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국립공원 200% 맛보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미국 서부다. 대가는 맛집이다. 그렇다고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장거리 드라이브로 이어진 여정의 쉼표다.
Yosemite Valley에서의 첫 바비큐
인천 공항 출국 전부터 새로 고침 버튼을 반복한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요세미티 공원 바비큐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하루 먼저 버스로 출발한 이들은 서쪽 게이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온다. 전날의 모뉴멘트 일출을 보기 위한 24시간 드라이브 후유증에서 벗어나면서 누른 새로 고침 버튼은 버저비터가 된다. 겨울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마침내 동쪽 게이트로 이어진 126번 도로를 허락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라스베이거스 외곽의 대형 마트를 향한다. 정육 냉장 진열대에는 80명 분의 바비큐용 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덩치가 산만한 인상 좋은 식육 코너 담당자는 창고에 있으니 필요한 양을 곧 준비해 주겠단다. '곧'은 국경을 넘으면서 개념의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인에게는 영겁의 시간이다. 시간은 흐른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2개에 가득 담긴 바비큐용 고기를 받아 든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숯 대신 차콜을 주로 사용한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3포대를 담는다. 불을 붙이는 데 사용한다는 기름도 준비한다. 태평양을 건너니 바비큐 초보가 되어 버린다. 긍정 회로를 돌릴 수밖에.
다음 날 새벽, 10대의 차량은 라스베이거스의 엑스칼리버 호텔을 차례로 출발한다. 데스벨리 Zabriskie Point에서 일출 촬영을 마치고 바닷물을 말려버린 뜨거운 태양을 간신히 피하며 전날 준비한 주먹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락이다. Sand Dunes 벗어나자 해수면보다 낮던 해발 고도를 단번에 극복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 한참을 눈 덮인 시에나 산맥과 나란히 북쪽으로 달린다. 자연에 취해 멍해진 정신은 126번 도로를 놓칠 뻔한다. 서쪽 입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어제까지 길을 막고 있던 눈들이 지천이다. 뒤따르던 차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을 쏟아낸다.
요세미티 밸리 한편에 자리한 바비큐 장에 도착한다. 여기 저리 자리를 잡고 차콜에 도전한다. 숯과 토치에는 전문가이지만 차콜과 기름은 초보다. 다행히 남아 있던 불씨가 있다. 인공 심폐 소생술을 방불케 하는 노력으로 살려내고야 만다. 몇몇은 마른 나뭇가지를 활용해서 성공한다. 근처에서 바비큐를 하던 미국 대학생이 조언을 한다. 나뭇가지를 쓰다가 공원 관리자에게 발각되면 벌금이 엄청나단다. 조언을 구해본다. 그들은 신문지를 준비한단다. 인터넷보다는 현장 전문가다.
바비큐 그릴의 망은 청소가 필요해 보인다. 도구가 없다 보니 쿠킹 포일을 사용한다. 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주일여의 터프한 여정은 단백질 수요 폭발을 낳는다. 육회를 벗어난 수준임에도 빠르게 소진된다. 정신이 돌아오자 바비큐 장 옆을 흐르는 계곡이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서 폭포의 존재가 희미하게 다가온다. 삼삼오오 공원 산책을 나선다.
Lake Tahoe Sand Habor 바비큐
샌프란시스코가 마지막 일정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리노를 지나면 레이크 타호다. 5월 초는 레이크 타호를 둘러싼 스키장 폐장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날씨에 대한 걱정은 없진 않았지만, 불을 지피면 된다는 생각에 샌드 하버로 결정한다.
고기, 야채와 차콜은 west yellowstone, saltlake city 등에서 구매를 한다. 철망과 가스는 LA 한인 마트에서 확보한다. 토치와 가위 등은 한국에서부터 준비한다. 맥주는 현지 조달이다. 조금은 전문가스러워진다.
알람 소리에 놀라 지난밤 12시에 한 샤워로 세수를 대신하고 솔트레이크 시티를 출발한다. 산과 하늘을 담은 소금 호수를 지나 지겹도록 달리고 나서야 리노를 만난다. 몇 가지 부족한 장보기를 마치고 산을 오른다. 아직 눈 빛이 비치는 산으로 둘러 쌓인 빙하호가 펼쳐진다. 지금껏 레이크 타호에서 만나보지 못한 여름 날씨다. 샌드 하버에는 수영복 차림의 휴양객들이 썬텐을 즐긴다.
얼굴 크기 만한 솔방울이 흩어져있는 바비큐 장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차콜과 토치로 능숙하게 불을 붙이고 긴 여행을 나눈다. 가벼운 알코올과 따뜻한 햇살이 어우러진다. 아이들은 빙하호로 뛰어든다. 작품 활동에 몰입하며 호수변을 산책하는 이들은 작가가 되어 돌아온다.
세콰이어 국립공원 바비큐
모뉴멘트 벨리에서는 프라이팬에서 구워진 스테이크로 아쉬움을 달랜다. 오븐에서 구워진 닭으로 저녁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래도 단백질은 숯으로 구워야 한다. 2주 코스의 마지막 국립공원은 Sequoia National Park이다. 제너럴 셔먼 트리를 보느라 뻐근해진 목을 풀 겸 바비큐 장으로 향한다. 6월 중순임에도 아직 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바닥에 놓인 그릴에 차콜을 쏟아붓고 토치로 부지런히 불을 붙인다. 철망을 걸치고 다양한 종류의 고기와 야채를 올려놓는다. 뜨거운 햇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수십 미터씩 뻗은 세콰이어의 나뭇잎 사이로 비친다. 2000미터 고도가 가져오는 조금은 차가운 바람과 조화를 이룬다. 불을 끌 때는 옆에 쌓인 눈을 이용한다. 바비큐 장 화장실은 여느 국립공원과는 달리 깔끔하고 물도 풍족하게 제공한다. 설거지와 불 끄기를 편하게 해 준다
다음 여정을 마음속에 담아보곤 한다. 바비큐와 편안한 맥주 한잔을 위한 장소로 단독 주택 전체를 사용할 계획을 세워본다. 옐로우스톤도 빼놓을 수는 없다. 미국 최고의 맛집은 바비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