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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최악의 소비들

by 식작가

치앙마이에서 삼일 정도 시간을 보냈고 적당히 소비를 했다. 물가가 워낙 저렴한 탓에 부담스러운 가격은 없었다. 그래도 로컬스러운 공간을 벗어나면 꽤 비싼 것들이 있다. 커피가 그랬고 맥주가 그랬다. 그 중에서도 유독 안타까운 소비들이 있었다.


오전에 반캉왓에 갔었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싶어 전날 찾아본 로컬 식당으로 볼트의 목적지를 찍었다. 좋았다.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고 휑하게 뚫려 있었다. 뒷편에는 작은 텃밭과 산줄기가 보였다. 내부는 나무 소품이 가득했고 앤틱한 느낌마저 들었다. 피쉬 누들을 주문했고 얇은 면을 택했다. 처음으로 타이티도 함께. 조금 떨어진 조리대에서 내 국수가 들려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노 팍치를 말하지 않았다. 십중팔구 팍치가 들어있을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잘게 잘려진 고수가 국물에 떠 있다. 어찌저찌 잘 걷어내도 자꾸 면을 먹을 때 입으로 빨려들어온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조각이 내 혀를 전부 뒤덮는다. 젠장. 그래서 그런가 국물도 맛이 조금 옅었다. 잔뜩 들어간 배추와 무를 보면서 기대를 조금 했다. 깊고 진한 그 국물을. 하지만 내 주문 실력부터 국물까지 전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한적하게 책을 읽고 싶어서 카페를 찾았다. 내 400원짜리 기도가 어찌나 잘 먹혔던지 끔찍한 햇살 아래에서 카페를 찾아 헤멨다. 오늘은 휴무인 카페에 앞까지 간 그 황망함이란. 발길을 돌려 두 곳의 카페를 찾았다. 밝은 분위기, 괜찮은 등받이, 큰 창문. 다 좋았지만 직접 보지 않은 나머지 카페가 너무 궁금했다. 구글맵 리뷰를 봤다. 창문 너머에 푸릇한 풀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5분 정도 더 걸었다. 내가 투자한 오 분은 그대로 소멸했다. 무겁고 어두웠다. 창문 너머의 풀들은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문을 열고 돌아가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더위였다. 커피가 조금 저렴했던 것이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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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에서 노트북을 할 카페를 하나 찾았다. 나는 채광을 참 좋아한다. 밝은 분위기의 카페가 좋다. 잘 찾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조금 북적였지만 구석에 창문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았다. 고민됐다. 방금 갈린 원두향이 참 좋았다. 블랙 커피를 먹을까. 사실 오전에도 먹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내내 커피류만 마셔서 조금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싶었다. 커피류에서 눈을 돌리니 착즙 주스가 보였다. 이름도 생소한 K로 시작하는 음료였다. 사과 파인애플이 눈에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민트가 읽혔다. 나는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디스 원. 바에서 내 음료가 천천히 다가올 때 또 느꼈다. 이곳이 밝은 톤의 채광이 좋은 브런치 맛집이라는 점. 묘하게 오가닉을 강조한다는 점. 점원들 포스가 범상치 않다는 점. 베이지색 거품이 띄워진 초록색 주스가 놓여졌다. 주스보다는 녹즙에 가까웠다. 아, 커피 마실걸. 대각선 테이블에서 일하고 있는 서양인의 커피가 그토록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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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모두 하루에 벌어진 소비다. 스스로 혀를 끌끌차고 하루를 마무리한 재즈바마저도 최악의 소비에 올라갈 뻔 했으나 두 번째 공연팀이 그것을 막았다. 맥주는 비싸고 공연은 별로였던 그곳에 내가 가장 궁금했던 밴드가 왔다. 어쩌면 오늘 최악의 소비는 이 밴드를 보려고 그랬던 걸까. 하는 초긍정 마인드가 잠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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