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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는 기술"

by 이불킥개혁가

종점에서 종점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눈꺼풀은 무겁고, 마음은 답답했다. 침대 위에 앉은 채,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생각보다 먼저 떠오른 건 통장 잔고였다. 마이너스 2만 3천 원. 커피 한 잔도 사기 애매한 숫자다.


변한 건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변할 일도 없을 것 같다. 그저 시간만 흘러간다. 해야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전철을 탄다.


출발역은 상행선 종점. 그곳에서 하행선 종점까지 간다. 목적지는 없다. 이 여정엔 회의도 없고, 약속도 없고, 일도 없다. 다만 자리를 하나 맡아, 창밖을 본다. 도시의 얼굴이 조금씩 바뀌는 걸 지켜보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하루를 버리고 있다.’


차창 너머로 사람들의 삶이 스친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교복 입은 학생, 등하교에 바쁜 학부모들.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는 그저 이 흐름에 섞여 있을 뿐, 아무 방향도 없다.


가끔 누군가 내 옆에 앉는다. 짧은 한숨, 급한 전화통화, 흔들리는 눈빛. 그 사람도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종점으로 가고 있다. 어디에 닿을지 모른 채.


두 시간쯤 지났을까. 종점에 도착했다. 다시 상행선을 탄다. 돌아가는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릿속을 맴도는 건 똑같다. “이러다 괜찮을까?” 하지만 확신은 없다.


그래도 이상하게 이 전철 안에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공간. 지켜야 할 것도, 보여줘야 할 것도 없는 시간. 그게 유일한 위안일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종점에서 종점까지 이동하며 하루를 흘려 보낸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하루가 무언가를 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다시 창밖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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