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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밥상

by 홍재희 Hong Jaehee



얼마 만에 야 집에서 쉬엄쉬엄 차려먹는 밥상인지 모르겠다.



여름부터 촬영하며 생활하느라 정작 집에서는 매일 밥을 해 먹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이런저런 알바를 하고 바깥으로 쏘다니며 들쑥날쑥 불규칙한 일상을 보내는 통에 좀처럼 끼니를 집에서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장을 보지 못했으니 냉장고에 요리할 재료도 별로 없었고 간혹 짬이 나면 집 근처 아주머니 한 분이 하는 작은 가정 식당이나 도서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토요일. 모처럼 집밥을 먹는다. 딱히 집밥이란 것도 없다. 파릇파릇 푸른 기운이 돋는 새싹, 싱싱한 채소를 먹고파서 며칠 전 장을 봤다. 상추도 사고 케일도 사고 파프리카도 사고 과일도 좀 샀다. 바나나 한 덩이에 2천 오백 원, 두 덩이 5천 원에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국내산 아로니아 큰 거 두 팩에 만 원 득템. 아침 요기로 바나나 아로니아 스무디를 만들어 마시고 느지막이 점심을 차렸다.




냉장고에 있는 기본 재료랑 밖에서 먹고 남은 음식 재활용 요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음식을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산해진미도 남기면 그게 다 쓰레기가 된다. 손님이 먹고 남긴 걸 다시 쓸 식당은 없으니 남은 음식은 모조리 쓰레기통 행이다. 그걸 아니까 음식에 욕심내지 않는다. 주문한 요리는 되도록 깨끗이 남김없이 먹는다. 그래도 다 못 먹으면 먹다 남은 음식은 포장해서 집에 가져온다. 뷔페 같은데 가면 사람들이 평소보다 과식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경쟁적으로 접시에 쓸어 담는 경우가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테이블마다 먹다 남긴 음식 접시가 셀 수 없이 많이 널려있는 걸 본다. 그걸 보면서 갑자기 드는 의문. 잠깐만, 뷔페에서 음식 쓰레기가 하루에 얼마나 나올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음식에 마냥 욕심내고픈 마음에 제동이 걸리면서. 아, 먹을 만큼만 담자. 미련하게 음식에 욕심내지 말자. 늘 조심한다.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과식이 불가능한 저질 위장이니까 차라리 잘된지도 모르겠다. 과욕은 금물. 나 같은 사람은 뷔페야말로 가성비 최악인 셈.



토요일 점심 집밥은

달걀카레볶음밥 올리브에 볶은 홍합구이.



홍합은 식당에서 먹다 남은 걸 알뜰히 챙겨 온 걸 따뜻하게 데우고 로즈메리랑 파슬리 가루를 다시 송송 뿌려 올렸다. 양파랑 마늘 대파를 올리브유로 볶다가 썰은 버섯과 찬밥을 넣고 달걀을 풀어 볶은 다음 술집에서 챙겨 온 아몬드 남은 거 넣고 카레 가루 뿌려 볶는다. 노란 물이 든 카레밥에 색감을 내려 고추를 조금 썰어 넣는다. 노란 카레 주홍 당근 푸른 어린 새싹 알록달록. 반찬 없을 때 따로 만들기도 귀찮을 때 볶음밥이 진리. 흰쌀 볶음밥도 물리면 요렇게 카레가루를 뿌려준다. 색다른 맛이 난다.



가장 쉽고 만만하게 만들고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개.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는 법은 별다른 게 없다. 된장 즉 장맛이다. 좋은 된장을 쓰면 된다. 마트에서 파는 된장 말고 협동조합이나 장인 또는 농부가 손수가 만든 재래 된장을 쓴다. 평균 만원에서 이만 원 선인데 값이 좀 비싸더라도 된장만큼은 좋은 걸 쓰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표고버섯 가루와 새우가루를 사놓고 찌개 끓일 때마다 조금씩 넣어주면 맛이 그윽해지고 풍미가 그만이다. 이번에는 쌀눈 가루를 사서 밥 지을 때도 넣고 찌개에도 넣어봤다. 그러면 아무리 요리 못해도 중간은 간다. 인스턴트 화학첨가물 조미료 안 써도 참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아.... 토요일 한낮 여유로운 점심. 황기 넣어 우린 유기농 보리차와 음악과 함께. 평온하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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