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군대 예능을 보던 어느 저녁이었다.
조교들이 훈련병으로 들어온 연예인들에게
고함치며 고된 훈련을 지시하는 장면이 나오자
아들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나도 몇 년 뒤면 저기 가겠네.”
말투도 가볍고, 표정도 담담했다.
순간 나는 슬쩍 바라보았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아들 얼굴이
왠지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그러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들이 유치원생이던 어느 날,
비슷한 장면을 TV에서 보다가
“나도 커서 군대 가야 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었다.
그날 밤,
군대 가기 싫다며 이불 속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작은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데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군대라는 건 남자들에게
하나의 과정이겠구나.’
그 ‘남자들의 시간’은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 질문은
아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안의 오래된 ‘나의 시간’들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무게감 있는 감정들을
가슴 깊숙이 안고 살았다.
부모님이 크게 다투는 날들이 잦았고,
그 싸움은 금세 몸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삭히지 못한 분노의 기운은
가끔은 나에게까지 번져오곤 했다.
맞지 않으려고 동네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나를
몽둥이를 든 엄마가 쫓아오던 날들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그 당시의 나에게는 사치였다.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린 나는 너무 작았고,
그 상황들을 이해하거나 멈출 힘도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난리가 한순간에 멎는 때가 종종 있었다.
바로 할머니나, 이미 나이가 있는 고모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누가 소리친 것도,
누가 억지로 막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거센 공기가 잦아들었다.
어린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할머니들은 세상이치를 다 아는구나.”
“저렇게 나이가 들면 사람 마음을 이해할 수 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마음을
모두 꿰뚫어보는 존재,
한마디 말 없이도 폭풍을 잠잠하게 만드는
‘할머니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때부터 내 꿈은 하루라도 빨리 할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스무 살 무렵,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정직원으로 일하던 23살 언니는
풀메이크업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손님에게는 따박따박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손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미소만 짓던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스물셋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나이만 먹으면 어른스러워지겠지.”
하지만 스물셋이 되던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 모습과 말투도, 입고 다니는 옷차림도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불안도, 조심스러움도,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분노도…
모두가 그대로였다.
그때 알았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린 날부터 가슴 깊이 품어왔던 ‘할머니 환상’은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이제 그 꿈은 더 이상
내 미래를 지탱해줄 환상으로 치켜세울 수 없다는 것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친구들과 20대 마지막을 기념하며
밤을 지새우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날은 마침
내가 공무원이 된 첫해의 연말이었고,
불과 두 달 전에 인수인계받은 업무를
마감까지 처리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미안해. 나 오늘 못 갈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아무 이룬 것도 없이 서른이 되는 것도 서러운데
20대의 마지막을 유쾌한 친구들과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순식간에 우울감으로 밀려왔다.
30살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친구들과 함께 해야
조금은 더 밝은 마음으로 30대를 맞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막연한 기대 혹은 미신은,
혼자서 30대 시간 속으로 돌입하는 것은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기차에 어영부영
올라탄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
뭔가 나 혼자라도 어떤 의식을 치러야겠다.
딱 1월 1일 0시가 되면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고 말해주자.
그렇게라도 해야
액운이 비켜갈 것 같았다.
그런데...
부리나케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을 3분 넘긴 시점이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개라도 한번 갈라져야 맞는데,
사방은 그저...
고요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 순간 다시 깨달았다.
그저 2006년에서 1초가 지나
2007년이 되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나의 ‘어른 시기’는 언제일까?
지금의 나는
나이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걸지 않는다.
스물셋도, 서른도, 마흔도, 결국은 숫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변하겠지”라는 기대 대신,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으로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선택 중 하나가
내가 준비하고 있는 ‘명예퇴직’이다.
나는 원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인데
계급성이 짙은 조직사회에서
그 성향을 너무 오랫동안 눌러두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에너지를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방향을 위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매일이 바쁘지만 신바람나게 즐겁다.
설렘도 있고, 긴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그 변화의 시작이
내 50대의 시작과 함께 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50살을 기다리게 만드는,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만든 ‘기대’가 되었다는 것을.
군대 예능을 보며
담담하게 “나도 저기 가겠네”라고 말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나이가 너를 어른으로 만들어주진 않아.
어른스러움은 선택의 힘,
그리고 자기 삶을 직접 설계해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야.
그러니
네 인생의 주도권을
네 손에 꼭 쥐고 살아라.
엄마는 꽤 늦게야 이런 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너희는 조금 더 일찍 자신을 믿었으면 해.”
내 얘기를 한참 듣고 난 뒤
아들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짧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세상이 정말 변했구나…
고맙다.
치열했던 내 어린 날의 고민이
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어 주었다는 것을
그 순간 알았다.
어린 날의 내 시간도,
지금의 시간도
그저 세상에 고마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