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추석 연휴를 맞아 김해 시댁으로 향하는 차 안.
시어머니는 작은 모텔을 운영하신다.
방이 열여덟 개나 되는,
겉만 보면 근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벽마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취객의 발소리,
지독한 소독제를 머금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게다가 최근에는
달방 손님 몇 명이 빠지면서
하루에 치워야 할 방이 부쩍 늘었다.
추석 연휴가 7일이나 되면서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그래서 이번 추석엔
삼형제가 돌아가며 하루씩 청소를 돕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우리 차례였다.
평소 같았으면 ‘청소 아주머니를 부르지, 왜 가족들까지 고생시켜’ 했을 텐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런 말을 내밀기가 참 어려웠다.
"아빠, 내가 도와줄까?"
“어제는 누나가 아홉 개 방을 청소하고 갔다던데,
오늘은 몇 개나 될지 모르겠네.”
로봇청소기는커녕, 그 흔한 진공청소기도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운전대 위로 손을 올린 채
남편이 무심히 중얼거리자,
아들이 뒷좌석에서 고개를 들며 물었던 말이다.
남편은 나더러 모텔일은 아예 거들지 말라고 했다.모텔 특성상 지저분한 것이 많기도 했지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일손처럼 여기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예전에 몇 번이나 도와주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차 안에 조용히 남았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구슬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피자 한 판으로 허기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들은 뒷좌석에서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하티 오늘 엄청 많이 일했어.
녀석, 나름 힘들었는갑다.”
남편이 룸미러 너머로 아들의 자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듣자 하니, 오늘은 여덟 개 방을 청소했는데
화장실은 남편이, 객실은 시어머니와 아들이 맡았다 한다.
딸 나티는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결국 남자들만 위층으로 올라가, 험한 일을 함께한 셈이었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우리가 부탁했으면 모를까,
스스로 “도와줄까?” 하고 먼저 묻는 일은 없던 아들이었다.
무슨 일이 아들을 이렇게 바꾼 걸까?
그런 궁금증 끝에,
며칠 전 우리가 함께 본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제목은 〈어쩔 수가 없다〉.
25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해고된 한 가장, ‘만수’의 이야기였다.
자동화로 인한 대량해고, 경쟁의 심화,
그리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가 교차하는 이야기였다.
만수는 가족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수만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부자였지만,
어느 날 살처분 명령으로 만 마리의 돼지를 땅에 묻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경제적으로 힘든 유년기를 보낸 만수는
‘나는 절대 무책임한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 다짐했을 것이다.
그가 원하던 자리에 취직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죽인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말처럼 ‘어쩔 수가 없었다’는 감정의 뿌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배우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어도,
가족만큼은 풍족하게 살게 하겠다’는
절박하고도 자기희생적인 마음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희생’이라는 프레임이
결국 또 다른 비극을 낳았기에,
그 사실이 더욱 슬펐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조금 버겨운 주제가 아닐까 싶어
영화가 끝난 뒤 소감을 물었다.
중2 딸은 “별로야.” 했고, 고1 아들은 “재밌었어.” 했다.
어떤 면에서 재밌었다는 걸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 있어?” 하고 묻자
잠시 생각하던 아들이 말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왜?”
“그냥.”
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익숙한 속담이라 떠올렸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 속담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어려워진 집안을 돕기 위해 벌인 도둑질로
감옥에 갈 위기까지 처했지만
겨우 선처를 받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훔친 휴대전화들을 묻은 땅 위에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심는다.
아들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죄 위에, 금단의 열매로 불리는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건
아들에게 부끄러움과 속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떠올려보면,
아버지를 해고한 회사의 이름은 ‘태양’이었다.
그날, 햇빛이 눈부셔 눈을 찡그리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자신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소년이 아버지의 고단함을 함께 짊어지며,
‘남자’로 성장하는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은 어쩌면 그 장면 속에서,
말로만 듣던 ‘남자로서의 책임’이란 게 무엇인지,
아버지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부부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들의 세계는 또 다른 결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끔 내 아버지와 남편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던 노래가,
오늘은 아들 덕분에 다시 떠올랐다.
허니패밀리 〈남자 이야기 - My way〉
이 세상 내아버지가 살던 세상
이 세상 내자식이 살아갈 세상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죠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 중략 -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난 나이를 먹고
평범한 가정에 가장이 되어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
이들을 위해 난 땀을 흘리며 살고있죠
마치 내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지금 그길을 걷고 있는거죠
그리고 내아들 역시 걸어갈 길이겠죠
이 한남자의 인생의 길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그 말은 어쩌면,
아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먼 훗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 앞에서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다짐일 수도...
여자로 태어난 숙명이 있듯,
남자로 태어난 이들에게도
감당해야 할 숙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남자든 여자든,
결국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