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야우햐야 우아헤맏우야애.”
외계어도 이렇게 체계가 없진 않을 진대,
그 둘만 뜻이 통하는 건지 갓난쟁이 우리 아들은
까르르 숨이 넘어갈 만큼 웃었었다.
연년생인 내 동생은,
아들이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부터
그 이상한 언어로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이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어른도,
아이가 처음 배꼽 잡고 웃게 만든 사람도 동생이었다.
아들에게 외삼촌, 그러니까 내 동생은 가장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외가에 가서, 둘은 한몸처럼 붙어 있었다.
낡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마우스를 붙잡고 웃던 모습.
그 웃음이, 내겐 종종 낯설기도 했지만
뭔가 아들을 뺏긴 것 같아 질투도 났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시간을 버리는 일 같고, 아이가 좀 더 ‘좋은 것’을 하길 바랐다.
책을 읽든, 밖에 나가 걷든,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든.
그런데 동생은 달랐다.
“누나야, 애가 컴퓨터랑 친해지려면 게임부터 해야지.”
“요즘 무슨 게임이 유행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아이랑 말하냐.”
“게임에서 이기려면 전략도 짜고, 공부도 해야 돼.”
그렇게 말하며, 동생은 아이 옆에 앉아 직접 단축키 세팅도 해주고,
속도를 빠르게 하는 법, 총을 잘 쏘는 법 같은 걸 알려줬다.
나는 그런 동생을 조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동생도 나를 답답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아이는 참 많이도 웃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떠났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말 한마디 없이.
낡은 컴퓨터만 남았고, 이제는 그마저도 멈춰 버렸다.
그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들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게임’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했다.
그동안 나는 게임을 단순히 피해야 할 것,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고장 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그 안에 담긴 시간이 단지 ‘놀이’만은 아니었음을 알 것 같았다.
동생과 나눈 웃음, 둘만의 방식, 그리움이 모두 거기 있었고,
게임은 그저 게임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던
하나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망설여졌다.
조건을 걸까?
‘게임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전제로.’
그런 말들로 무게를 씌워야만 내 마음이 덜 흔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아닌 것들로 이해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동생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말 없이, 그냥 주문했을 것이다.
외삼촌과 함께 컴퓨터하던 날에는
내가 있어도 거리낌 없이 게임에 몰두하던 아들.
외삼촌이 사라지자 내가 친정집에 자주 오는 것조차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그 컴퓨터 게임을 이제 내가 보는 데서도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내가 좀 더 아들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는 신호 같았다.
그리고 아들 역시,
외삼촌 없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컴퓨터가 도착하던 날,
아들은 커다란 박스를 직접 뜯고,
조립하고, 와이파이를 잡고, 게임 프로그램을 깔았다.
외삼촌이 대신 해주던 일들을,
아들은 설명서와 유튜브를 보며
차근차근, 혼자서 해결해 나갔다.
불이 켜진 방 안에서,
혼자 무언가를 배우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동생에게서 들었던 아주 오래된 말 한마디를 떠올렸다.
“게임부터야.”
컴퓨터의 시작이 게임이었듯이,
우리 관계의 시작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에서부터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것.
부모와 자식 사이도 결국,
'이기기 위한 전략'보다
'계속하고 싶어지는 재미'가 먼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