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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민 Jun 28. 2024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말 아침이 올 거라 믿어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말 아침이 올 거라 믿어요!


설민


   살아가면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외줄 타기처럼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줄을 잡고 경계를 오가고 있지는 않나 생각한다.

   지인이 나에게 ‘꼭 보라고, 꼭 보고 주변에 힘든 사람에게 힘을 주라고’ 이 드라마를 권했다. 그녀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드라마를 볼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세상 살아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살 가치는 있는 게 인생이다.’

   힘든 일은 하나씩 오지 않는다. 마치 쓰나미 같이, 때로는 지진처럼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여진을 남긴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잦아든 그 여파를 이겨내고 제발 힘든 시간이 끝나가기를 바라고 있을 즈음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때 드라마 생각이 났다.

   각자 견딜만한 시련을 준다고는 하지만 요 몇 년간의 고통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어릴 적 아빠가 돌아가실 때, 아직 엄마의 그늘이 필요했던 30대에 그녀를 잃었을 때와는 또 다른 아픔이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내 인생의 사건이었다, 가정에서도 일에서도. 믿고 의지하고 한 때는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받는 고통은 그동안 살아온 ‘내’가 완전하게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뽑혀나간 이처럼. 약속이나 한 것같이, 지나간 길이 없어지는 인생의 전환점을 돌아 나온 것 마냥 내 사고와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꾸만 틀어지고 흔들리는 앞니. 잇몸이 이를 잡아주지 못하니까 틀어지는 거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뇌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질이라 인식하고 이를 자꾸 몸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교정을 해도 계속되기에 최선의 방법은 아깝지만 이를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거라고 치과 의사가 말했다.

   치료를 받던 날, 아직은 내 잇몸 속에 뿌리가 남아있는 이빨을 빼는 순간, 갑자기 뻥 뚫린 이 사이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허전함을 너머 우주 속을 헤매는 공허함이랄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이빨이 소임을 다하지도 못하고 뽑혀나가다니...... 이제는 이를 뺀다고 다시 나지 않는데도 또 다른 뿌리를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살면서 다들 정신이 나갈 정도의 황망한 일을 겪으며 지낼 것이다. 어느 만큼이 정상의 범주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아닌지의 정도인가? 아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밖에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이 글은 ‘정다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의 관계와 소통과 성장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23년 11월 방영된 휴먼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인물들의 코믹한 면도 드러내지만 마음을 다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옴니버스. 평범한 사람들 간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내과 3년 차의 경험은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그곳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환자들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동안 해왔던 대로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세심하게 환자들을 대하며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친절과 배려가 정신병동에서는 때로는 독이 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런 과정에서 괴로움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주변인들의 지지와 도움을 얻어 씩씩하게 적응해 간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환자들에게 따뜻한 아침 햇살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다은. 이름처럼 같은 간호사들과 환자들에게도 다정한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는 우울증 환자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힘들고 싫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서 해내는 성격이라 심적인 고통은 더했으리라. 거기다 자신은 정신병동 간호사이다. 자꾸만 가라앉고 힘든 사실을 인정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병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주변에 어느 정도의 가스라이팅,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 같은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극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와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정신적으로도 감기처럼 병을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뼈 부러지면 정형외과 가고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것과 똑같아. 누구나 언제든 약해질 수 있는 거니까.”라는 대사처럼. 그 외에도 심연을 꿰뚫는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때론 슬프게도 때론 아프게도 때론 병들게도 한다. 그렇지만 때론 스스로 변하기 위해 던진 돌이 파동이 되어 자기뿐만 아니라 건너편의 누군가에게 닿기도 한다. 작은 파동에도 베이고 상처 나고 사람은 그렇게 나약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마도 미움받을 용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내 영혼에 칼을 들이댄다. 그래서 우린 늘 끊임없이 아프고 불행하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하나다.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옆에 있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안전장치를 찾는 것! 답답한 일상에서 숨 쉴 구멍 하나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다은에게는 그녀를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동고윤은 대장항문외과 펠로우 의사. 뭐든 꽂히면 포기를 모르는 집요함과 엉뚱함을 가졌다. 다은을 만난 이후로 자신이 변하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갖는다. 다은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단단해질 때까지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배려심이 있다. 그 또한 정신적인 강박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처지다.  

   송유찬은 다은의 베스트 프렌드.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을 다녔지만 현재는 부모님을 도와 치킨집에서 일한다. 공황장애로 인해 회사를 다닐 수 없는 것을 비밀로 하고 있지만 다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극복하고 있다.

   송효신은 정신건강의학과 수간호사다. 간호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엄마 같은 든든한 존재. 환자나 보호자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노련하게 대처한다. 그녀 또한 정신병을 가진 가족이 있기에 그 편견과 고난을 잘 아는 인물이다. 그러기에 환자뿐만 아니라 다은이를 더 잘 이해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병은 상실에서 온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거나 자기 자신을 잃었거나 또는 행복한 순간들을 잃었거나 그럴 때 우린 이젠 너무나 뻔해서 얘기하는 사람조차 낡아 보이는 희망이라는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 뻔한 희망... 그 뻔한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여기 있다.”라고.

   이 드라마 안에서 로맨스도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 유찬과 다은. 어느 때인가부터 사랑의 감정이 생겼지만 그 애가 나랑 같은 마음이 아닐까 봐 그래서 고백했다가 친구로도 남지 못할까 봐 고백하지 못한 유찬은 고백이 타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저 타이밍을 놓쳐서라고. 그러나 타이밍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용기가 있었고 누군가는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동고윤의 사랑을 보며 깨닫는다. 자신은 오늘도 타이밍 뒤에 숨은 그저 용기가 없는 놈이라는 사실을. 침묵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거짓말이 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어떠한 경로로든 살아가면서 마음이 다치는 일은 허다하다. 그것이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갈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기 어려울 경우는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

   부족할 것 없이 살았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는 살지 못하고 엄마의 인형처럼 온실 안에서 살아온 조울증을 가진 여자. 그 여자를 보면서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엄마 또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되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딜루전 환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해 자신을 박해한다고 믿는 망상을 가졌다. 숨 쉴 구멍이 필요한 대인공포증까지 생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공시생. 이로 인해 다은의 정신적 갈등이 폭등하는 계기가 된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고양이 후크선장 아빠. 어른이라고 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더 아팠다. 그것 또한 연습과 단련,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간호 실습생.

   보이스 피싱으로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날려 망상환자가 된 소녀.

   아이와 아내를 잃은 자살 생존자. 그 아픔은 남아있는 생존자의 처절한 몫이다.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와 행동,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조현병 환자.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파일럿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

   이처럼 옴니버스 식으로 여러 환자들과 인물들의 사연이 고루 다뤄져서 기억에 남는다. 잔잔하면서도 코믹한 부분이 곁들여지는데 그것은 속으로 곪아버린 그들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고통스러운 환자의 입장도 잘 그려내지만 그에 못지않은 가족들의 심각한 정신적 피폐와 갈등을 잘 나타낸다. 대부분 처음 갈등의 시작이 가족에서부터 오기에 더 공감이 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가족이라도 어느 정도의 정서적 거리는 확보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소중한 친구처럼 대해야 하지 않을까?

   정신적으로 황폐한 이들이 조금씩 자신과 또는 현실과 타협하며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가슴이 뭉클하다. 섣부른 판단으로 아픔을 겪게 되기도 하는 과정에서 다은이 예기치 않게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그런 다은에게 효신은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은 미워할 대상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때론 그게 전부인 사람도 있는 거야. 전부를 잃은 사람은 젊고 늙을 것 없이 세상이 무너지거든. 사람이 괴로운 상황을 바꿀 수가 없으면 스스로 원망할 상대를 만든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롭히고... 그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으니까.”

   우울증 치료를 받고 다시 간호사로 복귀하는 과정도 다은에게는 만만치 않다. 복귀를 주저하는 다은에게 송효신은 또 한 번 이렇게 힘을 실어준다.

  

   “편견과 낙인이라는 얼룩도 언제, 어디서 생긴 것인지 모를 크고 작은 얼룩도 흉터에 가려져 얼룩인지도 몰랐던 얼룩도 내가 스스로 엎지른 물 때문에 생겨버린 얼룩도 모두 깨끗이 씻어내고 털어버리자. 다 마르고 뽀송해질 내일을... 그리고 언젠가 올 깨끗한 아침을 기다리며.”

   다은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를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한다. 아프면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몸도 마찬가지지만 어쩌면 마음은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 우리는 모두 낮과 밤을 오가며 산다.

   우리는 모두 경계에 서 있다. 우리는 모두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다은이 처음으로 정신병동에 발령받고 온 날 효신은 병동을 안내하며 다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커튼도 없어. 그래서 다른 병동보다는 아침이 제일 빨리 와”

   빨리 아침이 온다는 것은 어쩌면 기쁨도 상처도 누구보다 먼저 예민하게 받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빨리 지나버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 것처럼 새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흉터는 남아있지만. 그로 인해 조금 더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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