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게으른 아침이었다.
겨울 외투처럼 무겁고 두텁던 여름 햇살이 풋풋한 어린 소녀들의 한여름 민소매 실크 원피스처럼 얇아졌지만 그래도 여름이다.
두터운 골판지에 물이 스며들듯 끈적거리는 더위는 무거운 대기에 천천히 젖어들고 있다.
거리는 늦잠에 취한 듯 오가는 사람 없이 한적하고 고요하다.
낯선 지중해 도심 어느 호텔 발코니에서 눈부신 햇살을 반쯤 접어 가린 브라인더처럼 실눈을 뜨고 인적 드문 거리를 몽롱한 정신으로 훔쳐보는 나른한 아침 같다.
맑은 미온수가 손목을 타고 흐르듯 부드럽게, 잠든 그녀의 콧김 같은 온기가 뭍은 아침 바람이 분다.
이런 아침이 방금 수면 마취에서 깨어난 듯 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오픈 준비로 분주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가게 앞 도로 한 복판에 바동거리는 웰시코기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지친 듯 앉아있는 중년의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힘에 부친 그녀의 얼굴은 반쯤 구겨진 전단지처럼 일그러져있다.
지친 숨이 목에 걸려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목젖에 걸린 숨을 삼키려는 모습이 닭이 물 마시듯 머리를 들어다 놨다 하는 것 같다.
그녀의 품에 쇼핑 봉투처럼 안겨있는 개도 혀를 길게 빼고 헐떡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려고 내 일에 열심인 척하며 곁눈질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의도치 않게 그녀와 두서너 번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듯 말을 건넸다.
“아저씨 혹시 이 개 아세요?”
“네-”하고 나는 못 들은 척 다시 되묻듯이 대답했다.
“이 개가 저기 아래 큰길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데려왔어요. 차에 칠까 봐 걱정돼서요.”
“근데 이 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성당 갔다가 일 가야 하는데 이 개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그녀는 내가 이 개를 맡아줬으면 하는 애처로운 심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나는 불편한 짐을 떠안기 싫어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빠르게 머릴 굴렸지만 예리하고 깔끔한 생각은 잠을 자 듯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나오지 않고 있다.
한 참 만에 그녀가 운을 떼었다.
“혹시... 그럼, 아저씨가 제가 성당 갔다 올 때까지만 이 개를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 저~어... 오늘이 일요일이라 손님이 많아서…….”하고 나는 귀찮은 일을 회피하듯 말을 흐렸다.
하지만 한편으론 “한두 시간 동안은 괜찮을 거야, 선녀(아내를 난 이렇게 부른다)도 개를 무척 좋아하잖아, 이 개를 보여주면 아주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이 내 맘을 흔들었다.
나의 짤막한 거절에 그녀는 한 가닥 희망을 놓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난 이 개를 선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맘에 좋은 방법이 나오길 바라며 빠르게 또 머릴 굴렸다.
그동안 그녀 품 안에 있던 개는 힘들고 답답한 품에서 탈출하고자 몸부림치고 있었고 이를 잡기 위해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하고 있었다.
난 생각과 다르게 입을 먼저 놀려 버렸다.
“이 개를 가게 안에는 못 두고요, 여기 발코니에 두면 어떨까요.”
"근데 묶어둘 게 없네요"하고 나는 말을 했다.
그녀는 내 말끝을 재빨리 낚아챘다.
“그럼 재가 집에 가서 끈을 찾아볼게요. 맞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집에도 작은 개가 두 마리가 있어요.”
“다 유기견이에요.”하고 그녀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개를 내 품에 던지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나는 그놈을 그녀의 품에서 넘겨받아 가게 안으로 들여놓고 문을 닫았다.
가게 안이 어수선해졌다.
그 순간 선녀가 내게 다가왔다.
“어머! 얘는 뭐야?”
“어디서 났어?”
“어, 그게 어느 아주머니가 이 개를 저기 아래 도로에서 데려왔는데…….”하고 나는 자초지종을 선녀에게 말했다.
선녀는 걱정이 앞선 듯 “그럼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떡하지?”
“애야 너는 집이 어디니?”하고 어린아이에게 말을 걸 듯했다.
웰시코기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여럿이서 한 마디씩 말을 보태고 있는 사이에 아주머니가 가쁜 숨을 목에 걸고 나타났다.
우린 발코니에 개를 묶어두고 물 한 그릇을 떠 놓았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저 아줌마가 안 오시면...., 이 개는...."
"......."
물끄러미 개를 쳐다보던 선녀가 말을 했다.
"집에서 키우던 개는 자기 집을 찾아가니까, 내가 얘를 데리고 동네 한 바뀌 돌아야겠어."
"그렇게 똑똑한 놈이면 벌써 집을 찾지 않았을까."하고 내가 의심적은 듯 말했다.
"그래도 혹시 알아요."
"이대로 주인 못 찾으면 보호소로 가고 거기서 입양 안되면 안락산데..."하고 말을 흐렸다.
"너무 불쌍하잖아."
"얘는 아직 애기야"
"갔다 올게."하고 선녀는 길을 나섰다.
난 멍청한 저 놈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답을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선녀는 나갔던 모습 그대로 돌아왔고 나는 그 아줌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아줌마가 오셨고 우린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은 유기견 보호소에 연락했다.
전화를 하고 1시간이 지나서 보호소 직원들이 오셨고 우리는 지금까지 일과 당부의 말씀을 간곡히 전하며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그 녀석은 이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을 받는 게 익숙하고 좋은 듯 폴짝폴짝 날뛰었다.
왠지 잘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덥석 맡았다가 남에게 떠넘겨버린 것처럼 맘이 무거웠다.
그 녀석을 보내고 한참이 지났다.
해가 저무는 저녁나절에 그 아주머니가 오셨다.
"그 개 주인 찾았데요."
"진짜요?"
"잘됬네요."
"네. 그 개 주인이 전화해서 찾았나 봐요."
"고생하셨어요."
"아주머니 복 받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