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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무 예찬

by 홍재희 Hong Jaehee



어릴 적에는 무를 싫어해서 무생채는 손도 안 댔고, 국에 들어간 무는 흐물흐물 거리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에 내게 무 맛이란 그저 무(無) 맛이었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아무 맛도 없는 맛.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무가 이렇게 맛있다니!



동의보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는 오장의 나쁜 기운을 씻고 체기를 없애는데 가장 빠른 채소이다."
"보리와 밀로 만든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날무(생무)를 씹어 삼키면 해독된다."


이런 말도 있다.


겨울에 무, 여름에 생강을 먹으면 의사를 볼 필요가 없다.


'동삼(冬蔘)'


겨울철에 먹는 삼이라 불리는 겨울무. 겨울무는 소화 흡수를 도와줘서 소화기가 약한 사람에게 좋고, 면역력을 강화하는데도 좋다 한다. 그랬구나! 소화기가 허약해서 잘 체하고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내가 왜 무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는지, 왜 무가 맛나게 느껴졌는지. 바로 그 이유였다. 속이 더부룩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 약 대신 음식으로 속을 달랜다. 응급 처방으로 달달한 무를 썰어 먹는다. 그러면 체증이 가라앉고 속이 편해진다.







겨울무는 시원하고 달고 맛있다. 언제부터인가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무가 눈에 들어온다. 무와 사랑에 빠졌다. 무 한 개를 샀다. 무 하나도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다. 재료를 다 소진하려면 꾀를 내야 한다.



무밥. 브로콜리 토마토소스. 참조기구이. 두부부침.



찹쌀을 안치고 무를 넣어 무밥을 했다. 무는 성질이 따뜻하여 소화를 돕고 토마토와 브로콜리 당근은 위장을 보해준다. 양파와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볶고 브로콜리와 버섯을 넣어 토마토소스를 만든다. 바질 또는 파슬리를 뿌려주면 풍미가 더 산다. 파스타 면 대신 밥에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참조기 한 마리 굽고 감자당근 볶고 두부를 부쳐 낸다. 위장에 좋은 재료라고 일일이 반찬으로 해 먹기는 정말 귀찮다. 토마토소스를 한 번에 만들어 뒀다가 끼니때마다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온갖 나물을 올린 미나리 비빔밥. 뭇국.

가지 버터구이. 데친 브로콜리. 삶은 메추리알. 두부부침.



무를 들기름에 볶아 뭇국을 끊였다. 전날 해놓은 무밥에 들기름을 두르고 미나리를 송송 썰어 넣고 나물 반찬을 전부 올린다. 비빔밥은 잔반 처리할 때 최고. 평소 두통이나 월경통이 있을 때 약국에서 소염진통제를 사다가 먹곤 했는데 위장병이 재발한 후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소염진통제 성분인 이부프로펜은 위장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약을 쓰지 않고 통증을 완화할 방법을 밥상에서 찾기로 했다. 나물 중에 미나리가 수족냉증과 월경통에 좋다 한다. 미나리 중에는 청도산 돌미나리가 좋다. 아랫단에 붉은 기가 도는 돌미나리는 지질 함량이 높고 칼슘이 일반 미나리 2 배란다.




약 대신 음식으로 밥상으로 아픈 위장을 치료하다 보니 식재료에 민감해졌다. 무, 양파, 토마토, 당근, 감자, 브로콜리, 양배추, 두부가 돌고 돌고 날마다 밥상에 오른다. 과일은 바나나 사과 오렌지, 아침 눈 뜨자 마자 공복에 마시던 커피를 끊고 대신 양배추. 커피를 마시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아침을 먹고 나서 커피 한잔만. 대신 감귤차 생강대추차 작두콩차 보이차 겨우살이 차 등을 꾸준히 마셨다. 신기하리만큼 시나브로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랬구나! 역시 날마다 먹는 밥상이 체질이 문제였던 거였어.....



나이 들수록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하는 이야기를 따르라고 했던가. 나이 들수록 입맛이 변한다. 체질에 맞는 재료와 음식을 몸이 원하는 가보다. 과거에는 손이 안 가던 재료와 음식 맛에 점점 혀가 눈을 반짝반짝 뜨고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타고난 체질대로 먹고살아야 탈이 나지 않고 병이 나지 않는다. 만고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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