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봉 샌드위치와 용서 (7-2)

by 산뜻


문래동 자취방.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눅눅하게 가라앉는다.

나는 집 앞에서 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생각한다.


'이젠 커피 마시는 것도 습관이네.

나, 이제 좀 세상에 섞인 걸까...'


잠봉 샌드위치를 씹으며 풍미를 음미하다

문득 추억이 떠오른다.


'그땐 더 꼬릿꼬릿했는데... 그건 하몽이었을 거다.

더 짜고, 더 기름지고, 혀끝에 자극적으로 남았던

생소한 맛...'


자연스럽게 과거가 떠오른다.

방송 작가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년째다.

나는 성적에 맞춰 적당히 중상위권 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했다가,

2014년, 22살에 자퇴했다.


사실 우리 집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등록금은 한 학기에 삼백만 원이 넘었고,

교재비, 통학비, 생활비까지 합치면 연간 천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부모님은 그 절반을 감당해주셨고,

나머지 금액은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다.


그 시절, 빛의 성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학업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전도와 모임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이었다.

그렇지만, 개인의 사정은 헤아려 주지 않았고

그들은 모든 걸 참 쉽게 말했다.


"너는 세상과 구별된 자야.

하늘의 일에 더 힘을 쏟으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거야."


그런데 그 모든 부담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가끔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돌덩이가 계속 얹혀지는

길을 가는 기분이 들었다.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죄인처럼...


그 기분은 신성하다기 보다는 억울하고, 괴롭고, 더러웠다.

대학생 2학년이 되자, 그곳의 분위기는 좀 달라졌다.

"학업보다 신앙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청년들에게 은근한 압박이 이어졌다.


그 무렵,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심했고,

학업을 이어가는 일이 부담으로 느껴져서

결국 대학교를 자퇴했다.


서류 두 장. 도장 하나.

그렇게 몰래 울면서 나는 나를 세상에서 지웠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나도 태연하게 행동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그땐 그 자퇴가 내 의지였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니었다.

나는 나를 속인 사람이었다.


나를 속이는 건, 다른 사람을 속일 때보다 더 교묘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물이 엎지러진 후였고,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공포심은 그 무엇보다

짙고 어두웠다.


그래서 나는 빛의 성전을 나온 후부터

병적일 정도로 일기를 쓰는 일에 집착했다.

나의 인생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내 삶에 대해 끊임 없이 기록했던 것 같다.

마치 일기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삶에 대한 증거인 것처럼.

그리고 나의 삶의 선택에 대한 흔적을 돌아보기 위해서 쓰고 또 썼다.


스무 살, 은혜 언니와 와인을 마시며 일탈을 맛보던 그때가, 혼란스러움을 자각한 초입이었다.


우리 집은 불광동 근처의 주상복합 건물, 501호였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낮에는 아래층 요리학원에서 칼질 소리가 탁, 탁, 탁 울려왔다. 그 일정한 리듬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 불안과 자꾸 겹쳐졌다. 옥상에 오르면 햇볕에 바짝 마른 빨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쳤다. 그 냄새는 집이란 곳이 나를 감싸는 동시에,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장소임을 늘 실감하게 했다.

이웃은 단 하나, 바로 옆 502호 은혜 언니였다.


그녀는 스페인에 파견 갔다가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한 지 2년 차였다.

빛의 성전의 국제 사명자였고,

해외 선교 사역과 신도 교육을 맡았던 전도사였다.

전도 되기 전에는 20대 초반에 3년간

스튜어디스로 일했기에 영어에도 능통했다.


밖에서는 항상 당당한 눈빛과 꼿꼿한 자세로 다녔지만, 나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502호에서 자주 들려오던 부부싸움 소리.

나는 그 소리로, 그들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은혜 언니가 자신의 집으로 스무 살이 된 나를 초대했다.


그녀의 집 거실 부엌의 테이블에는 치즈 플레터와 하몽,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한 병, 와인 오프너, 와인 글라스 두 잔이 꺼내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놀라서 말했다.


"우리 금주령이잖아요."


"괜찮아. 다들 뒤에선 마셔."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녀가 먼저

먹는 모습을 따라 하몽을 씹어 삼켰고,

와인도 한 모금 목구멍으로 흘려 보냈다.

입 안에 감도는 꼬릿한 풍미와 과실 향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입안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맛있지?”


나는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웃으며

"응, 맛있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사실 속마음으로는, 꼬릿한 향이 생소하고 맛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습관처럼 가면을 쓴 듯이 행동했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렸고,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황급히 베란다로 나갔다.

아마 통화내용은 내가 듣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들었다.

교태 섞인 그녀의 목소리를…


"아우, 나도 자기 보고 싶지... 남편 일찍 오는 날이라 못 나가. 응, 나도 사랑해..."


그 통화를 못 들은 척했지만,

순간 와인 잔 속 검붉은 액체가 피처럼 보였고,

입 안에 감도는 꼬릿한 향은 굳어 버린 내 온몸을 교묘히 감싸돌고 있었다.


그 언니를 보며 처음으로 느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도, 사람은 얼마나 많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심지어 나 역시 그런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 믿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언니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내 안은 상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

그날은 하몽의 꼬릿한 향 때문인지, 역한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추억을 떠올리다가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일어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하몽과 잠봉의 차이'를 검색한다.


잠봉은 날 것이 아니라 익힌 상태의 햄이며, 맛이 상대적으로 은은하다.

하몽은 날 것의 햄을 건조·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등급 체계가 존재한다.

거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하몽보다 잠봉이 더 맛있는데'라고 생각한다.


하몽은 혀끝에 기름진 풍미와 짠 기운이 느릿하게 퍼지면서, 입 안에 어쩐지 묘하게 비린 기운이 남는다.

나는 그 맛이 생소했고, 불편했지만 억지로 즐기려 했다.

반면, 잠봉은 훨씬 담백하다. 씹히는 결도 부드럽고, 끝 맛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음식일 뿐인데도 그 둘의 차이에서 나의 취향이 드러난다. 나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잠봉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서야,

나는 입 안 가득했던 풍미가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텅 빈 샌드위치 봉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가 거의 져 있다. 문래동의 초가을 공기는 조금은 서늘하고,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엔 어쩐지 오래된 냄새가 섞여 있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과거에 내가 왜 그랬는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치열하게 생각해 본 결과, '진짜 내 마음을 몰랐구나'라고 결론 짓는다.

형식, 가면, 규율, 위선… 그런 단어가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도,

빛의 성전에서 나오고 난 뒤에야 인지했다.


물론, 그 시절을 지난 내 자신에게도

아직 죄책감이 남아 있다.

왜 좀 더 빨리 진짜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모든 말을 경계 없이 흡수했는지...

그래서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먼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몽과 비슷한 듯 다른 이 잠봉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자꾸 찾는 이유는…

더 단단해진 내가 되고 싶어서일까.


나는 그 시절의 부모님도, 그들도,

그리고 나까지 모두를 용서하고 싶은 거다.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그 시절의 나 자신도

마침내 놓아주기 위해…




※ 《경계에 선 사람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에 연재됩니다.

혹시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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