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묻는 지월 작가님께

8월 12일의 악필 편지

by 낮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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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저도 식물을 키운 적이 있습니다. 화분까지 합쳐도 겨우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의 선인장이었지요. 화분을 선물해줬던 여자친구와의 만남은 석 달을 채우지도 못했지만, 이별 후에도 저는 화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겁니다. 여자친구에게 미련이 남아서였다기보단, 화분을 버릴 여력조차 없을 만큼 우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방 밖으로 들고 나가 쓰레기통에 화분을 툭 던져넣으면 그만이었을 텐데요. 밥을 먹고 집을 정리하고 출근할 여력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저 화분을 버릴 여력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꾸물거렸지만, 선인장은 꾸물거리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는 식물이 꾸물거리지 않는다니 참 이상한 말입니다. 그러나 아침나절에 책상으로 비치는 한 줌의 햇살과, 이따금 물컵 바닥에 고인 물을 제가 흘려주는 것만으로도 선인장은 꿋꿋이 살아갔습니다. 자라났지요. 어느 날부터 손가락 끝처럼 둥그스름하던 선인장의 머리 꼭대기는 자그만 이쑤시개가 돋아난 것처럼 삐죽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본 제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경탄도 놀라움도 아니었습니다. 지긋지긋하다, 였지요. 그렇게까지 살고 싶으니, 언제 말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아등바등 키까지 키우고 싶으니, 넌 참 지긋지긋하지도 않니. 물론 작가님의 마틸다가 그랬듯, 이 이름 없는 선인장 친구도 말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으로, 자라남으로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데 왜 불완전한 언어가 필요할까요. 이 친구는 대답 대신 느릿느릿 키를 더 키워갈 뿐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아침마다 햇볕이 조금 더 잘 드는 자리로 선인장을 옮겨놓고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삶은 굼벵이가 기어가는 속도보다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좋아질 것이라고요. 삶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좌절하고 꺾이고 쓰러지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더 중요했던 것은, 그럼에도 삶은 나아지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원하는 대로도 아닐 테고 원하는 만큼도 아니겠지만, 결국엔 나아지고 말리라는 그런 믿음이었지요.


작가님은 이렇게 물으셨지요. 무엇이 우리를 회복시키느냐고요. 여전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따금 삶을 되돌아보면 미약한 회복과 자라남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뿐입니다. 무엇이 저를 그리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때도 있지만,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 회복이 제 의지마저 아닐 때도 많았습니다. 예, 삶은 미지의 것이지요. 제가 죽지 않고 누군가에게 또 편지를 쓸 수 있을지마저 확언할 수 없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회복을 논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삶은 괜찮은 것이라고요. 삶은 좌충우돌 엉망진창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뜻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많겠지만, 또 삶은 자주 우리의 믿음을 배반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믿을 수 있습니다. 삶은 괜찮은 것이라고요. 우리는 좋아질 것이라고요. 그저 삶은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보다도 느린 속도로 좋아지고 있기에 우리가 쉽사리 체감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요.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잠시 멈춰서 삶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따금 운이 좋다면, 그 자리에 돋아난 자그만 새싹 같은 회복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제가 작가님의 편지를 받아 본 것처럼요.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중인 지월 작가님(https://www.instagram.com/wang_schrift)께 받은 편지의 답장입니다. 지월 작가님이 쓰신 편지는 지월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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