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아닌 집밥같은 밥
작년 봄 집 근처에 날마다 바뀌는 ‘오늘의 메뉴’를 내건 묘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셰 올리비아.”
궁금해서 입간판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헝가리식 굴라쉬 스페인 빠에야
오늘의 메뉴 점심 특선?!!!!
메뉴판을 훑어봤다.
오오, 놀라워라! 가격도 착하고 나름 괜찮다.
합리적이다.
닫힌 유리문 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 봤다.
오! 10인은 족히 앉을 다이닝 테이블에 덮인 하얀 식탁보. 자리마다 놓인 접시와 스푼 포크 와인잔. 가지런히 정돈된 상차림이 눈에 띄었다.
평소 출장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듯 '케이터링 준비중'이란 간판이 나와있거나 종종 Closed 문패가 걸려있던 가게. 단체 예약 손님만 받는 건가? 오늘의 특선을 보면 아닌 것도 같고. 흐음…. 한 번 들러봐야지 했는데……
오다가다 어느날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게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그 때 주방에서 얼굴을 쑥 내민 쥔장과 눈이 마주쳤다.
- 혹시…지금 1인 식사도 가능한가요?
용기내어 물었다.
쥔장이 반색하며 답하기를
- 그럼요! 앉으세요!
포로롱 포로롱 봄 하늘을 날아오르는 나이팅게일처럼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던 셰 올리비아.
그게 나와 셰 올리비아의 첫 만남이었다.
맛난 음식을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고요한 순간을 사랑한다.
드디어 요리가 나왔다.
한 입 입에 넣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자던 혀가 깜짝 눈을 떴다.
아니, 이런 맛이!
평소 입이 짧아서 많이 먹지 못하지만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뇌에서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
맛있어서 접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후식으로 홍차와 케이크까지.
완벽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는?
요리 잘하는 남이 해주는 맛있는 요리!
집밥은 아닌데 집밥처럼 집밥같은 요리였다.
양도 푸짐한데 풍미가 그윽하니 뱃속만이 아니라 영혼마저 따스하게 달래주는 요리.
한동안 이 아담하고 소박한 프랑스 식당에서 가성비와 맛이 최상인 프랑스 요리를 먹어서 아아,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쥔장님 셰프가 앞으로는 점심 1인 식사를 그만두고 출장 요리 서비스와 단체손님을 위한 예약제 테이블만으로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 먹으러 날마다 들락거릴걸. 혼밥족을 위한 최고의 공간이었는데. 아쉽고 아쉬웠다.
동네 친구, 이웃이 된 세프와 오다가다 인사를 나눈다.
이제 식당에서 1인 식사는 못 먹게 되었지만
어쩌다 가끔 식당에 들러서 셰프가 건네는 커피 한 잔 차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수다를 떤다.
주방에서 하루를 준비하는 세프의 분주한 움직임을 지켜본다.
스타카토 같다가 아다지오 또는 포르테시모로 움직이는 세프의 날렵한 칼놀림.
때로는 왈츠 어느 날은 탱고를 추는 댄서 같은 움직임. 절로 감탄이 나온다. 아름답다.
가장 즉각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예술은 요리구나.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맛있는 요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직업.
먹고 나면 깜쪽같이 사라지는 맛 순간의 예술. 요리.
요리를 업으로 삼은 이들을 세상의 모든 요리사들을 경배하며.
문득 우리 동네 프랑스 식당 셰 올리비아의 쥔장님 셰프가
최근에 본 프랑스 영화 <프렌치 수프>의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슈)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에서 살다와서 프랑스를 사랑하며 한국에 프렌치 음식을 소개하는 탁월한 문화 전도사,
프랑스 엄마가 해준 것 같은 꿀맛 요리의 달인,
자신의 요리와 음식에 단단한 자부심을 소유한 것도
지중해의 태양을 닮은 환한 미소에
프로방스의 여름 같은 사람이라는 것까지도.
-나는 이런 이들과 이웃하며 살고 있다.
소소하고 정겨운 우리동네 이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