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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Oct 11. 2021

바다 빛 당신 14. 해방

14. 해방

    

1945년 8월.         


“잘 다녀오세요~”

“아야 하호호 낫게 해 주세요~”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해서, 또 다른 연극을 선 보인 ‘성 데레사의 집’ 아이들이 천사의 옷을 입은 채로 나와 소리쳤다. 이번엔 어디서 좋은 천을 후원받았는지, 재봉실에서 쓰고 남은 넝마 조각, 남은 군복 안감 따위로 만들어진 예전의 무대복이 아니라 제법 그럴싸한 흰 옷들을 입고 연극을 했다. 아이들에게 천사의 날개를 지어 입히려고 밤을 새운 것이 분명할 마틸다 원장수녀님, 오트라 암만 수녀님, 푸룩투오사 수녀님, 양아가다 수련 수녀님도 찐 옥수수와 감자 보지기를 실어 주며 배웅했다. 요셉 수사님과 함께 떠나는 의료 왕진길. 한 여름밤의 개구리처럼 왁자글한 배웅을 뒤로하고, 동길은 원라선 철도가 난 방향을 따라 오토바이를 몰았다.    


이번엔 요셉 수사님이 동길의 뒤에 앉아 허리를 붙들고 계셨다. 단순한 방법으로 친절을 베풀어준 요셉 수사님 덕에 동길은 송죽리까지 오토바이를 제 손으로 몰아 보게 된 것이다. 삭발례를 마친 동길의 까까머리엔 시원한 바람이 술술. 흙길에 숨겨진 돌멩이엔 덜컹덜컹 엉덩이가 튀어 오른다.    


“베드로, 이게 최선인가? ”    


초보자 동길에겐 간이 쫄리고 오금이 떨리기 시작하는 이 속도를 요셉 수사님은 등 뒤에서 느긋하게 즐기시고 계신다.

   

오토바이로 산골 구석구석을 왕진 다니신 지 십수 년이니, 요셉 수사님에겐 위험해 보이는 비탈길이나 협소한 흙길도 내 집 앞마당임에 틀림없다. 처음 그분을 보았을 때, 몸 전체를 따라 부드럽게 흐르던 잔잔한 빛을 느꼈던 동길은 요셉 수사님의 ‘남자다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수도자가 조선시대 샌님은 아니겠지만, 고요하고 섬세한 동작과 침묵 중의 미소 등을 연상해 보면, 인간적으로 모난 내면이 하느님의 파도에 수차례 다듬어져 동글동글 해질 동안, 외적 행동 또한 나붓해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지례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사님은 동길이가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몇 번의 오토바이 사고를 내셨는데, 한 번은 얼굴을 크게 갈아엎었고, 또 한 번은 뇌졸중을 후유증으로 남길 만큼 심하게 다치셨다고 한다. 소임 중에 잠깐씩 졸도하시는 것은. 그러니까 과도한 업무량도 있지만, 사고의 영향도 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한 속도를 즐기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시니, 동길이 눈엔 오십 줄 남자의 수도복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멋지기만 하다.


하긴, 청년시절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수만리 떨어진 식민지 사람들을 위해 배에 몸을 싣는 것은, 웬만큼 가슴이 뜨겁지 않고서야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동길은 자신의 열기도 수사님 못지않음을 보이려는 듯 다시 한번 속도를 올린다.        

 

“예수 수사님 오셨다. 예수 수사님!”    


해송과 산죽이 나지막한 언덕을 메우고 있는 송죽리에 오토바이가 들어서자, 시동이 꺼지기도 전에 아이들이 뛰어나와 소리친다. 요셉 수사님의 이름을 부러 ‘예수 수사님’이라고 불러대는 건. ‘그래야 아픈 데가 더 빨리 낫는다.’는 이 마을의 미신이다. 수사님이 얼굴을 붉히며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십수 년 반복된 만남에. 마을 사람들은 능숙하게 천막을 치고, 가장 큰 상수리나무 밑에 임시 진찰소를 만든다. 왕진 가방 안에 수녀님들이 싸 주신 옥수수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아는 것은 당연지사. 개 코를 킁킁대며 먹을 것부터 찾는 아이들에게 줄 세우기를 시키는 일은 동길이 몫이다.

 요셉 수사님이 볏섬 들 듯 아이를 들어 올려 눈 맞춤을 하는 동안, 지팡이를 짚은 마을 노인들이 굽어진 허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차례차례 걸어 나온다.   


“신부님이 골짝까지 찾아오시니께니, 몸 둘 바를 모름둥.”   

 

매번 하는 인사를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되풀이하는 것은 그네식 예의다. 요셉 수사님은 사제가 아니라고 몇 년을 말해 왔지만 산골짜기 마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외진 곳에 살수록 물정도 어둡거니와, 이왕 어두운 물정 복잡하게 알려들 지도 않고, 믿고 싶은 데로 믿는 것이 골짜기의 미풍양속인 것이다.  


“딘작에 죽어야 할 몸이, 얼굴을 또 내밀디요.”   


안 그래도 가누기 힘든 허리로, 면목 없다며 꿉벅 인사를 하고는, 할머니들은 요령 좋게 수사님을 둘러싼다. 염치 불구. 수사님이 악수해 주는 손을 조금이라도 먼저 잡고 싶기 때문이다. 손 한 번 잡아보고, 품에 한 번 안겨 보고, 수도복 한 번 만져 보는 게 행복인 노인들과 아이들. 포위되다시피 한 요셉 수사님을 멀찍이 지켜보던 농우회 회장이 벼 밭에 참새 떼 가르듯 무리들을 물리치며 가 선다.    


“수사님. 코흘리갠 내려 노쿠요,

 구들장 지고 드러누운 막돌이네 좀 봐주시라요.”    


“허리가 아직도 아프데요?”    


“주신 약으로 대충 갈무리는 했다니요. 문제는 처남 이디요.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병신 되부러써요. 읍내서 다리를 잘랐는데도 허벅지가 썩드래요.”   


왕진 가방을 챙긴 수사님의 손을 잡아끌고, 진료소에서 멀어지는 농우회 회장을 동길이 바라본다.    


“동간도서부터 소련군한테 밀려서리,

 부대가 패배하구서는, 산길로 내리 달려 도망을 쳤지 아니함.

 죽자살자 청진에 당도해서 기차를 타려는데,

 느닷없이 소련폭격기가 때렸다드래요?

 적십자에 이송되면 신변이 탄로날까봐서이,

 그 다리로 도망을 해서는 그제 밤에 도착했디요.

 집 마당에 들어서자 까무러친거를 제 누이가 보고서는

 급한 대로 읍내까지 우리들이 들쳐업고 달렸는데.

 의사가 다리를 잘라야 산다기에... ”    


멀어지며 하는 소리를, 동길은 귀를 세워 듣는다.

 학도병이면 갓 스무 살이 넘었거나, 그 보다는 조금 어린 동길이 또래의 나이일 지도 모른다. 소련군의 참전으로 일본 북만주 부대가 동북지방에서 격파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 전투의 피해자는 아직도 조선인 청년들이다. 애석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이를 치료하는 것은 수사님의 몫이고, 간이 진료소 앞엔 동길 몫의 환자들이 이미 늘어앉았다. 미열이나, 치통, 허리 통증, 설사 등의 잔병을 들고 나온지라, 간호지식만으로도 처치할 약과 투약할 주사 정도는 놓을 수 있기에 동길은 최선을 다해 눈앞의 환자들을 돌본다.    


“모기한테 피를 너무 많이 빨리면 학질이 옮을 수도 있단다.”

    

밤새 산모기의 공격을 얼마나 받았는지, 드러난 팔만 해도 수십 개의 붉은 반점을 가진 앙상한 어린애의 팔을 잡아당겨 시원한 소독약으로 씻어내고, 연고를 발라 주는데.   

 

“피울 쑥이나 있어야, 모기를 쫓지 아니함?”    


먹물 뿌림을 여러 차례 당한 얼룩진 삼베 저고리를 걸쳐 입은 제 오빠가 옆에 서서 거든다. 모기를 쫓기 위해 쑥을 피울 것도 없다는 소리를 동길에게 하는 것이다.  

 

“피울 쑥이 있으면 쑥개떡을 해먹지비.”    


영양이 안 좋아서 외려 퉁퉁 부은 어미가 맞장구를 친다.   

  

“쌀도 없이 떡은 무슨 떡이야요.”

“진흙에 발라도 있기만 하몬 아이 먹겠슴?”    


그 말에 줄을 선 사람들이 와~ 웃고, 동길이는 어쩔 수 없이 가져온 파리 잡는 약과 빈대 잡는 약을 꺼낸다. ‘몇 병 되지 않으니 동리에서 사이좋게 갈라 쓰세요.’ 할 새도 없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없어지고 만다. 먼저 집은 사람들은 설날 세뱃돈이나 받은 듯 좋아서 깡충댄다.    


“내래 저깟 소독약 말고, 먹으면 힘이 나는 약으로 주시라요? ”   


이번엔 얼굴에 병 빛이 있는 마을 노총각이다. 땅도 없고, 힘도 없고, 돈도 없어, 장가도 못가고 혼자 늙어 버린 이 총각은 여인네보다도 마른 체구로, 일을 해야 하니 힘나는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동길은 비타민제 며칠 분을 처방해 준다. ‘좀 더 주시라요.’ 염치를 부려 보다가도, 밀어붙이지는 못하는 성격인지, 동길이가 ‘뒷사람을 생각해야지요.’ 하자, 그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간다.    



지주들이 척식 회사와 금융조합에다 땅을 모조리 팔아 버린 덕에, 죄다 품팔이가 된 농민의 처지라, 보릿고개가 따로 있을 리 없다. 호박 줄기와 여름 콩으로 죽이나 쑤어 먹으며 부자인 8월. 황달 걸린 눈에 신부전증까지 겹친 아낙이 부기가 빠지지 않은 팔에 주사한 대 맞고는 배추를 심으러 간다.   올 겨울에 거두려고, 땡볕에 심는 이 배추가 유일하게 허락된 조선인의 먹거리다.


일본인들은 배추와 무만 빼고, 쌀, 옥수수, 수수, 감자 등 조선 땅의 논밭에서 나는 모든 작물을 3/4씩 공출해 갔다. 공출되고 난 나머지를 땅 주인과 소작농이 갈라 먹으니, 농사꾼에게 떨어지는 몫은 아예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군서기관이니 감독관이니 하는 사람들이 일본경찰들과 함께 대동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구획을 정하고, 무슨 조합의 지주들과 쑥덕쑥덕한 후에. 밭에 나는 농작물도, 산 나무도 주민들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시장에서도 매매가 가능한 농작물은 채소뿐이었다. 육류와 수지, 기름의 판매는 엄금되었다.   


농민이나 어부나, 광산의 노동자나 조선인은 모두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받게 되었는데, 근로자들의 수입 통장은 매월 특수 경리계원에게 검열을 받았다.


직공부터 영세 상인까지. 조선인은 모든 수입을 일본 당국에게 바치고 눈곱 같은 돈을 자신의 것으로 되받을 수 있었다. 어림 반 푼도 안 되는 그 돈으로 자기가 기른 밭의 농작물과, 자기가 잡은 고기와, 자기가 캐낸 석탄을 다시 사야 했다. 조선인은 나라를 빼앗길 때, 자신의 몸. 자신의 노동력. 자신의 언어. 자신의 권리를 모두 빼앗겼다.


동길은 굶주리는 농가에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제 식량으로 싸온 주먹밥까지 꺼내 주고 만다.         

동길에게서 더 나올 것이 없자, 어른들은 각자의 밭으로 돌아가고, 갓난이를 업은 어린 여자애들만 둘레에 남아 장난질이다. 요셉 수사님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 걱정이 된 동길은 의료기구들을 가방에 쌌다.   

      

애 업은 애를 길잡이 삼아, 막돌이네를 찾아가는 길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린다. 쌕쌕이가 지나가나 싶어 하늘부터 올려다본다. 동길은 동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신경이 곤두선다. 소련군의 비행기가 여기까지 내려온 것인가?

일본과 소련군이 조선의 동북지방에서 가열찬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기찻길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청진. 그곳의 전투가 원산까지 번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등줄기를 타고 본능적인 소름이 돋는다. 밭일을 하느라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농민들도 호미를 든 채 하늘을 본다. ‘여차하면 피신이다.’ 심정으로 주변을 휘둘러보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전투기가 없다.        

이어. 사이렌 소리가 그치더니 남자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조선말이 들렸다.     

    

“  에에. 에. 알립니다. 알립니다.

   마을 주민들께 알립니다.  

   대한제국은 해방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아, 동길과 애 업은 애가 서로 본다. 농민들도 멍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공식적인 발표를 조선말로 하고 있는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대한제국이 해방되었다고 하니 더욱 놀라운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이 오늘 아침 미국에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

   

마이크 주인이 바뀌는 듯 잠시 잡음이 들리더니, 이번엔 다른 목소리의 남자가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식자층인 누군가임에 틀림없는 말투로.   


“ 언컨디셔널 서렌더.

  무조건적인 항복.

  지금은 언컨디셔널 서렌더 상황입니다.

  여러분, 대한제국은 자유를 찾았습니다.

  일본은 패배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만세!!!! ”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만세 삼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깨달은  밭에 노총각이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보니끼니, 아침부터리 순사가 아이보이지?”   


그 말에, 모자챙을 위로 젖히며 할아버지가 맞장구친다.    

 

“감독관도 밭일 검사하러 아니 나왔지비?”   


동길의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순간. 애기 업은 애가 팔을 높이 든다.   


“만세!!!”   


어린것의  목소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도, 매미소리 말고는 사방이 조용하다. 그 소리에 총을 들고 나타나는 순사가 없다. 위협하는 비행기 대신 창공을 떠다니는 솔매 한 마리. 아이는 신이 나서 함박웃음이다.   

  

“대한독립 만세!!!”   


한 번 더, 손을 올리자, 밭에서 일하던 농민들이 호미를 던지고 뛰쳐나온다.   


“만세!! 만세!!!”   


애 업은 애를 또 들어 올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농민들. 동길이를 끌어안고, 목이 찢어라 소리치는 아낙들! 흙바닥에 몸을 눕혀. 이 땅이 이제는 내 땅이다!!! 소리치는 할아비들.

     

“만세!!!!”   


동길도 그 소리를 따라 해 본다. 아무도 입을 막지 않는다. 누구도 들어 올린 팔을 꺾어 내리지 않는다. 자유다! 진정한 자유가 왔다.       



둥! 둥! 둥!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

이어 귀를 깨우는 꽹과리, 파동 깊은 징소리가 들리더니. 파아란 하늘로부터 온 누리에 쏟아부어지는 맑은 햇살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저 푸른 산비탈 밭길 사이로 요셉 수사님을 데리고 갔던 농우회 회장이 지게에 한 청년을 이고서는 걸어온다. 다리가 없는 그 청년이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면,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이 꽹과리와 징을 치며 만세! 를 화답하다. 청년의 눈에 흐르는 눈물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밭에서 일하던 농민들과 부엌을 지키던 처녀들과 마을의 교사와 요셉 수사님과 동길이와 모든 사람이 밭길 한가운데서 만났다. 그들은 얼싸안고 춤을 추며 만세를 불렀다.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위축되었던 팔다리를 사방으로 펼쳤다. 감추었던 소리들이 목 밖으로 터져 나왔고, 산 메아리가 다시 화답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장단을 빨리 한 아리랑은 그 어떤 노래보다 흥을 돋운다. 동길도 수련복 안주머니에 차고 다니던 소금을 꺼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얼쑤! 마을 회관에서 잔치를 벌인다는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춤을 추며, 징을 치며, 북을 두들기며, 피리를 불며, 노래를 부르며 뛰었다. 날았다.   


일본제국의 무조건적인 항복이, 식민지 조선인에겐 무조건적인 기쁨이 되었다. 언컨디셔널 조이. 언컨디셔널 해피니스. 동길은 괜히 영어로 ‘언컨디셔널 서렌더’에 대구가 될 만한 지금의 이 심정을 영어로 맞추어 본다.

 새처럼 날고 싶어 덩실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쁨에 기쁨이 퍼져 나간다. 너의 웃는 얼굴이 나를 웃게 하고, 행복에 행복이 더해진다. 얼씨구! 쿵덕! 절씨구! 쿵덕! 해방된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아리랑 춤판. 아라리 노래판.  온세 상을 향해 방출되는 우리들의 자유.



너나 없이 한 몸이 된 우리들 사이에서 요셉수사님이 동길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무조건적인 기쁨에 겨운 동길에게 수사님은 침착한 어조로 말씀 하신다.    


“ 내 오토바이를 타고, 동생에게 가 보렴.

  위험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미리 걱정하지는 말고.”   


덜컥! 멈추어 버리는 심장.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요셉 수사님의 진심어린 눈동자만 보였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동생의 처지를. 이제야 깨닫고는 선득해져서 수사님께 목례하고 급히 오토바이가 있는 상수리나무를 향해 뛰었다.    


해방된 사람들의 기쁨이 언제 분노로 바뀔지 모른다. 설마, 유순한 조선인들이 잔혹하게 복수를 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동안 너무나 당한 것이 많았다. 고문 받고, 처형되고, 수탈당하고, 착취당하고, 학살당한 수 만의 생목숨들. 그들의 가족들. 그 상황에서 가해자인 일본인의 위로자요, 대변자 노릇을 하며 진실을 호도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발바닥으로 동족들의 목줄을 짓밟은. 그 대가로. 뻔뻔히 자기 배를 채운 친일파들이.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동길은 원산을 향해 내 달렸다. 동생에게 가는 길에 사고로 먼저 죽을 순 없었으므로, 최대한 신경을 집중해서 앞에 놓인 돌 뿌리를 피해 갔다. 그러나 속이 타서 속도를 줄일 수가 없었고, 몇 번의 휘청거림과 아슬아슬한 사고의 위험을 피해 대로변에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신작로는 거리 마다 흰 빛이었다. 비실용적인 흰 옷을 입는다는 이유로, 일본당국의 방침에 따라 강제로 먹물뿌림을 당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제일 좋은 여름 흰 저고리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왔다. 저마다 팔을 올려 만세를 불렀다.


태극기가 함성 속에서 물결치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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