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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 쓰담 쓰담

1. 쓰담쓰담

by 양윤화


이십사오 년 전, 시끌벅적 해맑은 아이들과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바쁘게 생활했다. 학원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학원생은 계속 늘어났고, 공간이 좁아 대기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잘 나가는 학원과 달리 나에게 고민이 생겼다. 내 학원은 날로 번창하는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조금 걱정되었다. 결혼하고 시작한 학원이라 자녀계획도 미루기로 하고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학원은 날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검소하고 순박했던 신랑은 너무나 여유롭고 씀씀이가 커지고 있었다. 월급을 혼자 다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정기 예금도 해약하면서 쓰고 있던 것이 아닌가? 주변 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푸념하듯 얘기했더니 조언들을 해준다. “그러다 버릇 나서 나중에는 양 원장이 신랑을 먹여 살려야 될 수도 있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며 웃으며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돈과 명예보다 가정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주의인 나로서는 독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일주일 뒤 학원을 정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교육 철학이 나랑 비슷한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너무나 기뻐하면서 원장님을 알게 된 일이 인생에 큰 행운이라며 학원을 맡게 되어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일궈낸 학원을 아끼는 선생님에게 넘겨주게 되어서 아쉬움은 그나마 덜했고, 다행이었다. 학원을 정리한 후 주위의 반응들은 “역시 윤화답다.”

나다움. 윤화다움.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날들이 시작되면서 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였고, 언니랑 같이 여가 생활도 하면서 자기계발에 힘썼다. 결혼 전, 퇴근하고 취미 생활과 자원 봉사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삶을 살았던 그때처럼 너무나 행복하고 보람된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나는 헌신적인 며느리이자 아내가 되었다.

귤 따는 10월부터 12월까지 매일같이 한 시간 거리의 시집에 일손을 도우러 갔다. 그리고 시집 동네 경조사랑 친척들 행사에 더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큰애가 3살 때 작은애가 태어났다. 그해 귤 수확기가 되자, 큰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안을 정리하고 6개월 된 작은애를 운전석 옆에 태우고 시집에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 귤 따는 인부들 식사하신 것들을 정리하고 간식 챙겨 드리고 제주시로 넘어와서 큰애 맞이하고 저녁 준비하고 애들과 놀아주고 정리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일상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주변으로부터 받는 칭찬과 스스로의 뿌듯함과 보람에 삶이 즐거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 이름보다 애들 엄마로 불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너무나 행복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밝고 긍정적이며 똑 소리 나는 자랑스럽고 예쁜 우리 아이들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전교 1 등의 명성을 가진 큰딸과 전교 1등인 학생회장이라는 명예의 작은딸이 각종 교내·외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하는 쾌거를 안겨 주며 내 삶을 더욱 빛내주었다. 늘 믿고 응원해주는 원수 같은 내편과 친정 엄마 같은 언니와 믿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주위 분들이 있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학원을 계속 했더라면 명예는 있었겠지만, 시간에 쫓기며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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