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계는 아마도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융계약서 체결은 개별 금융기관의 금융지원 약정 승인 이후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거액을 지원하기 때문에 개별 금융기관은 통상 (1) 신용위원회(credit committee)의 검토, (2) 이사회의 승인 절차를 거칩니다. 신용위원회는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거래 관련 위험들이 적절하게 경감되었는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고, 이사회는 해당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이 금융기관의 정책에 부합하느냐 하는 점 등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승인이 이루어지면, 금융종결까지 가는 과정의 8부 능선은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금융계약은 꽤 복잡합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 금융계약은 정교하게 리스크를 배분하고 또 이에 대한 경감 방안을 빠짐없이 담아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멍‘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이 작업은 변호사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PC 계약, O&M 계약 등 프로젝트 서브계약들과는 달리 금융계약은 금융기관이 직접 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계약에 대하여는 금융기관 직원들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1) 금융계약의 공통적인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한 번만 LMA 표준 계약서 등을 충실하게 학습하면 됩니다. 또는 기존 금융종결이 이루어진 사례를 찾아 꼼꼼하게 읽어보면 됩니다. 이 절차가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변호사들 또한 그 지점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금융계약의 대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현실적인 까닭은 다음 세 가지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선, 금융계약 체결 전결권은 통상 각 금융기관의 고위직 임직원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위 임직원의 서명을 받으려는 직원은 신용위원회 및 이사회에서 검토한 사항들이 금융계약서에 정확히 잘 반영되어 있는지 사전에 확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 통상적인 문구는 사업주 및 대주단 변호사들끼리 알아서 적당히 합의하지만, 이들은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은 대주단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기 때문입니다.2) 이때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융계약서의 기본 얼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3) 마지막으로 Term Sheet 협상을 보다 스마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과거 프로젝트 연계 리스크(project-on-project risk)에 대하여 협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당시 추진하고자 했던 A 프로젝트는 해당 프로젝트와는 사업주 구성을 달리하는 B 프로젝트가 정상적 완공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였습니다.4) 그렇기 때문에 대주단은 완공 테스트 실시 조건으로 B 프로젝트의 운영 데이터를 사업주로부터 받아 대주단의 기술자문사가 확인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B 프로젝트 사업주가 해당 자료를 A 프로젝트 사업주에게 제시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주단은 이 문제를 한참 고민하다, 해당 요구사항을 대주단과 B 프로젝트 사업주간 체결하는 직접계약(direct agreement)에 포함시키기는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B 프로젝트 사업주는 정보유출에 대하여 신경이 쓰이지만 대주단은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는지 이러한 방법에 선뜻 동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당초 사업주의 Equity Support Agreement의 ’완공보증‘ 섹션에 포함시키려 했던 내용이 최종적으로 Direct Agreement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던 기관이 바로 수출입은행이었는데, 이는 수출입은행이 금융계약의 구조에 대하여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여기서는 대주단이 체결하는 PF 금융계약서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모든 금융계약에 공통으로 포함되는 내용(예컨대, 차입금의 목적, 원금 상환방법, 이자 납부방법, 인출 절차 등)은 생략하고 PF 금융계약서에 특수한 부분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9-1. 공통금융계약(Common Terms Agreement)5)
(1) 유연한 상환방식
전력 프로젝트 및 government-pays PPP 방식의 현금흐름은 수요 리스크 또는 시장 리스크를 전력회사 및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반면에 수요 리스크를 프로젝트 회사가 지는 경우, 즉 oil & gas 사업이나 user-pays 민자고속도로 같은 프로젝트의 경우 유가 및 교통량에 따라 프로젝트의 현금흐름이 크게 변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DSRA를 설치해 놓지만, DSRA만으로 충분치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흔히 활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cash sweep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Cash sweep은 일종의 ’소프트한‘ 대출 원리금 상환 메커니즘입니다. 이는 당초 재무모델로 예측했던 것보다 프로젝트 상황이 우호적이면, 이때 발생하는 초과 현금흐름을 배당에 활용하지 않고 대주단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게 하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다음 대출 원리금 상환일이 도래했을 때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이를 갚을 수 없더라도, cash sweep을 통해 이미 갚은 금액이 원래 갚아야 할 금액보다 크다면 채무불이행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입니다. 유사한 방식으로는 대출원리금 상환방식을 TRS(Target Repayment Schedule) 및 MRS(Mandatory Repayment Schedule) 두 가지로 운영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시장 상황이 좋을 때에는 TRS에 맞춰 대출금을 상환케 하고, 시장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는 MRS에 맞춰 대출금을 상환케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을 순연(deferral)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석유화학 산업 등과 같이 시장 가격 변동이 극심한 프로젝트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이는 시장 상황이 악화될 때 2~3회 정도까지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자는 내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신 순연된 금액을 상환기일이 도래하지 않은 상환스케줄에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는 약간 다른 맥락인데, 프로젝트에 보험사고가 발생하여 보험금을 받게 되었으나 프로젝트 회사가 공장을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융계약서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공장 복구에 사용되지 않는 보험금은 대주단 대출금 상환에 쓰도록 작성되는데, 이때 쟁점이 되는 것은 상환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주단은 보다 보수적으로 만기 역순으로 상환하도록 요구할 것이나,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상환스케쥴 순서대로 상환하는 것을 희망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 적절한 타협안은 잔여 상환스케줄에 안분시키는 것일 텐데, 이는 보험사고로 인하여 프로젝트 회사가 창출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 영구적으로 x% 씩 감소하게 된 것을 감안한 논리입니다. (그 결과 미래 DSCR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연한 상환스케줄,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상환 방식 등은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현금흐름 창출 능력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2) IDC (Interest During Construction)
IDC는 그야말로 건설기간 중 발생하는 이자입니다. 프로젝트가 건설되는 기간 중에는 벌어들이는 돈이 없는 만큼, 프로젝트 회사 입장에서는 이자를 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건설기간 중 발생하는 이자를 원금화하여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신규 프로젝트가 아니라 확장 프로젝트처럼 건설기간에도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라면 이자를 징수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IDC는 총사업비로 계상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IDC는 대략 총사업비의 15~20%를 차지하는, 건설대금(총사업비의 약 70%) 다음으로 비중이 큰 항목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젝트 건설이 지연되는 총사업비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 아니라 IDC 또한 마찬가지로 크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IDC 또한 프로젝트가 현금흐름과 크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3) 재무약정 (financial covenants)
재무약정은 기업금융에서도, 특히 채권발행시, 해당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쓰입니다. 다양한 지표들이 활용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표는 부채비율(타인자본/자기자본), EBITDA 마진율(EBITDA/매출액), 그리고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 등입니다. 첫 번째 지표는 기업의 재무안정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지표이며, 나머지 두 개 지표는 기업의 수익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낸스에서 가장 자주 활용되는 재무지표는 D:E ratio와 DSCR/LLCR입니다.
D:E ratio는 부채비율과 결국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자기자본6)7) 비중이 높을수록 사업주가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capital at risk가 크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쉽게 손을 떼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제7강에서 함께 살펴본 DSCR/LLCR은 프로젝트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점검하는 지표입니다. EBITDA 마진율과 이자보상배율이 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을 점검할 수 있는 지표인 반면, DSCR/LLCR은 수익성이 아닌, 대출원리금 상환능력을 점검합니다. 이를 이자보상배율과 비교해보면 기업금융과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관점 차이가 드러납니다. 기업금융의 경우, 차주 기업이 발행한 채권은 만기에 대환(roll-over)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채권 만기가 도래하기 전 이자 기일에 이자만 제때 받을 수 있으면 족하다고 보는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자보상배율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경우 원금과 이자 모두의 상환능력을 봅니다. 대환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며, 해당 프로젝트 현금흐름 이외의 상환 재원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D:E ratio, DSCR/LLCR은 금융계약서의 재무약정에 포함되게 되는데 제7강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완공조건, 배당조건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기업금융에서 이들 재무지표를 지키지 못할 경우 곧바로 EoD가 되는 경우와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용례 또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현금흐름을 매우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9-2. 계좌관리계약(Accounts Agreement)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사업주에게 소구 할 수 있는 상황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주단은 프로젝트의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프로젝트 계좌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주장합니다. 모든 현금은 대주단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되어야 하며, 해당 계좌에서 현금이 지출되는 것은 대주단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나아가 프로젝트 계좌들은 대주단의 담보로 제공됩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모든 입출금을 대주단이 일일이 감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신 일정 권한을 차주에게 맡기고, EoD 등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 미리 정한 cash waterfall 순서대로 지출을 허용합니다. 바로 이러한 계좌관리와 관련된 사항들을 정하기 위하여 계좌관리계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계좌관리계약에 포함될 내용을 공통금융계약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특히 대주단 대리인(agent bank)이 대주단으로 참여하는 경우, 그리고 공통금융계약의 준거법과 실제 프로젝트 계좌가 예치되는 곳의 준거법이 동일한 경우에 그러합니다.
계좌관리계약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다는 Cash waterfall입니다. 이는 제7강에서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주단과 계좌관리 은행 간의 관계입니다. 계좌관리 은행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프로젝트 관련 계좌와 다른 계좌 간 상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 프로젝트 계좌가 대주단의 담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EoD가 발생할 경우 대주단의 허락 없이 프로젝트 계좌에서 현금 인출이 제한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등을 약정하게 됩니다.
계좌관리계약 또한 현금흐름의 관리가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1) 반면, 프로젝트 서브계약들에 대하여서는 거래 관련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해 충분한 수준의 요약자료만 숙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2) 마치 대주단의 대리인(agent)가 행정적인 절차 이외 모든 결정은 대주단의 허락을 받고 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3) 예컨대 금융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best endeavour“ 또는 ”reasonable endeavour“ 중 어떤 문안을 써야 할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논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영국법상 거의 ”must“와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러한 문안 차이 때문에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1)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개도국에 소재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고, (2) 이 문안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매우 확실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주단이 자기 비용까지 써가면서 소송까지 진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예컨대 A 프로젝트가 석유화학 프로젝트이고, B 프로젝트는 A 프로젝트 앞 원유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인 경우 등입니다.
5) 공통금융계약서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들(즉, 금리, 수수료, 개별 대주단들이 독특하게 요구하는 각종 조건들)은 개별 금융계약서에 포함됩니다. 개별 금융계약서의 예로는 상업은행들의 commercial facility agreement, ECA들의, ECA facility agreement, 메자닌 금융을 제공하는 mezzanine facility agreement, 사업주들이 Equity IRR을 높이기 위하여 활용하는 EBL(Equity Bridge Loan) facility 등이 있습니다.
6) 사업주가 납입한 후순위대출 또한 자기자본으로 포함됩니다. 대주단은 이를 위하여 후순위채권자로서 사업주가 지니는 각종 권리를 제한합니다. 그 결과 주식으로 자기자본을 납입한 경우와 후순위 대출금으로 자기자본을 납입한 것이 대주단에게 법적/경제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합니다.
7)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이슈는 완공 전 발생하는 수입(pre-completion net revenue)입니다. 프로젝트는 재무완공 전 꽤 큰 규모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자본금으로 처리할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협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상황(완공보증 제공 여부) 및 협상력 등에 따라 그 처리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