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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아가 Oct 29. 2022

2022.7.24  -존재가치

어느 날 새벽이었다. 

특정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 기억력이 어디론가 뒤로 머뭇거리거나,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도주해버리는 마당에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다.


한손으로 분명 기억력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을세라 꽈악 잡고 있는데 

나머지 한손으로는 이것을 놓쳐 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의 다른 한손에는 저 몹쓸 만한 것은 여전히 움켜쥐어 있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몹쓸 만한 것이 내 손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내 다른 손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다.


이 사실에 나 자신은 흐뭇하기만 하다.

어깨가 들썩들썩~일 정도로 입가에 미소는 지워지지 않고 

흐뭇하다 못한 나머지, 야릇한 흥분과 쾌감까지 내 육체에서 떠날 생각을 하질 않는다.


그렇다.... 

"난 몹쓸 만한 무언가에 대한 지배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겠지?"

나는 자꾸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흥이 나길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몰랐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처 남은 절반을 지배하지 못하고 정복하지 못한 

나의 무기력을 꼭꼭 숨겨두고 망각해버릴 고얀 심산으로 

나는 승리에의 도취로 도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몹쓸 만한 그 무언가는 분명 나에게 물들어 적셔진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지배력에 물들기 이전에  

그것은 나보다 더 큰 무엇이라는 불가항력적 힘에 물든 것이 맞다.

나보다 더 크고 웅장한 무엇이라는 "그 어떠한 것"에 의해서 말이다.


사실 그것은 나에게 물들었다기 보다는,

내가 알 수 없는 그 어떠한 큰 것에 물들었다는 표현이 옳다거니~할 정도로 

내게 있어서의 지배보다는 그 어떠한 것에 의한 지배라고하기가 적당할 것이다.


나는 몹쓸 만한 그것을 잡고 있는 나의 남은 한손마저,

각성覺醒에 의해 그것을 놓아버리고 만다.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 가버린 것은 다름 아닌 그것을 잡고 있는 손 쪽이 아닌,

반대편 손에서 빨아들일 정도로 나를 흡입하고 있었던 무기력함이라는 

”그 어떠한 것“이라고 했던, 

내가 이길 수 없는 힘이었다.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나의 힘으로는 그것을 절대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의 무지, 나의 과오, 나의 인지, 나의 자각 그 어떠한 것이라도 좋다.....

심지어 나의 각성覺醒까지도....

하지만 내가 각성을 하고 획득하는 일이 있어도,

이길 수 없는 힘에 대하여 그것을 빼앗기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각성 하나를 얻는 대신, 

내가 움켜쥔 그것의 모든 것을 반대편에 내어 주었어야만 했다.


나는 일단 그것을 상실했고, 어느 것을 얻어버렸다.

어느 것을 얻은 대신 "나에 의한" 지배라는 것은 상실되었다.

이제 거대한 훼방꾼은 사라진 듯 싶다.

나는 반대편을 향하여, 

그것과 동시에 내가 그토록 망각하려 애쓰려 하던 것까지 몽땅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넘김과 동시에 그나마 남아있던 망각과 도취마저 싸그리 사라져 버렸다.


이로써 나는 각성 하나를 얻고 

끊임없이 날 괴롭히던 모든 것들을 처리해 버린 셈이다.


나는 꿈이 존재할리 없던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하였다.  

이미 잠 못 이뤘던 어느 날 새벽의 어둠마저도 지워진 것만은 아니다.

지워진 것은, 아니 지워줘야만 하는 것은 

계속해서 육신 어느에선가 나를 유혹하던 내 얄팍한 자존심뿐이었다.


나는 이제 선택의 미로에 서 있다.

새벽에 가리워졌던 아파트와도 같은 건물들이 하나둘씩 형체가 드러난다.

거리에도 개미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아래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형체와 형상들을 통과해버린 아직 이른 아침바람은 말없이 불어오기만 한다.

내 선택에 어떠한 도움이나 훼방도 놓치 않겠다는 듯이......


내 존재가치는 이제 결정될 것이다.

"마저 계속해서 지워버릴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하나까지는 간직해야 되는가?"


써늘한 아침바람에 콜록콜록 나는 기침을 한다.

'각성 하나면 충분하지~'


생각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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