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의 악필 편지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을 상상해봅시다. 고기잡이를 하다 물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의 발로 물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파도에 휩쓸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없는 어둠에 집어 삼켜지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요? 파도에 휩쓸리는 자신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파도처럼, 파도가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아마 그 사람은 바닷가로 떠밀려 온 후에야 기진맥진하며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 수 있겠죠. 그리고는 생각합니다. 내가 파도에 휩쓸렸구나, 파도가 나를 집어삼켜 나는 죽도록 괴로웠구나, 하고요. 파도에 압도당했을 때와는 다르게 이제 그 사람은 자기 자신과 파도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두렵지만 그 파도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파도를 무기력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무기력에 삼켜졌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것 같아요. 사실 무기력한 게 맞나 봐요, 라는 당신의 고백은 당신이 무기력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오래 괴로웠다는 말처럼 들려요. 자신이 왜 괴로운지조차 모르고 괴로워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조심스럽게 상상해보건데, 무언가에 압도당해 스스로를 잃어가는 느낌 아니었을까요? 거센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신은 파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여전히 있을텐데도 당신은 그 바다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파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무기력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겠지요. 당신이 무기력으로부터 당신 자신을 잃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주 무서웠지만 그 무기력을 바라보기를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당신은 관계에서 인정받고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관계들 사이를 표류하는 것은 파도에 삼켜지듯 숨막히는 일일 테지요. 그런 당신이 외로움을 택한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은 그 두려운 무기력을 외면하기보다 바라보기를 선택했어요. 당신의 내면에는 그런 용감함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쩐지 저는 당신이 그 파도를 향해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함께 상상해볼까요? 충만한 관계를 경험하고 무기력을 극복한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파도에 몸을 맡기게 될지요.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그럼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거든요.
타인이 쉽사리 이해하기에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 당신에겐 그런 상상을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상상력이 다시 파도를 가르고 바다에 몸을 맡기는 당신의 힘이 되길 바라요. 그 때까지, 저는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파도를 함께 바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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