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일기 27
한국은 청과물과 생선 육류값이 단단히 미친 나라다. 터무니없이 비싸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나가 죽는 구조다. 북미나 유럽 이웃나라 일본도 이 정도는 아니다. 파리나 멜버른에 머물 때 주말시장에 가면 청과물을 한국의 절반 값에 살 수 있었다. 집세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영국 심지어 뉴욕에서조차 과일이 서울보다 쌌다.
사실 내가 아파트 거주를 싫어하는 까닭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주로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 이마트나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런 데서 장 보면 일 이십만 원이 우습다. 나 같은 사람에겐 엄두도 안 난다. 아파트 단지 내에 트럭 장수들이 천 막치는 일일장이 서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싸지 않다.
주택가나 달동네를 끼고 있는 동네 재래시장이 좋은 건 역시 싸다는 것. 물건들이 비닐랩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다는 게 더 좋고 언제든지 초대박 떨이 즉석 흥정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좋은 물건을 얻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고 배달을 해주지도 않지만 수고에 대한 보상은 바로 싼 값에 싱싱한 청과. 이태원 지나면 보광 시장 망원동 가면 망원 시장 서촌 가면 통인시장. 그리고 경동시장 남대문 시장과 후암 시장. 내가 사랑하는 시장통.
시장에서 돌나물 한 봉지 1천5백 원. 마늘종 한 묶음 1천5백 원에 샀다.
떨이로 두릅 6천 원에 득템. 봄맞이 가득 한상을 차릴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해산물 생선가게에서는 옛다~ 6천 원에 다 가져가 떨이에 큼지막한 국산조개 한 봉지를 냉큼 구매.
두릅을 무치니 코 끝을 자극하는 알싸한 풀냄새.
그윽하게 진동한다. 향에 취해 가슴이 두 근 방세근방. 어제는 쑥 오늘은- 두릅.
두릅무침은 대개 고추장 양념장을 쓰는데 이번엔 된장으로 무쳐봤다. 대신 돌나물은 초고추장으로. 다진 마늘 넣고 매실액을 살짝 뿌리면 새콤한 맛이 더 올라온다. 집에 깨소금이 없는 게 옥에 티. 아쉽지만 그런대로 뭐 어떠리. 내 입으로 들어갈 건데. 조개 듬뿍 넣어 된장찌개를 끓인다. 마늘종 무침은 건새우를 넣어서 은근하게 볶아준다. 거기에 콩나물 무침까지 곁들여 봄밥상 완성. 봄나물 잔치.
짜고 맵고 달고 간이 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원체 싱겁게 먹는 집에서 자란 탓도 있고 위장이 약해서 소화불량을 달고 사느라 그런지 뭐든 심심하고 심심한 것 자극적이지 않은 게 좋다. 외식을 하면 식당 음식이 하나같이 내 입맛에는 짜고 맵고 달다. 그래서 물 한 통을 다 들이킬 정도로 마시곤 한다.
현대인은 전부 소금과 설탕 중독이다. 그 옛날 귀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비유했던 소금은 이제 너무 흔해 빠져서 아무 음식마다 들이붓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탕이 전혀 필요 없는 요리에도 설탕을 아낌없이 부어주는 게 당연해졌다. 단짠단짠의 시대. 달고 짜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여긴다. 재료 본연의 맛보다도 혀를 즉각적으로 자극하는 강렬한 인스턴트 맛에 중독된 사람들. 지금은 소금과 설탕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똥값으로 전락한 시대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장을 담그셨다. 장독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항아리 독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만들어 쓰시던 고추장 된장 간장 그리고 소금도 지금과 같은 맛은 아니었다. 마트에서 파는 소금과 설탕은 영양소가 1도 없이 짠맛과 단맛만 남은 껍데기다. 진짜 맛있는 천연소금은 그냥 짠맛만 있는 게 아니다.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짠맛에도 결이 살아있다. 오묘한 바다와 태양의 맛이 난다.
요리를 못해도 요리에 자신 없어도 밥상이 맛있으려면 소금이나 기름 그리고 장, 소스 같은 기본 재료가 좋아야 한다. 장은 농부가 직접 만든 장을 사서 쓴다. 소금은 국산 천일염 설탕은 갈색설탕을 쓴다. 참기름과 같은 것도 청정원이나 CJ 오뚝이 같은 대형 회사 공장 제품을 사지 않는다. 차라리 농부에게 직거래 또는 시장 방앗간에서 방금 짠 참기름을 산다. 식재료에서 내가 유일하게 사치를 부리는 품목이다.
두릅은 쌉싸름한 맛이 난다. 쓴 맛에 가깝다. 그 맛이 죽지 않게 양념을 최소로 넣었다. 달콤 쌉싸름한 봄 맛. 봄이란 달달한 것만도 따스한 것만도 아니다. 그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안으로 응축한 생기가 가볍고 달콤할 리가 있나. 쓰디쓸 것이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달려 있듯이 세상의 모든 풀과 나무는 제 스스로를 지킬 독을 품는다. 시련을 견디어 낸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법이다. 생명의 이치를 밥상에서 배운다.
봄맛을 눈과 배로 즐기고 나서 차 한잔으로 마무리. 친구가 귀한 차를 줬다. 속이 편해지는 좋은 차다. 친구도 나처럼 속이 예민한 편이라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있다. 이 차를 마실 때마다 속 깊은 그네를 떠올린다. 고맙다. 찻잔에 내려 마시며 속을 깨운다. 뱃속뿐만이 아니라 머리도 맑아진다. 따스하고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