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이 하나의 작품이 되다
2023년 3월, 화창한 날씨가 반기는 날 파리의 대표 미술관 루브르에 갔다.
입구를 들어서면 루브르의 상징 삼각형 피라미드가 보인다. 투명한 유리에 비치는 햇살이 아름다웠다.
입구에서 왼쪽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루브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른쪽 구불구불한 계단을 통과하는 기다란 원기둥이 바로 엘리베이터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이 이용할 수 있다. 천장이 뚫린 원형 엘리베이터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느낌을 준다.
루브르 삼각형 피라미드는 유리로 되어있는데, 이는 투명성을 통해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과 예술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게 한다.
루브르의 가장 좋은 점은 전시관 내부에 창문이 많아 건물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전시관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외관의 조각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외관마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루브르는 내부 공간마저 하나의 작품이 된다. 투명한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자연조명 역할을 하여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두 팔을 잃었지만 육중하게 서 있는 비너스의 자태는 인체의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면 다이애나 방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에 사냥과 여신을 연결 지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냥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이애나의 진취적이고 굳건한 기운이 느껴진다.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조각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진정한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모티프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주 이야기되는 소재이다.
루브르 전시실 천장 역시 회화로 전시되어 있어 여기저기서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전시실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는 창문은 감상자에게 답답함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활기를 준다. 내부에서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루브르 건물의 매력이 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노예의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조각상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다. 죽어가는 노예의 표정은 어떨까 궁금해서 자세히 바라보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고통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더 평온해 보였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일수도 있고 죽음 이후 세계에서 평온하길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평온해 보인다. 예수의 죽음은 앞서 본 노예의 죽음과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죄를 씻어 부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죽은 예수의 평온한 표정이 이해가 된다. <죽은 노예>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두 조각상 모두 죽음은 고통스럽고 부정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죽어가는 노예>의 조각상 표정에 신선함을 느낀 나는 이날 죽어가는 사람의 표정에 제대로 꽂혔다. 이렇듯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나는 작품은 매번 새로운 길로 나를 이끈다.
유명한 작품 앞에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깃발을 든 자유의 여신에게 집중이 되었다면, 실제로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앞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다.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와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지 않고 담담하게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강인한 기운이 느껴진다.
잠에 취한 듯 보이는 사람을 옆에 두고 떠나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선녀와 나무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앞쪽에 있는 사람들보다 뒷 배경에 시선이 갔던 작품이다.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건물들이 자로 잰 듯 바르고 정확한 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전에 시카고 미술관에서 본 <아메리칸 고딕>이 자아내는 느낌과 비슷한 인상이다.
루브르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는 파란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모나리자 앞에는 사람이 붐빈다. 모나리자 뒤에 보이는 풍경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미완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비슷한 듯 다른 여인이 같은 작가 다른 작품 속에 연이어 등장한다. 대부분 유화 작품들은 물감이 그대로 드러나 거칠게 표현되는 게 특징인데 두 작품 모두 오래된 사진처럼 매끈한 표면이었다.
회화 속 나무가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의 나 홀로 나무와 닮았다. 오른쪽 울창한 숲은 담양의 메타스퀘어 길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듯 미술관에서 보는 작품은 때때로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닿아 그때의 감정을 다시 재현하여 그것을 통해 내가 인간임을 다시금 느끼는 일, 그것이 예술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