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들린 어머니댁. 어머니가 콩을 불러 직접 갈아 만든 콩물로 콩국수 시원하게 한 사발 드링킹. 어머니의 수고가 담긴 콩물과 김치를 얻어왔다. 여태껏 김치 한 번 안 담가먹은 내가 콩을 불려 콩을 갈아 콩국수를 집에서 해 먹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어라 어느새 그러고 있다. 엄마를 떠올리며 혼자 실실 웃는다.
어린 시절 한 토막. 어머니가 무심코 지나가듯 말했다. 아플 때는 밥 해 먹기 싫구나, 오늘 또 뭐 해 먹나? 반찬이 없네.... 그 말에 귀에 가슴에 콕 박혔다. 매일 끼니 걱정이 태산 같은 어머니, 딸에게 죄의식을 잔뜩 심어주는 어머니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아빠가 밥 좀 해, 엄마는 왜 맨날 딸들한테만 하소연이야? 아들은 자식 아니야?
365일 날마다 누군가에게 꼬박꼬박 밥상을 차려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무리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게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일상이 된다면? 받아먹기는 쉬워도 해 먹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도 밥하고 요리하고 삼시 세끼 밥상을 차리는 게 하기 싫고 귀찮은 날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했던 사람. 그게 당연하다고 쉽게 하찮게 사소하게 여겨지는 사람. 엄마. 어머니. 반평생 죽어라 가사노동만 하다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럽다.
독립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밥을 해 먹으면서 뼈저리게 깨우친 사실이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어머니에게 밥상을 받아먹는 걸 당연하게 여긴 이기적인 자식이었다는 것. 그 사실이 징그럽게 부끄럽고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성인이라면 뭣보다 스스로 자신을 먹일 줄 알아야한다. 아무리 귀찮아도 제 손으로 밥상을 차리는 걸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번 돈으로 스스로 밥을 해먹는 일상을 살게 되면서 드디어 부모로부터 완전히 정신적으로도 자립했다는 즉 제 앞가림하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이먹고도 여자가 아내가 어머니가 해주는 걸 넙죽넙죽 받아먹는 걸 당연시하고 옆에 여자가 있으면 으레 부엌에서 멀어지며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는 남자들, 제 밥도 해 먹을 줄 모르는 아빠와 아들 그리고 밥 해 먹을 줄도 차릴 줄도 모르는 남자들 보면 도저히 성인 같지가 않다. 덜 떨어지고 웃자란 애로 보인다.
요즘은 어쩌다가 집에 들를 때 내가 요리를 하곤 한다. 그러면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예의 내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라 잔소리를 줄줄 늘어놓는다. 딸과는 달리 아들이 할 때는 잔소리는커녕 칭찬일색 황송한 듯 받아먹는 어머니에게 와락 성질이 나서 들이박고 싸우곤 했다. 딸년에게는 가르치려 들고 아들놈에게는 미안해하는 봉건적인 어머니에게 열불이 났지만 그것도 옛날이다. 그 딸년도 늙어간다.
이제는 싸우기보다 그러려니 한다. 안다. 그토록 못 미더운 딸이 이제는 고마워서 그런다는 걸 평생 해먹이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 어색해서 그런다는 걸. 나이 들수록 늙어갈수룩 딸은 어미에게 친구가 되고 아들은 여전히 손님인 법. 어머니의 시계와 자식의 시계가 다르고 어머니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지만 따로 또 같이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