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빅토리아에서의 마지막 날! 어제 준비한 선물을 주고 대화를 나눴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기 지연으로 하루 더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집 근처 호숫가를 걸으러 나갔다. 버스 없이 걸으면 50분 정도 되는 거리. 버스를 타도 좀 걸어야 한다.
사는 곳 근처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다니 너무 부럽다.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트래킹 코스도 잘 되어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3개의 호수가 붙어있다고 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산 책을 조금 읽었는데 추워져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옆방 룸메이트 크리스티랑 12시에 놀러 가기로 했다. 몸이 조금 찹찹해져서 켐벨 수프를 먹었다. 앤디워홀 작품에서만 보던 수프를 직접 보니 신기했다. 조리법도 간단했는데 큰 볼에 수프를 붓고 그 통만큼 우유를 한 컵 부어서 전자레인지에 3분. 내 입맛에는 조금 짰는데 18퍼센트 크림 한 통 가득이랑 물 조금 하면 더 맛있을 것 같다.
크리스티의 대학교인 해틀리 캐슬로 향했다. 학교 안까지 들어가서 38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배차간격이 기니 잘 보고 타야 한다. 학생만 알 수 있는 스팟들로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덕분에 곳곳의 예쁜 곳들을 볼 수 있었다.
대학부지안에 성이 있어서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또 사진에 보이는 정면 캐슬 모습이 유명한데 크리스티는 건물 뒷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사람 없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사실 크리스티는 방글라데시 집에 메이드가 6명이 있는 부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이. 아빠는 외교부장관, 엄마는 하버드 학위가 2개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가족들이랑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부모님 지원 없이 대학원 학비를 내고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22살에 주식과 금을 팔아서 목돈을 마련했다고 했다.
ADHD가 있어서 좀 정신없고 하이한 면이 있지만 수학적으로 머리가 있는 것 같았고, 원하는 게 분명하고 똑똑한 게 배울 점이 많았다. 또 너무 착하고 스윗하다. 처음 호스트 가족들과 하이킹을 같이 갔을 때 나에게 처음 런던포그 티를 맛 보여줬다. 3주 있다가 떠날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하다니!
함께 시내로 와서 선물을 찾았는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저번에 티를 사준 것의 답례로 버블티를 사기로 했었다. 크리스티 최애 우롱밀크티가 품절이었다. 많이 달지 않아 좋았지만 난 공차가 더 맛있었다.
크리스티가 구글맵에 없는 빅토리아의 시크릿 플레이스를 몇 곳 소개해줬다. 어느 주차장의 야경, 너무 멋있다. 하지만 더 끝내주는 점은 외부 계단의 난간에 있는 음악 스위치이다. 뮤지컬 난간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손을 난간에 있는 동그란 스위치에 가져가면 불빛이 번쩍이면서 음악이 나온다. 또 여러 음악을 믹스할 수도 있다. 주차장이 우리만의 클럽으로 변신. 크리스티는 3층이 가장 취향에 맞다고 했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온 크라프트 바. 항구 뷰와 내부 모두 예쁘니 추천하는 곳. 해피아워가 꽤 좋았던 것 같으니 확인해 보고 가시길! 칵테일 두 잔과 크리스피 연어 스시를 주문했다. 음식도 술도 맛있었다. 주로 내가 크리스티에게 질문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번 경험으로도 나만의 틀이 많이 깨지고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크리스티에게 박사 이후 계획을 물으니 아마 캐나다 어딘가 조금 더 좋은 직업을 찾고 시티즌십을 딸 것 같다고 했다. 방글라데시는 여권 권위가 낮아 여행하기 장벽이 있다며 자기는 꼭 여행으로 70개국을 찍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은 굳이 정착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했다.
하버를 배경으로 야외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면 더 편하고 풍족한데 왜 나오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여행하는 것이 좋고 여기가 사는 환경, 사람들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크리스티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와도 이어졌는데 쉽게 풀자면, 일하는 곳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법이다. 경제적인 풍족함이 다가 아닌 크리스티의 인생과도 참 닮았다.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조언도 해주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고, 크리스티가 캘거리에서 산 귀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알록달록 너무 이쁜 귀걸이.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름 언젠가 휴가를 가서 꼭 사진을 보내줘야지.
그렇게 잠이 들고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해서 긴장감에 새벽에 깼다. 해외에서는 이메일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항공지연 두둥. 하루를 더 있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