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의 악필 편지
짧은 편지였지만, 편지를 닫는 저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자신도 대학생이지만 코로나 이전의 대학 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하다는 당신의 말에는 어쩐지 긍정적인 힘이 느껴졌거든요. 불행이 닥쳐왔을 때는 상황을 탓하면서 움츠러들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당신의 호기심에는 그런 구김살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제목으로 편지를 보내기로 했어요. 커피 한 잔을 두고 친구와 수다를 떠는 느낌으로 글을 써보고 싶어졌거든요.
학생분들께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학창 시절일 때 코로나가 터졌더라도 제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사회성이 좀 부족한 편이었어요. 학교 같은 조직에서는 늘 적응을 어려워하고 겉돌았지요. 그리고 제가 싫어하거나 납득하지 못한 일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큰 사고를 친 적은 없으니 조용한 반항아였다고 할까요? 고등학생 때는 학교 생활을 버거워하면서도 대학에만 가면 어떻게든 달라지리라 생각했지요.
물론 대학교 생활도 저는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대학원을 나오고 대학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지요. 첫 학기는 동기나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참 노력했어요. 처음엔 OT나 MT도 빠지지 않고, 수업도 늘 열심히 들었죠. 그런데도 결국은 대학교 생활에 녹아들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음 학기부터는 유령처럼 수업만 왔다 갔다 하는 아싸가 되었죠. 아쉽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어요.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거든요.
그런 제가 찾았던 돌파구는 온라인이었어요. 중학생 때 소설을 쓰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만들었던 온라인 모임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제가 몸을 담고 있는 ‘흰 종이 위의 날개’라는 공동체입니다.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한 친구들과도 울고 웃으며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어요. 편지가 아니라 책이라도 쓸 수 있을 만큼 많은 일이 있어서, 무슨 일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네요. 여름마다 MT처럼 떠들썩하게 치른 정모, 쓴소리를 듣고 우는 친구를 달래주는 게 가장 힘들었던 온라인 합평, 머리를 맞대고 필사나 합작을 했던 소모임 등…
그 왁자지껄했던 소란의 중심엔 언제나 글쓰기가 있었어요. 글쓰기가, 자음과 모음을 이어서 나란히 늘여놓는 것에 불과한 이 작업이 얼마나 사람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람을 죽을 만큼 아프게도 하는지, 또 어떻게 죽을 것처럼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지… 대학교 강의실에서 배울 수 없던 걸 저는 채팅방과 게시판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그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다져져서 마침내 글쓰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되었을 때, 저는 문학치료와 상담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고 있지요.
이따금은 이 코로나의 시대가 악마의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걸 악마의 장난이라고 여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이에요. 그 어떤 불행도 누군가 불행이라 이름하기 전에는 불행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여기에 기쁨이나 희망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움츠러들지 않고 함께 이 시대를 지켜볼 수 있기를 바라요. 이 시대를 지켜보는 당신의 눈이 지금처럼 호기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요. 그럴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가 오늘을 돌이켜 볼 때 조금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지요. 저의 고독을, 제가 이제는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