맞추듯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밝은 색의 원피스는 소녀가 그림의 주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소 냉소적인 표정을 통해 소녀의 감정이 억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품에 있는 인형이 오히려 그녀의 감정을 대변해 주는 느낌이다.
호손의 <The Haunted Mind>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의 심저에는 무덤과 지하소굴이 있다 (In the depths of every heart, there is a tomb and a dungeon)" 인간 내면의 어두운 것들(죄의식, 악, 이기심 등)을 표현한 말이다. 냉소적인 표정 뒤에 감춰진 내면을 어두운 배경색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진취적이고 지적인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세기 대부분의 회화 작품은 여성을 '집 안의 여성 (Domestic women)'으로, 바느질을 하거나 조용한 취미를 하는 여성으로 표현한다. 반면, 이 그림 속 여성은 숲으로 보이는 곳에 있다. 여성의 영역이 '안'으로만 한정되던 당대 작품들과는 다르게 '밖'에 있다는 게 특징적이다. 그녀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며 엄중한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찌푸려진 미간이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과 제스처는 높은 지위를 예상하게 한다. 그림 속 여성은 다른 작품 속 '집 안의 여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배경은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공존하고 있다. 어두운 회색과 밝은 노란색이 혼합되어 초록색을 이루는데, 그 색이 여성의 재킷과 동일하다. 여성이 어두움과 밝음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움과 밝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는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이 방안에 있다. 앞서 언급한 '집 안의 여성' 모습이다. 그녀의 뒤에는 커튼이 굳게 닫혀있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의 손에 있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세상에 풀어놓고 싶은 내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담요로 보이는 물체로 덮여있는 이유도 아직은 꺼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모든 이의 내면세계를 다 아는 것도 어려운데, 그렇게 보면 한 사람을 완전히 통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림 속 여성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꽁꽁 감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