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이해
미혼시절,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가 없던 시절부터
육아서를 읽고 육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될 것이니까
준비된 부모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글로 육아를 배우고 익힌 것이다.
주변에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여 임신한 친구에게
태교서, 육아서를 선물하면 "어머, 이런 책이 있는지 몰랐다.", "나보다 미혼인 네가 더 잘 알고 있네."
이런 반응이었고, 그래서 나 역시도 육아의 달인,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현실은 이론과 너무나 달랐다. 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들도 과연 직접 육아를 해보기나 했을까, 육아에 대해 탐구하고 논문을 쓴 것이 전부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예민한 아기, 느린 아기 부분은 대충 봤는지 내가 아는 지식과 맞는 부분이 없었고, 본격 육아를 할 때는 책을 펼쳐볼 여력이 없었다.
영유아기를 거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육아는 만만치 않다. "아이가 커간다고 해서 육아에 대한 고민은 없어지지 않는다. 진화할 뿐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좋은 점은 점점 사라지고 나쁜 점은 강화된다."라며 중고등 자녀를 키우는 지인들이 해주는 말은 그야말로 뼈를 때리는 명언이다.
교회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나태주 시인의 시.
<사랑에 답함>, <너를 두고> 두 편이 붙어 있다.
사랑에 대해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정의하고 표현했을까.
예전이라면 이 시가 연인을 향한 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명백히 자녀를 향한 부모 마음의 고백이다.
육아를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아이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그저 막연하게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마음?이랄까.
하지만 이 시를 읽으면 희생 외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아이를 위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가짐과 의지, 노력 등등
이 시를 읽을 때면 지난 한 주 동안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고운 말을 하지 않은 내 모습이 떠오르며 후회와 반성이 밀려온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때만큼은 싫은 것(나는 재미없지만 아이는 재미있어하는 콘텐츠 함께 보며 공감해 주기??)도 잘 참아주자,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해보자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