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두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처가댁을 방문했습니다. 때마침 장인어른, 장모님 내외분께서 장을 보고 돌아오셨습니다. 닭이랑 각종 야채를 사 오셨길래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대뜸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음? 닭이 2마리니까 1마리는 엄마가 요리하고 나머지 1마리는 오빠가 요리해 볼래? 요새 요리 배틀 하는 게 대세잖아"
그렇게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모님과 요리 배틀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목은 똑같은 닭볶음탕인데 장모님께서는 손주들까지 같이 먹일 요량으로 간장 베이스로, 저는 어른들이 먹기 좋은 고추장 베이스로 닭볶음탕을 하기로 했습니다. 감자, 양파, 고추, 대파 등의 식재료와 갖은양념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으니 요리하기 참 편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집과 달리 칼도 크기,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주기적으로 칼을 갈아 관리하셔서 정말로 요리하는 맛이 나더군요.
옛날에 군대에서 닭볶음탕 만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자, 당근은 양파랑 익는 시간이 다르다는 점, 고춧가루랑 간장, 설탕의 황금 비율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그야말로 기계처럼 뚝딱뚝딱 양념을 만들어 냄비에 담았습니다. 강불로 펄펄 끓을 때까지 기다리다 간할 때 중불로 졸이기로 하고 주변을 정리합니다.
중간에 장모님의 간장 베이스 닭볶음탕을 살펴보니 다진 마늘과 생강청의 흐뭇한 향이 벌써부터 군침이 사르르 돌게 하더군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는 듯하였으나 참가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요리를 성실히 끝마치기로 합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장모님이 2가지의 요리를 하셨어야 할 테니 내가 잘 도와드린 셈이다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렇게 30분 여가 지나고 두 가지의 요리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뚝딱 차린 음식인 것 치고 보기 좋게 먹음직스럽습니다. 맛은 물론 장모님의 완승이었습니다. 아무리 갖은양념을 추가해도 장모님 음식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안 나타나더라고요. 한 수 배운 아름다웠던 이벤트라 생각하고 감사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우리 아들, 딸이 잘 먹은 것은 물론이고요.
다음에는 제가 자신 있는 찌개 요리로 한 번 더 대결을 해보자는 우스갯소리로 식사를 즐겁게 마무리했습니다. 덕분에 한 끼 든든히 먹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