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는 부족한 사람
그리고 엄마가 여동생을 저장한 이름은 ’여우공주‘였다. 그 당시 나는 그 이름들에서 엄마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순하고 잘 따르는 아이.
’착하다’
그런데 그 평가가 나에게 조금 겉돌 뿐 그렇게까지 기쁘거나 공감이 되진 않았다. 그저 착하다는 건 뭘까, 내가 왜 그렇게 느껴진다는 걸까? 의구심만 남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알아내려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 어떤 이유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반 친구들에게 롤링페이퍼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많은 글 중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배려심이 많다’
안경을 쓰고 단발머리에 조용하지만 이성적인 한 여자 애가 적은 칭찬이었다.
칭찬이기에 좋으면서도 내게 그런 면이 있나? 언제 그렇게 느낀 거지 하고 궁금했다. 떨어진 펜을 먼저 주워주고, 붐비는 매점을 돌파해서 친구들 것까지 건네주고… 그 정도는 누구나 하지 않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나이가 더 들은 시점에서 나는 그 말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스스로 갇혀서 ‘나는 이렇게 보이니까‘라는 생각에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고 무의식적으로 나를 움직였던 듯하다. 아닌가. 나는 어쩌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통해 그것을 확인받으려 했던 건 아닐까?
타인의 평가는 제쳐두고, 나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을 듣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1. 책임감. 어렸을 때 가사를 책임져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이건 책임져야 해‘ 하는 내면의 양심이 나를 항상 붙잡는다.
2. 상처. 마음이 여리지만 표현할 길이 없어서 고스란히 견디며 살았다. 그래서 외로움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내면에 겹겹이 많다. 그렇기에 더욱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한다.
3. 예민함. 기본적으로 감각이 예민하게 열려있고, 이를 자연스럽게 타인을 향해 쓴다. 예를 들어 상대가 말하기 전에 물을 챙겨주거나, 지나가는 말로 뱉은 상대의 취향을 기억하고 선물로 주는 식이다.
4. 정. 기본적으로 마음을 쓰며 살면서 ‘처음’에 대해 더욱 의미 있게 느낀다. 그래서 혼자 지나간 인연을 추억하기도 한다.
5. 존재감.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한 마디로 나는 나의 배경과 성향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착하다’라고 느껴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을 어떻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경험한 세계가 진실이 될 뿐이다. 장님이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 ‘코끼리라는 동물은 얇고 넓고 펄럭거리는 모양이구나‘ 여기는 것과 우리가 과연 뭐가 다른 걸까? 또한 나만 해도 관계적이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책임감이 발동되지만, 기계적인 업무라고 느끼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올라온다. 한 인간도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