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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놔 Sep 05. 2022

봉숭아 물들이기 6년차 마스터가
선사하는 노하우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는 지금 이순간, 손가락은 붉은 봉숭아 빛깔로 물들어 있다. 뜨거웠던 여름 노을을 추억하듯 9월의 내 손가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다홍빛으로 존재감을 자랑한다.


손톱과 발톱에 봉숭아물을 들인지는 꽤 됐다. 2017년 여름이 처음이었으니 올해로 6년차다. 이제 봉숭아 물들이기에는 도가 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봉숭아 물들이기 6년차 마스터로서 노하우를 전달하려 한다. 우선 봉숭아 심기부터 시작하자.



봉숭아 심기

문구점이나 다이소에는 30분만에 간단하게 물들일 수 있는 봉숭아 키트를 팔곤 하는데, 나는 조금은 불편한 정석 그대로가 좋다. 매년 직접 심어서 꽃을 따고 씨앗을 수집해서 이듬해에 다시 심고 있다. 베란다 텃밭, 아파트 텃밭 어디든 내가 원하는 장소에 심어보자. 집에서는 프라이빗하고 소소하게 키우는 재미가 있고, 아파트 텃밭은 지력이 좋아 훨씬 튼실하게 키울 수 있다. 


출퇴근길에 눈인사 해주기

내 삶의 낙이 되는 절차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꽃도 마찬가지다. 올여름엔 아파트 텃밭에 싹을 틔웠는데, 그러다보니 누가 간밤에 우리 봉숭아에 해코지를 하진 않았나 꽃봉오리는 잘 맺고 있나 늘 궁금하고 늘 관심이 간다. 봉숭아 물들이기에 애정을 갖게 되는, 중요한 절차이다. 



봉숭아 꽃따기

여름의 한가운데 즈음 봉숭아는 탐스럽게 꽃망울을 터트린다. 이 꽃잎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수집을 하자. 꼭 붉은 꽃잎만 따지 않아도 된다. 푸른 잎도 붉은색으로 잘만 물드니까.



물들이기

여기서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1.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절구, 백반, 핀셋, 비닐장갑 2장, 테이프.

**비닐장갑은 손가락 부분만 잘라서 준비한다.

 


2. 절구에 꽃잎과 잎, 백반 몇 톨을 넣어 찧어준다. 

꽃잎과 이파리가 한데 뒤섞여 풀냄새가 진하게 날 때까지 찧어주자.  



3, 찧은 것들(편의상 친구들이라고 부르겠다)을 핀셋으로 손톱 위에 빈틈없이 꼭꼭 채워준다. 

다음 작업이 중요하다. 바로 손톱을 봉인하지 않고, 위에 얹은 이 친구들의 겉표면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것. 대략 20분 정도 가만 두면 된다.더 빠르게 말리고 싶다면 선풍기 바람을 이용해볼 것. 마르기 전에 막아버리면 마치 고추기름에 손을 담근 듯 손가락 전체에 붉은 물이 들어버리니 유의하자.



4. 겉이 말랐다면 미리 손가락 부분만 잘라둔 비닐장갑으로 손톱을 감싸 테이프로 여며줄 것

비닐 안에 있는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기를 촉촉히 머금기 시작해 딱 손톱 위에서만 물들기 적당할만큼의 습도를 간직한다. 이게 광합성이라는 것일까? 



5. 하룻밤 자고 일어나 깨끗하게 씻어주면 완-성

보통 8월말 - 9월초에 물을 들이면 첫눈이 오기 전에 다 사라져버린다. 다홍빛 손톱을 오래 보고 싶다면, 봉숭아 꽃을 넉넉히 따서 냉동실에 보관해둘 것. 늦가을즈음 냉동실에서 얼어버린 꽃잎들을 꺼내 똑같은 수순을 거쳐도 물이 잘든다. 




번외 1 

이 글이 부디 우리집 아파트 사람들에게도 닿길 바란다.아파트 사람들이 아무도 내 봉숭아를 따가지 않는다. 나는 이미 내가 필요한 양을 다 누렸으니 다른 사람들이 내 봉숭아를 따가서 손톱에 물들여주면 좋겠다. 여름날의 봉숭아 물들이는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번외 2

봉숭아를 키우기 시작하면 길거리에 있는 모든 봉숭아에 시선이 꽂히게 된다. 이내 반가운 마음이 들어 계속 사진을 찍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아주 축하한다. 봉숭아에 단단히 입덕해버렸다. 트럭에 가려진 봉숭아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고 굳이굳이 눈도장을 찍고 가게 된다. 길거리의 봉숭아를 포착하는 즐거움은 여름의 또다른 재미 요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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