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독립 만세!
“에이, 그러면 100년도 안 된 거네.”
아들이 툭 내뱉은 그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혀 심장을 간질였다.
‘음~ 꽤 괜찮은데?!’
심장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기어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느라
나는 한동안 “흡! 흡!” 하며 숨을 삼켰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또 웃겨서,
결국엔—
푸하하!
참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순간의 반항기,
자신만의 논리,
그리고 은근한 자존감까지—
아들이 던진 그 한마디 안에는
형형색색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럴 때가 참 좋다!
아이들이 내 말에 자기 근거를 들어 반박할 때!
말하자면, 그 반박이란 건
아이가 비로소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아니야”라고 말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왜냐하면…”으로 운을 떼기 시작할 때,
나는 그 순간을,
자라나는 존재의 내면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찬란한 목격의 순간처럼 느낀다.
그 반박 속엔,
그 아이만의 논리가 있고,
책에서 베낀 문장이 아니라
자기 경험에서 길어 올린 어휘가 있으며,
무엇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때로는 말끝을 흐리고,
때로는 허술한 근거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그 모든 시도 자체가 반갑다.
그건 엄마로서 말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그 반박 안에는,
말보다 더 또렷한 아이의 자아가 살아 있다.
그날, 우리는 대구 교남YMCA 회관 앞을 지나고 있었다.
191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2017년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겉모습은 최대한 원형을 살려 남겼지만,
1층에는 독립운동 관련 기록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당시에 쓰였던 회의 공간이 복원돼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이곳이 단지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치열함과 열망이 깃든 장소임을 전하고 싶었다.
“그 시절엔 너 또래 아이들도 있었단다.
책 대신 선언문을 들고, 회의실에서 자유를 논하던 사람들이 있었지.”
하지만 아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딱히 관심이 생기진 않겠지…
그래서 다음에 한 번쯤 같이 들어가 보자며, 나는 말을 아꼈다.
그때 남편이 슬쩍 농담처럼 말했다.
“하티야,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니까
벌써 100년이 넘었다, 신기하제!”
그 말에 아들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툭— 내뱉었다.
“그럼 100년 안 된 거네. 복원했다면서.”
나는 빵 터졌고, 곧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이 단순한 반항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 앞에서,
아들은 ‘복원 여부’로 그 시간의 깊이를 새롭게 판단한 것이다.
그래, 맞는 말이지. 복원한 거라면 지금도 유효한 ‘현재성’이 있는 셈이니까.
요즘 아들은 어디에도 잘 가지 않으려 한다.
“아니! 네버! 노!”
이건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
그야말로 절대진리 같은 단어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돌아온 아들의 얼굴에는
성적보다 더 깊은 자존심의 흔들림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
그 아들을 어떻게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곧 ‘공부 시간’은 아니다.
물론 책을 조금은 들춰보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스마트폰과 함께 흘러갈 것이다.
남편은 “그냥 공부하게 두자”고 했지만,
나는 그 느슨한 시간 속에 스며드는
습관의 무서움을 안다.
시간이 많으면, 생각은 그만큼 더 흩어진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집중하게 되는 법이다.
마감이 있는 숙제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것처럼—
여유가 많을수록 오히려 집중은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거의 ‘통보’하듯 말했다.
“대구 가자. 네 방은 네가 청소하고, 다 같이 레몬이랑 자몽 손질하고,
12시 반에 출발할 거야.”
아들의 입이 쑤욱— 댓발이나 튀어나왔다.
그래도 쭐래쭐래 아빠, 엄마를 따라나섰다.
참 고맙고, 은근히 배려심 있는 아들이다.
다른 아들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일 수도 있는데…
날씨는 화창했고, 배는 든든했다.
시끄러운 음악이 가득한 차 안에서도
졸음은 자꾸 따라왔다.
눈꺼풀을 쫓아내며 운전하는 중에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너무 지겨워하면 어떡하지?’
내가 설계한 이 하루가,
그 아이에겐 단지 귀찮은 하루로만 남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내준 걸 고마워해야 할지,
억지로 끌고 나온 걸 미안해해야 할지, 헷갈렸다.
입은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시계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랜만에 찾은 달성공원이었다.
입장료조차 없는 그 공원은,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우리가 자주 데려가던 곳이다.
사자, 호랑이, 곰, 독수리, 토끼, 새들—
크고 선명한 동물들 앞에서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이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진짜? 너, 달성공원 기억 안 나?”
그런데 정작 아들은 기억이 없단다.
그 말을 들은 남편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에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던
그 늙은 호랑이가 이제는 새로운 개체로 바뀐 것까지 또렷한데,
그 시절의 주인공인 아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허탈하면서도 묘한 시간차가 느껴졌다.
우리 부부의 기억은 그토록 선명한데,
정작 아이에게는 그 시간이
아무런 잔상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아렸다.
그렇게 공원으로 향하던 길,
우연히 교남YMCA 건물 앞을 지나며 나눈 대화.
아들은 뜻밖에도 ‘현재의 질문’을 던졌다.
“복원한 건물인데 100년 된 거라고 말해도 돼?”
그 한마디가 내겐 묘한 울림을 남겼다.
문득 음악 표절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멜로디의 네 마디만 비슷해도 ‘표절’이라며 지적한다.
“이 부분, 어디서 들어본 거랑 똑같잖아.”
단 몇 초, 단 몇 음이 겹쳐도
그 음악은 새롭지 않다고,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건물은 다르다.
외벽만 남기고 안을 새로 고쳐도 ‘근대문화유산’, ‘100년 건물’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사람들은 감탄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누가 살았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보다
겉모습이 과거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사’라는 이름을 얻는다.
왜 음악은 단 네 마디만 겹쳐도 새롭지 않다고 지적받는데,
건물은 기둥 하나만 같아도 '오래되었다'고 감탄을 받을까?
기준은, ‘겉’일까? 아니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억’일까?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옆에서 걷고 있는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지금의 아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혹시 복원된 건물처럼,
과거의 기준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물음은
아주 오래된 이미지 하나를 떠오르게 했다.
예전에는 아들 또래 아이들이 무언가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명확한 시대적 요구 앞에 서 있었다.
어떤 선택은 주어지기도 전에 결심처럼 되어버렸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가 또렷한 시절이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를 던졌다.
강의실 대신 감옥에서,
학원 대신 회의실에서,
자신의 오늘을 걸고 내일을 논의했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을까?
지금 아이들은 전쟁 대신 경쟁을 겪는다.
검열 대신 점수표를 두려워하고,
입시와 비교, 모의고사와 AI 앞에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선택의 자유는 주어졌지만,
그 자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비교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이 손해인지부터 고민하는 시대다.
나 역시 어릴 때
‘왜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대답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정보와 기회가 넘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도 지금 아이들의 눈은 왠지 더 불안해 보인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선택지는 훨씬 넓어졌지만—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과 불확실성까지
아이들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일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 ‘무엇이든’이라는 말 안에는
명확한 방향도, 기준도 없다.
결국, 그 무한한 가능성과 정보들은
자유가 아니라,
불안을 키우는 장치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필요한 독립은 나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무기력에서의 독립,
불안에서의 독립,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의 독립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우리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 아이가 ‘지켜야 할 자기 자신’을 먼저 믿게 해줘야 한다는 걸.
그 믿음이 생겨야
비로소 자신만의 방향을 찾을 수 있고,
그 방향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포기하고, 시도해 볼 계기가 생긴다.
그게 지금 아이들에게 가능한,
아주 조용하고 개인적인 ‘독립운동’이다.
복원된 건물을 향해
“100년 안 된 거네”라고 말하던 아들의 시선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과거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다.
기준이 아닌,
존재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가 조금씩 말문을 열고,
그 말에 내가 웃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아주 잘 걷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