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의 악필 편지
고백컨데 저 또한 그랬습니다. 군대에서 저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대대에서 손꼽히는 관심병사였지요.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하며 사소한 일에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끔찍했던 것은 그럼에도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 모든 결과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만 덜 성실하거나 조금만 뻔뻔한 성격이었더라면 노력의 결과물을 보며 그렇게 좌절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의 악순환에 빠져들었습니다. 보다못한 간부들이 저를 편한 보직으로 옮겨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절하기엔 제 우울을 감당할 수 없었고, 수락하기엔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남들 다 하는 군생활조차도 제대로 못 하고 편한 자리로 도망을 간다고요. 저 스스로의 판단마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 때, 한참을 흐느끼다 누군가 대신 정해주면 좋겠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때 군복을 입고 흐느껴 울던 관심병사는 어느 덧 서른 줄에 접어들었습니다.저는 여전히 그 때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항상 남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렇기에 저는 주의깊게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저의 모습을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다고 하기보단,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심이 있다고 표현하는 편을 좋아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들을 긍정할 수 있는지라고 생각해요. 같은 것도 어느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쓰임과 무게가 달라지거든요. 저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신중함과 배려심이 된 것처럼요. 어쩌면 그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지금의 자리로 저를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간 당신도 당신의 우울과 불안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 지도 몰라요. 한없이 두꺼울 것 같은 그 껍질 속에는 따뜻한 날을 기다리는 자그만 새싹이 잠들어 있겠지요. 저는 당신이 그 우울과 불안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때가 되면, 당신이 어떤 이름을 붙여 주었는지 알려 주세요. 저도 함께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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