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타운에서 먹었던 똠얌 누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적당히 매콤했고 적당히 새콤했다. 감칠맛이 좋았고 면으로 먹어서 더 좋았다. 과하지 않는 향신료가 입맛을 잘 돋웠다. 성공적인 한 끼였다.
그래서 더 고민되었다. 원래 가려했던 식당 앞에서 고민했다. 유명한 똠양꿍 맛집이 걸어서 30초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택시를 타고 오면서 알았다. 결국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뒤적이다 발길을 돌렸다. 똠양꿍 맛집에 쓰여있는 리뷰 중, '김치찌개 같아요!'라는 한 줄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 똠얌누들 괜찮았잖아. 한 번 도전해 보자.
조금 작았고 아담한 식당이었다. 똠양꿍과 밥을 주문했다. 영락없이 찌개에 밥을 곁들여 먹는 모양새였다. 오늘도 여전히 노 팍치를 외치지 못해 고수가 들어가 버렸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그 강렬한 맛에 고수는 금방 묻힐 것 같았다. 붉그죽죽 하면서 묘하게 희멀건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그때 먹었던 똠얌누들보다 한 세 배쯤 맛이 강했다. 더 시고, 더 매콤했고, 더 코코넛스러웠다. 확실히 김치찌개를 떠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썩 괜찮았다. 야채와 버섯, 새우에 밥을 곁들이니 그럴듯한 식사였다.
똠양꿍을 처음 먹은 것은 중학생 때 싱가포르에서였다. 싱가폴 타이 음식점에서 나온 똠양꿍을 멋모르고 퍼먹었다. 아직 낯선 음식이 낯설었던 나이에 똠양꿍은 좀 충격적이었다. 모든 것이 강렬했고 혀에 닿아본 적이 없는 종류의 맛이었다. 먹어봤으니 족했다. 똠양꿍은, 아니 똠양은 나와 맞지 않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수년간 가지고 살다 다시 먹었다. 아, 내 입맛은 좀 성장했구나. 그때의 나는 뭘 몰랐구나. 똠양꿍 꽤 먹을만하잖아?
그러다 갑자기 지금 먹고 있는 똠양꿍의 맛이 유독 시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딱 절반쯤 먹었을 때 강력하게 그 생각이 들었다. 음료도 없이 똠양꿍 한 스푼, 밥 한 숟갈 먹으니 갑자기 확 부담스러웠다. 신맛은 이질적이었고, 향신료가 도드라졌다. 코코넛맛은 갑자기 밥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거 이렇게 먹는 음식이 아닌가?
첫맛이 괜찮았던걸 보면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국밥처럼 먹은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3~4개 되는 요리 속에서 간간이 한 스푼씩 떠먹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곁들여 먹을 음식이라곤 흰밥이 전부였다. 국물을 한 스푼 떠먹고 밥을 먹으면, 다음에 날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똠양꿍이었다.
새우는 모조리 건저 먹고 국물과 버섯, 그리고 양파를 조금 남겼다. 머리가 크고 나서 먹은 첫 번째 똠양꿍이었다. 한국인들 후기에 강하지 않은 똠양이니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대체 진짜 똠양꿍은 얼마나 삐죽삐죽한 맛일까. 한 입 먹고 식사를 포기할 만큼 나와 맞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근래에 또 먹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또 모른다. 한 십 년이 지나고, 삼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 오늘 먹은 똠양꿍을 회상하면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어렸던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며 한층 성장하고 원숙함을 갖춘 나는 또 똠양꿍을 주문할 수도. 어렸던 나를 늘 어리게만 생각하고,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성장했음에 어깨를 으쓱댄다. 후에 그 모습조차도 치기가 어렸단 것을 알까. 대과거의 나에게 으스대는 과거의 나를 보는 현재.
만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그런 식사를 마치고 후다닥 근처 세븐일레븐으로 가서 콜라를 샀다. 나 혼자 콜라가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서 자의로 구매한 것이 대체 몇 년만이지 모르겠다. 그 어떤 음료보다 콜라가 강하게 당겼다. 그토록 좋아하는 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청량하고 끈적한 단맛이 일품인 검은 액체가 혀에 닿고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입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꽉 붙잡고 내려가는 콜라를 마셨을 때의 쾌감이 너무 좋았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의 콜라를 이토록 맛있게 먹기 위해 똠양꿍을 먹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