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허브러빈스

나는 경상도 여자다.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다.

‘사랑해’보다는 ‘밥 묵었나’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이를 낳기 전까진

내가 이토록 무뚝뚝한 사람인지 몰랐다.


드라마 속 엄마들은

아이에게 매일같이 “사랑해”를 말하고,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널 믿어”라며

포근하고 넉넉하게 아이를 감싸 안는다.


우리 엄마는 달랐다.

내가 엄마에게 뭔가 따지듯 말하면

“가시나, 니는 많이 배웠다 아이가. 그런 것도 이해 못해주나?

학교에서 잘~ 배웠다! 참 똑똑하데이!”

이런 말이 되돌아왔다.


그래. 나는 배운 사람이니까.

엄마와는 다를 줄 알았다.

드라마로 배웠으니까,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줄 알았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 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쓸 때마다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되지”부터 내뱉었다.

내 말투는 단호했고,

어쩌면 너무나 냉정했다.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넘쳤지만,

그 마음은 좀처럼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안에 진짜로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엄마—그러니까 아이에겐 외할머니인 친정엄마는

늘 말로는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면서도

정작 내가 다른 선택을 하려 하면

“그건 안 된다”, “내가 잘 안다. 이게 더 낫다”며 선을 그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큰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느라

새벽이면 별을 보고 일하러 나가고,

밤이면 별을 보며 집에 돌아오셨다.

그 모습은 언젠가 학교 교과서에서 봤던

북한 사람들과 닮아 있었다.


속마음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무언가에 늘 쫓기듯 살아가는 얼굴들.

무엇을 하든 남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하는 삶.

그 고달픔이 우리 집의 공기 속 어딘가에 스며 있었다.


땅을 일구며 그 큰 빚을 다 갚고도 남아,

집안 형편은 점점 나아졌다.

스스로 집안을 일으켜 세운 자부심과

고된 세월의 경험은

엄마를 점점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 아니면 안 된다’,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으로 굳어졌고,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엄마의 의심과 반대부터 마주해야 했다.


그 기억들은 내 마음속에

불편한 그림자처럼 길게 남았다.


나는 그런 걸

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점점 더 단호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아들은 사춘기다.

같은 집에 있지만, 서로 나누는 말이 많이 없다.

나도, 아들도 자기 마음을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내가 싫어했던 방식이

이제는 다른 얼굴로 내게 돌아온 느낌이다.


집에서 무던히도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 문고리를 계속 당기는 기분이었다.

살살 힘을 주면 꿈쩍도 안 하고,

있는 힘껏 당기면 부서질 것만 같은 그런 문.


어느 날,

자식과 대화가 끊겨 카페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도 아들과 한동안 카페에 가보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좋아할 만한 음식을 차려놓고

“맛있지? 학교 어땠어?” 하며 말을 걸어보았지만,

아들은 “괜찮아” 혹은 “그냥…”

짧은 대답만 남기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대화’를 시도한 것이 아니라

‘답’을 끌어내려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말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린다고

쉽게 열리는 게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열 때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그 아이 마음 속에.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문은,

“집 안”보다는 “밖”에서,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차 안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볼 때

스르륵, 열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 아이는

툭,

분수처럼 속마음을 흘려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말 대신 발을 맞춰서,

내가 아닌, 아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그게,

내가 알아낸

사춘기와 대화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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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