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질문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왜?'를 달고 살았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집안 식탁에서도.
"왜 이건 이렇게 해야 돼요?"
"왜 사람들은 그걸 그냥 받아들이죠?"
대부분의 어른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고, 때로는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런 거야.”
하지만 내 안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세상이 그렇다 해도, 내가 그런 건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 나는 질문 대신 답을 외우는 법을 배웠다.
시험을 위해, 남들보다 늦지 않기 위해, 주어진 길을 따라가기 위해.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내 삶은 멈췄다.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나는 내가 쌓아왔던 ‘답’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질문을 멈췄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라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그 질문에는 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다.
신도, 의사도, 책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세상을 향해 ‘왜’라고 묻는 그 충동이야말로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도.
나는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이 일에 의미는 뭘까?"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내 경험을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
질문은 나를 길 위로 올려놓았고,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라는 이름을 찾았다.
에릭 호퍼는 말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나는 오늘도 질문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