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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아가 Oct 29. 2022

2022.6.10  -원한의 낙인


-1-

초월하고 또 초인이 되려 한 자는 이내 곧 실패해버린다.

이제 실패한 그에게는-조금 전 까지만 해도 초인이 되려던 그에게는...

"실패자"라는 "실패에 원한을 가득히 가진" "이"로 낙인 찍혀 버린다.

그는 이제 낙인을 가지고 그의 한평생을 누리게 되었다.

그의 곁에는 친구들도 가족들도 애인도 없다.

이제 그는 낙인과 함께, 낙인을 껴안고 사는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다.


-2-

애초에 그는 낙인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실패가 그의 낙인을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육신에 새겨진, 정확히 살과 육에 보란 듯이 새겨진 

이 잘난 낙인에 대하여 마구마구 절규를 할 뿐,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애초에 절망적인 이 잘난 낙인이야 말로 아무런 죄 없는 그에게, 

세상이 부여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부터 시작하여, 온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의 살과 육에 낙인을 새긴 세상에 대한 원망이자 원한이자 고함이다...

스스로에 대한 모든 화살은 이제 "자신을 둘러쌈"을 제외한

세상 그 모든 것들을 향해 나아간다.


"나의 원한이여...나를 제외한 그 어떠한 곳으로 마구마구 날아가렴"


"누가 되었던 간에 이 화살들로 하여금 그 누구를 반드시 맞추렴......"

이것이 그의 유일한 외침이자 바람인 것이다.

그는 원래 이런 인물이었다.......



-3-

그는 원죄 같지 않은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

어쩌면 이러한 원죄가 조상과도 같은, 오늘날의 그를 만들어 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의 가장 큰 결핍이자 망각될 수 없는, 지워버릴 수도 없는 

그러한 결핍이자 원죄이리라.......


그는 분명 스스로의 잘못 즉, 결핍이 많은 그런 자다.

하지만 무릇 사람이란, 무수한 잘못과 심지어 반복된 실수조차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이 사람이라는 대명사를 충족시켜주는 충족근거의 충분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명제를 거부해버린다.

그는 물론 세상의 충족에 따른 결핍과 자신의 결핍을 인정해버린다.

어찌 보면 그는 관대하게도 자신의 결함까지도 인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의 문제는 그의 결핍이나 결함, 더더욱 이것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인정보다는 인정의 그릇된 방향에 그 문제가 있다 하겠다.

이 인정이라 하는 것의 거룩한 문제의 시원과 그 설정의 문제에는,

이미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고 그러해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그는 부재되어 

있고, 그의 존재는 "사실대로는" 결핍된 채, 모든 것은 오히려 온전히 남겨진 상태이다.


인정의 거룩한 문제의 시원과 그 설정의 문제에는 

그를 부재한 그 밖의 남은 모든 것들만 존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원하던 방향일 것이고,

이글을 쓰는 나 또한 어쩌면 이러한 전제를 바랬을 지도 모른다.


-4-

그는 지나치게 어리석고 멍청하다.

그가 "지나침"이 아닌 "약간의,다소의" 정도에서만 이것들을 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코 조금도 그는 자신의 이런 면면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이러한 면면은 오직 세상 때문이리라........


그의 온전하다 못한 완벽하리라 만큼의 온전한 결핍은 그 자신을 뛰어넘어 세상까지 포용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의 이상에만 국한된다.


문제는 이러한 결핍이 그의 영혼을 이내 잠식해버리기 시작하고, 

그의 영혼과 살과 육은 고대 시대의 노예처럼 마냥, 

"원한의 낙인"이 이마에 보란 듯이 새겨진 상태이며,

그는 이마에 새겨진 이 원한의 낙인을 미처 처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

그는 성찰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그릇됨과 과오, 뒤틀려나간 욕망, 허위와 위선 ..................

어차피 충족하지 못할 자신의 행복을 위한 타인의 고통들 등..등.......

이것은 성찰을 전혀 모르는 그의 특성들을 나열한 것들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어리석음과 멍청함의 지나침에 대해 

약간만 버렸다면, 스스로 또한 얼마나 짐을 덜고 

조금이나마 편안해 질 수 있었던 지를.........

하지만 그는 이 간단한 사실을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 보다는 그는 이를 의욕하고 욕망했다.

자기 딴에는 이것을 욕망하면 욕망할수록,

자신은 원한의 카타르시스와 나르시즘에 촉촉히 물 젖어, 

이름 모를 듯한 환상과 환영의 체계 속에서 마음껏 행복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비록 이것이 언제까지일지는 필자조차 알 길이 없지만..................


이러한 연유들로 그는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원한을 살 일을 하였고,

실제 그 중들 일부는, 일부들로 하여금 원한을 앙갚음 당하였다.


그는 이제 더더욱 상승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나르시즘을 위해.....

그의 욕망적 나르시즘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는 타자들에게 원한을 사고 앙갚음을 도리어 당한다.


이때 그는 세상에 목 놓아 외친다.....

"이 모든 것들은 세상이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며,

나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힐난 당하는 것이며, 또한 소외된 것이리라는 것을......"


"선천적으로 본디의 나는 선할지언정, 세상이 나 자신에게 한을 갖게 만들었다...." 는 것을 ....


그는 스스로에게 있어선, 스스로를 거룩한 신의 자손이자 대손인 천사로 여기듯이, 자신에게는 한없이 훌륭한 변호사이자 달변가였다.


하지만 그는 망각했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그의 그토록 훌륭한 달변들이 여기저기 쓰레기 넝마처럼 늘어놓고 만, 

타자의 가슴과 그 자신의 가슴 스스로가 지울 수도 없는 

일종의 멍에와도 같은, 원한의 낙인을 여기저기 새겨놓았는지를 말이다.....................


이제 그는 타자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망각해버린 

기억상실증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6-

기억상실증에 갇혀 버린 그가 유일하게 망각하고 잊지 않은 단 하나...

"타인의 고통들"일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어차피 충족되지 못할 

자신의 결핍된 행복을 위한, 허울만 좋은 그 수단 말이다.


혹여 그는 이것만큼은 기억하거나 혹은 인지할 지도 모른다.

이 나르시즘적 행복이 영원히 결핍될 지도 모른 다는 점과 

자신은 무얼 위해 이 나르시즘적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지를....


앞서 말한 두 개의 사실이, 그의 행위에 대한 나름 좋은 근거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행위의 반복성"에 대한 인지를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동일한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왔고 

반복해 나갈 것이다. 


어쩌면 이런 행위"만"이 유일하게 그에게 위안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으니깐.....


원한에 사무친 그도, 기억상실증에 갇혀버린 그도,

자신의 "반복적 행위"만큼은 잘 인지하고 알고 있다.

시계가 고장 나지 않는 한, 

시계 바늘은 언제나 건재하다는 듯 돌아가듯이,

이 사나이의 반복적 행위도 예외가 없는 이상,

끊임없이 반복해 나갈 것이다.

마치 반복적 행위가 그의 "생 전부의 사명"이라도 된 듯,

그는 오늘 또한 주어진 사명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기 바쁘다.....


이게 내가 아는 그 사나이의 운명이다.



-7-

그는 오늘도 역시나 하고 나의 기대와 독자 여러분들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여기저기 자신의 고개를 매만져가고 돌려가며,

자신 스스로의 그릇됨과 과오, 타인에 대한 뒤틀려나간 욕망과 타인의 절망하는 고통을 넌지시 바라봄과 기대함, 그리고 타인의 절규만을 위해 "사명에 의해" 성실히 살아가는 그다.



-8-

그는 지금까지 너무나 성실히 살아왔다.

성실히 살아온 그에게, 필자로서의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려 한다.


이제 깨야 한다...깨야한다..잠에서 깨야한다...

끊임없이 쏟아져 오는 그만의 몽매 속에서....깨야만 한다....

이것이 그가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생애 처음 "존재의 진실"이리라....

깨어나라...그대여.....


-9-

그는 나의 신실한 조언-존재의 진실-까지도 외면하고 무시해버렸다.

이제 우리의 시야 앞, 시내 광장 한 가운데에 용기 있게 서 있는 듯한 그를 목격하게 된다.


그는 시내의 만인이 그의 이마에 원한의 낙인을 새기기도 전에,

그 스스로의 이마에 원한의 낙인을 새겨버리고 만다.

그는 드디어 이제 대대적으로 "원한의 노예"임을 공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차라리 무모한 객기와 오기 그리고 자기괴멸의 원한적 행위였다....


타살과 자살을 말버릇처럼 재미삼아 늘 항상 농(농담)으로 던지던 그....

이제 그는 타살이라는 위협에서 벗어났을지는 모를지언정,

그 자신이 후자의 거룩한 선택권을 스스로 선택할 처지에 놓여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 후자의 선택권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택이 결정으로서의 선택이 되지 않았던 동안에는, 

그동안만큼의 기간은 모든 욕망과 욕망함이 그를 고통스럽게 놓아주지를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움에 못 이겨 끝끝내 절규를 하고,

이내 절규조차 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살과 육을 맘껏 비틀어 버리리라....



-10-(에필로그)

그의 집념은 대단하였다.

 

그는 늘 결핍되어 있다.

그는 늘 배고파하고 

늘 굶주려 있다....

그는 항상 어디선가 잠시나마 코긋을 찡그리게 할 정도의 

그런 피냄새를 좋아하니깐...

하지만 그는 

육식동물이 아니다....

 

그는.....

깊다 깊으다 못해 

푸르다 푸르다 못해

검청색의 색상을 지닌 바닷 속의 상어처럼 

다른 어종의 피를 그토록 좋아하는 한 마리의 상어조차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그가 피 냄새를 좋아하고 

이것이 그의 코끝을 잠시나마 찡그리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문제가 아니다...

그는 문제라는 테제를 초월해버리고 만 

흔한 범죄심리학자들이 쉽게 언급하고  내버릴 법한 

"쏘시오패스"에 해당되니깐.....

 

하지만 그에게 흥분과 쾌락,

즉 일종의 광기, 광란을 일으키는 혈액 내지는 피는 

타인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에게는 타인의 존재만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가 그토록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은,

이제 자신의 피다.

 

왜냐하면 그는 흥분의 맛을 맛보아야 된다.

이것을 참는 것이란...

이것을 금기시하는 것이란...

더 이상 그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불가능한 영역에 놓여져만 있다.

 

 

그는 불가능한 영역에, 

그것도 쇠사슬로 이리저리 꽁꽁매인 강철로 된 철제상자를 풀기 시작한다.

상자는 생각 외로 매우 매끄럽고 부드럽다.

그것은 그가 상자를 방치해 둔적이 쉽사리 거의 존재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상자를 관리해둔 그의 노력에 부응하였으리라....

 

사악하면서도 음울한 눈빛으로...

아니 때로는 우울감이 그의 면상面像 전부를 차지한 채로

그의 모든 것을 표상해준다.

우울감이 얼굴 가득히 이내 독처럼 스물스물 퍼져버린다.

 

면상 전부는 한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우울감이 지배하고 있다.

면상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입가에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만이 퍼진다.

그것도 소리 나지 않는 음울한 미소이다.

 

그는 쇠사슬의 자물쇠에 알맞는 키를 넣어 사슬을 풀어 헤치고, 

밀봉되어 있는 상자 또한 상자의 자물쇠에 알맞는 키를 넣어

이것까지 해쳐버린다.

그렇게 해서 알 수 없던 철제상자는 봉인이 해제되고야 만다...

 

상자로부터는 

붉은 혈액이 서서히 흘러져 나온다.

이것은 그의 혈액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기괴하거나 기묘한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만은 

없다.

 

광기의 미소, 광기의 흥분을 즐기는 자의 자해이자,

그 자신의 혈액으로 가득한 욕조 속에서

핏빛 색깔을 내는 와인을 마시며,

잔뜩 포만감 있게 도취해버린 

그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혈액을 욕조 안으로, 그리고 욕조를 넘어선,

욕조 밖의 타일까지 흐르고 흐르고 넘치도록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혈액은 그것의 "넘쳐 흐름" 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제 흘려진 코팅 된 타일 위의 그의 혈액은,

그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하고자 한다.

 

그도 안다.

너무나도 잘....(이러한 사실을)

이러한 사실 양태를 그토록 잘 아는 것이 그 자신이다.

그는 너무나도 영혼의 잠식을 잘 알기에

이것에 도취되고 나름 그만의 즐겁고도 아름다운 미학에 

심취해버린다.

 

이것이 그가 영원토록 머물고 싶은 

변태적인 미의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그도 유한적인 존재다...

그는 결코 "변태적인 성향을 지닌 이"로만, 

영원히 머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자신의 모든 것을.........

광란의 미학과 쾌감을 가져다 준 유일무이한 악마에게 

악마와의 협상, "계약서의 조건" 그대로 

결국은 그것을 헌납해 버리고야 만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마지않고 바라던

그의 비극....

그 모든 것의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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