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PD Nov 08. 2021

미국이 수출하는 음식

미국인의 삶으로 안내하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파견 근무 첫날, 맥도널드를 향한다. 응팔의 정환이와 덕선이가 어리바리하던 압구정동 1호점이 기억에서 소환된다. 한 달 먼저 미국에 온 동기와 줄을 선다. 무언가 말을 할까 말까 하며 슬쩍 미소를 흘린다. 목을 졸라 진술을 받아낸다. 못 알아들을 거란다. 매뉴얼대로 답하면 된다면서 세트 메뉴 번호를 이야기하고, 음료를 선택한 다음, 포장인지 아닌지를 순서대로 말하면 된단다. 주문을 받는 직원의 발음은 알고 들으면 들리지만, 모르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랩이다. 프렌치프라이 대신 콘샐러드를 시킬 때면 가위바위보를 한다. 앞에선 동료가 성공하면 같은걸 달라고 하면 된다. 키오스크가 일반화되면서 추억이 된다.


맥도널드 Mc Donald


풍족하지 않은 파견비는 초기 두 달여 점심을 맥도널드로 강제한다. 고기 패티를 두장씩 넣어주는 빅맥이 가장 저렴한 메뉴다. 반복되는 저작 행위는 구성에 대한 의구심을 강화시킨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포커판 정의의 수호자인 동기는 먹던 빅맥을 던지며 "내가 이런 걸 계속 먹어야 해"라고 치민 분노를 조용히 표출한다. 그날 이후 햄버거 브랜드 투어가 시작된다.  


무인지대를 몇 시간씩 달리다 보면 노란색 더블 아치가 반갑다. 문명의 흔적이다. 인간에게는 망각 능력이 장착되어 있다. 익숙한 메뉴와 인테리어는 예민해진 여행객을 다독거린다. 맥도널드는 휴게소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칼스 주니어 Carl's Jr


맥도널드에 지친 이들은 한국에서 접할 수 없는 버거를 찾아 나선다. 조금 더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소확행이다. 불맛이 나는 패티가 밋밋한 맥도널드와 다른 식감을 준다. 맥도널드에 비해 점포가 많지 않다 보니 미각이 힘들고 지쳤지만 주머니가 가벼울 때 찾게 된다.


인 앤 아웃 In N Out


샌디에이고에서 유학 중이던 딸아이는 한적한 동네의 인 앤 아웃으로 안내한다. 고객층이 젊다. 메뉴판에도 없는 애니멀 스타일을 주문한다. 프로틴 스타일이라고 빵 패티 대신에 양배추로 햄버거의 내용물을 랩핑 해주는 메뉴도 있다. 사용 설명서를 첨부하지 않고 사용자들 간의 네트워크로 사용법을 알아가라는 애플과 오보 랩 된다.


새벽부터 아치스 국립공원을 둘러보고 옐로우스톤까지 900Km를 달려야 하는 힘든 일정이다. 앞서가던 차량으로부터 전해온 한국 마켓에 대한 과장 정보에 홀려 솔트레이크 시티 시내를 헤맨다. 아시안 마켓에서 아쉬운 대로 필요한 식자재를 구입하고 나니 허기가 몰려온다. 인 앤 아웃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적당한 크기와 꽤 괜찮은 소스 맛으로 감동은 아닐지라도 만족스러운 저녁을 마친다. 이제 옐로우스톤까지 남은 반만 달리면 된다.


파이브 가이즈 Five Guys


80명분의 햄버거를 주문하러 대형 몰 중간에 자리한 파이브 가이즈를 향한다. 세트 메뉴가 없다 보니 일행 중 일부는 음료와 군것질거리를 쇼핑하러 마트로 달려간다. 사전에 전화로 주문을 해 두긴 했으나 미국의 속도는 한국과는 다르다. 매장 중간에는 소금기를 가득 머문 무료 땅콩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바라보며 거대 버거를 입으로 밀어 넣는다. 긴 비행 피로에 햄버거로 해장한다는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


두바이 버즈 칼리파의 분수쇼를 보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두바이 몰의 한 귀퉁이에 파이브 가이즈가 눈에 들어온다. 정면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야가 확보되는 위치다. 아부다비 상그리라 뷔페의 과식 여파로, 4명이 햄버거 두 개와 음료로 자리값을 지불하고 스테이크 맛을 콘셉트로 한 햄버거와 땅콩을 먹으며 분수쇼를 감상한다. 


슈퍼 두퍼 Super Duper


아침나절의 나파 밸리 와인 투어의 숙취가 사라질 즈음,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슈퍼 두퍼 버거를 검색한다.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소문에 일행을 먼저 내려주고, 세 번을 돌아 쉽지 않은 노상 주차까지 해 낸다. 채식을 좋아하는 와이프는 베지테리안 버거를 주문한다. 크기에서도 만족스럽고 맛에서도 지금까지 햄버거에 대한 기억을 재 수립하게 한다. 


서브웨이 Subway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밤, 짧은 수면 이후 그랜드 캐년을 향한다. 후버댐 통과 구간을 제외한다면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실눈으로 뜨고 달린다. 거칠 것 없는 광야를 휘몰아치는 강풍이 졸음을 깨운다. 그러고 보니 아침을 먹은 기억이 없다. 허기가 급격히 몰려온다.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3시간쯤 흘렀을까. 드디어 주유소와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브웨이와의 첫 만남이다. 주문 방식부터 생소하다. 영어가 가장 잘 되는 선배를 앞세우고 따라서 주문을 해 나간다. 건강한 맛이다. 가리는 야채만 없다 보니 한국에 상륙한 서브웨이를 만날 때면 첫 만남을 기억하며 모든 내용물을 선택하고 소스와 빵은 그날의 기분에 따른다.  


여행객에게는 그 나라 혹은 지역의 음식을 맛볼 권리가 있다. 미국에서는 권리 주장을 하지 않는다. 미국이 수출한 다양한 프랜차이즈를 통해 익숙해진 무난함으로 허기를 달랜다. 한국과 다른 현지의 맛을 찾아내는 예민함을 보여주는 동행들과는 달리 극강의 맛이 아니면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익숙한 맛 주위로 미국인의 일상이 펼쳐진다. 음식을 내려놓은 보상이다.


이전 10화 마트, 사막의 오아시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