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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Oct 30. 2022

구 관계들

의식의 흐름을 따라 배설하는 연애 일기

나는 H에게서 커다란 불안을 느꼈다.

나는 S에게서 커다란 미움과 불신을 보았다.

그리고 M을 정말 사랑했다.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는 사랑.  


H는 첫 남자친구다. H와 있을 때는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곤 했다. 한 겨울 극장에서 발이 시리다 내뱉은 한마디에 주저없이 커다랗고 따뜻한 손으로 발을 주물러 주던 그. 그도 나처럼 예민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는데 그는 한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강요하는 법도 없었다. 내 마음이 먼저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만날때는 항상 밝은 얼굴로 반겨주었다. 큰 키에 긴 팔을 머리위로 흔들 때 이마까지 내린 머리칼도 함께 흔들렸다. 그 모습이 커다란 강아지가 집에 들어온 주인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 같아서 우스워보이기도 했다. 그는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이 상하면 헤어질 때 급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땐 그가 참 사소한 일에 반응한다고 여겼다. 그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짐작하지 조차 못했다. H와 헤어진지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수수께끼 같던 그의 행동과 말들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게 수면위로 떠오른다. 그는 나를 사랑했었던 것이다. 받지 못하고 위축되는 사랑.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랑. 그것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알았다, 그 마음을. 아마 타들어가는 지옥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최선은 다했지만 상대방처럼 온 마음이 상대방을 향하지는 않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그들에게서 안정감을 느꼈지만 관계에서 즐거움보다는 고뇌를 얻었다.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그를 가장 좋아하고 존경해서 시작된 관계였지만 그 마음은 만남과 동시에 변해갔다. S가 점점 미워졌다. 불만을 느꼈다. 부담스러워졌다. 아무리 서로 좋아한다고 해도 속 안의 것들을 오픈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것임을 우리가 알았더라면. 우리는 겉으로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배려했지만 상대방을 원하는 마음에 눈이 멀어 충분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배려가 아니라 혼자 느끼는 배려를 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가장 싫어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돌아보면 H를 향했던 커다란 불안도 나의 것이었고, S에게서 본 미움과 불신 또한 나의 것이었다. 나는 당시 그것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느꼈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다란 불행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M을 향했던 마음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그만큼 그를 품어주지는 못했기에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다양한 것들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이름표를 붙이고 살아간다. 구 관계들이 힘들었던 것은 내가 사랑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불안한 내 세계에 빠져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은 그런 모습을 내게 보여준 것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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