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설민
악의 정점에 선 이들의 마음속을 치열하게 들여봐야만 했던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링)의 이야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대한민국에서 범죄심리분석관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전에 없던 심리 분석이라는 생소한 일을 수사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범죄자와의 심리 추격도 어렵지만, 경찰 내부에서의 무시와 비난에도 맞서야 했던 두 형사의 끈끈한 의리가 마음에 와닿는다.
드라마 배경이 1998년~2000년대 초여서 그런지 꽤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불과 3년 전의 작품이라니 놀라웠다. 마음을 읽는다는 말에도 끌렸지만, ‘악의 마음’을 읽는다니 호기심이 발동하여 보기 시작했다.
송하영 경사는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발견하는 단서들을 바탕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리하는 경찰이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공감력이 뛰어나다. 6살 때 호수에 빠진 사건으로 그 밑바닥에서 시체를 마주했을 때 무섭다기보다는 얼마나 외롭고 슬펐을까를 떠올릴 정도로 감수성이 뛰어나다.
그가 사건을 담당하면, 늘 당연하다는 듯이 가장 먼저 피해자의 가족들을 찾아간다. 수사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상심에 가득 차 있을 피해자들을 돌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다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뒤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챙기는 배려심이 가득하다.
이런 그의 재능을 알아차린 국영수 감식계장은 1990년대에 범죄행동분석팀의 필요성을 알아챘고, 실체 발촉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한다. 막무가내 형식으로 강압 수사를 하고 다른 서와 공조가 되지 않는 비효율성을 이야기하며 수사의 문제점 개선을 이야기한다.
범죄자의 특정 행동을 데이터화해서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형식의 프로파일링 시초가 되는 과정의 초기부터 많은 무시와 시련 속에서 정착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현장을 다니며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집필한 권일용 교수의 수필을 바탕으로 다룬 드라마라서 현실감이 높고 소름 끼치도록 상식을 벗어나는 범죄자들이 심리가 깊이 있게 드러나 있다.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남을 보는 시선이다. 하지만 그보다 매 순간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괴물이 태어나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누구든 언제라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중요하다며 너무 깊어지지 말라고, 그 깊이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영수가 하영에게 말한다. 또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며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고, 지나치게 몰입하는 하영에게 윤태구 기수대 팀장이 니체가 한 말을 이야기한다.
동료들의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국,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잔혹한 범죄와 범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고갈시켰던 하영은 정신적인 혼란을 일으키며 운전하다가 사고가 난다. 치밀하고 끈질기게 매달리다가 사건이 마무리되면 꽃을 사 들고 가서 그들의 마음에 치유를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은 보살피지 못하자 과부하가 난 것이다.
범죄행동분석팀에 지원하여 온 우주에게 하영은 묻는다. 왜 지원했냐고. 그러자 이름만 들어도 멋있어서 지원했다고 한다. 하영이 등불을 든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한다. 어두운 밤길에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시각장애인이 있어서 누가 물었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왜 들고 걷냐고. 그러자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 등불을 보고 부딪혀 넘어지지 말라고 들고 간다고 했단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밝히는 것. 범죄에 맞닥뜨리는 일은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영수나, 송하영 같은 형사들의 노력과 수고로 사건들이 하나둘 해결되고 억울한 사람들이 줄 수 있다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마치 사람의 목숨을 게임을 하듯 죽이는 범죄자들의 심리에 다시금 소름이 돋는다.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에 분노가 치민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왜 성인이 되어서도 바로 서지 못했을까? 그러면서도 그 일을 오래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건강을 돌보고, 운동을 하는 모순된 자기애를 드러내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밤길이 무섭고, 사람이 두렵지만 어떻게든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올바르게 자신을 지키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내 마음을 읽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건강한 사회인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