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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추위 Oct 25. 2022

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35 입원 중 외진! 환장하네~!


지난 2월 28일 우여곡절 끝에 아빠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그 후 몇 번의 외진을 다녀와야 했다.

입원 당시 급사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았을 만큼 신체 징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심방세동 및 심전도 이상을 이유로 3차 병원 진료를 권했다.

입원한지 보름쯤 경과했을 때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갔던 그날을 기억한다.

화장실을 가신다고 하고 사라질까 봐, 약국에 들러서는 조제를 기다리는 내내 담배를 피우겠다고 밖으로 나간 아빠가 도망갈까 봐 나는 2~3시간 내내 심장이 쪼그라드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아빠한테 내색하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를 쓰면서도 모든 신경은 아빠를 다시 병원에 무사히 데려다주는 것에 쏠려있었다.

어쨌든 아빠는 그날 무사히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문제는 외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진료는 병원의 배려(?)로 ....병원 직원의 인솔하에 잘 다녀오셨더랬다.

퇴원요구가 극에 달할 시점이었기 때문에 직접 모시고 갈 수 없는 심적 부담을 이해해 주시는 듯했다.

비록 "오라고 전화 안 해요!"라는 말 한마디 상처가 아직도 깊이 남았지만 말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대신 앞으로의 진료는 병원이 아버지를 계속 인솔해 주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이 문자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2022.9.5

*00병원 못 오신 진료 변경 알림*

오늘은 약속하신 00병원 00과 진료일이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내원하지 못하셨다면 다음 진료 일정으로

외래 예약을 변경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아빠의 다음 진료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므로,

보호자인 내게 이런 문자가 온 후에야 아빠가 병원 진료를 가지 못한 사실을 알아챘다.

왜 병원에서는 아빠를 모시고 다음 외진을 가지 않았나?

그다음이 내 몫이었다면 왜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을까?

과연 내가 아빠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올 수 있을까?

(나는 동생의 결혼식에 대해 한 마디 질문하지 않고, 퇴원요구만 하는 아빠에게 지쳐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은지 수개월째였다)

나는 짐짓 걱정됐지만 "아~ 나도 몰라!" 슬쩍 모른척하기로 결심했다.

병원에 아빠가 외진을 못 가셔서 문자가 왔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고 묻기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아빠를 모시고 외진을 다녀오라고 할까 봐 무서웠다.


모르는 척은 길게 가지 못했다.

9월 14일 아침 일찍 병원의 수간호사라는 분에게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9월 15일(?) 아빠의 진료가 있고,

3차 병원이라 대기 시간 및 진료시간이 길기 때문에 이 한 분 때문에 병원 직원 한 명이 오랜 시간 나가 있는 건 어려우니 보호자가 직접 모시고 다녀오라는 통보를 했다.

병원에서 알려준 외부 병원 진료 시간은 나 역시 한창 바쁜 내 일터의 근무시간이었고 더군다나 하루 전 통보로는 일터에 사정을 구하고 외출하기란 더더욱 불가했다. 첩첩산중이다.

병원도 수간호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본인들 동행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다른 보호자라도 동행이 가능할지 알아보고 전화를 달라고 했다.

하... 병원에서 절뚝이는 환자를 옆에서 부축하거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거나, 생명줄을 몸에 달고 있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의 모습을 보며 차라리 저렇게 간호라도 하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병원을 가재도 싫다. 병원에 겨우 입원시켜놓았더니 퇴원시키지 않으면 널 호적에서 파내겠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가족을 어떻게 보호하고 돌볼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아픈 아빠를 간병하고 싶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준비해서 입에 떠먹여드리고, 이곳저곳 아픈 곳을 모시고 다니며 원인을 찾아드리고, 좋은 영양제를 선물하고, 이불을 덮어드리고 싶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오죽하면 이런 기도를 했겠는가?

아빠가 술 사러 갈 기운, 술잔을 들 기운이 없을 만큼만 아프게 해달라고.......

보호자에게 의지하고 모든 걸 맡길 수밖에 없는 환자의 상태가 부러운 이 마음을 사람들은 알까?

나는 부랴부랴 진료가 예약된 병원에 문의 전화를 하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 중인 사정을 설명하여 환자의 진료 없이 일단 약만 대리처방받아서 전달하는 쪽으로 하루 고비를 넘겼다. 그마저도 증빙서류가 필요하고 의사와 통화시간을 잡고 통화를 해야 했고 약 처방받을 약국의 팩스번호가 필요했으며 입원 중이라는 이유로 외부 약국에서 약을 타갈 수 있는지, 병원 내 약국에서 원내처방을 받아야 하는지? 약을 비급여로 타가야 한다. 현재 입원 중인 병원에 청구해야 한다. 혼선이 생긴 병원 측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과연 약을 타갈 수나 있는 것일까? 한뭉치의 약봉지를 받아내기가 참으로 어렵고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지금 입원 중인 병원에서는 아빠의 약이 똑떨어졌으니 하루 안에 약을 꼭 가져다 주셔야 한다면서 전화와 문자를 반복했다. 원래 진료 일은 원래 며칠 전이었는데 본인들이 이것도 변경해 놓은 거라 설명하면서....

나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진료 일을 10일이나 넘겼던 사실도 알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보호자도 모시고 가기 어려운데 누가 아빠의 병원 진료를 신경 쓰겠는가?

병원 측의 태도는 당연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보호자는 이럴 때마다 환장한다.

앞으로 또 나는 이런 고비를 얼마나? 어떻게? 잘 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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