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뒤 갠 하늘은 아름답다
아홉 번째 일기
비가 내린 뒤 갠 하늘은 아름답다.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하늘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하늘의 채도나 투명도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구름의 모양, 크기, 색깔 역시도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기상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사진도 찍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은 안쓰럽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움직이고 걷는 사람들은 참 불쌍하지 않은가.
경직된 정서와 물기 없는 감정. 혼자가 되어가는 세상에는 무엇이 관여하고 있을까 생각한다. 어떤 존재가 변하기까지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하나하나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기록해야 할 일이다. 스마트폰은 그것을 발명하고 사용하는 인간들을 모두 비(非)스마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똑똑하다고 부를 만하다. 이름을 잘 지었다. 인간이 탄생시킨 인공지능도 생각해 보았다. 인공지능은 훗날 인간을 넘어서고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이건 어느 사이비 종교나 음모 집단의 뒷공작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어느 사이비 종교나 음모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인공지능이 나에게 "인간은 과연 쓸모가 있는 존재입니까?" 그렇게 물어도 너무 놀라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 순간 나는 이미 심장마비 따위로 죽어 있을 것이기에 인공지능은 내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이다.
하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인공지능 이야기로 샌 것인가? 나는 그저, 너무 멀리 있는 것들만 응시하느라 정작 눈앞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보물인 줄 알고 끌어안고 있다가 뒤늦게 끌어안아야 했을 존재를 전부 놓쳐버리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게 무엇이 되든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회의 동물은 바로 나. 스스로 저주하는 말을 쏟아낼 시간에 하늘이라도 한 번 더 봤으면 좋았을걸, 이걸 할 시간에 차라리 저걸 했다면 더 좋았을걸, 그런 말은 정말 무의미하고 한심하고 아둔하다. 나는 머지않아 스물다섯 살이 된다. 반오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구태여 나이를 절반으로 잘라 세는 방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반오십이면 늙은 것인가? 오십이면 정말 늙었다고 말할 수 있나? 오십이면 반백 살이라고 하는데 백 살까지 장수한 사람들은 과연 박수를 받아야 하는가, 조롱을 당해야 하는가.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세상에서 온갖 병을 달고 지지부진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괴로운 삶이 아닐까.
너무 깊은 생각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것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를 심어두면 그 또한 징그럽게 뿌리를 뻗어간다. 그렇게 내 머릿속을 아주 은밀하고 철저하게 잠식한다. 아름다운 하늘을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는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일생은 어디로도 튀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나의 장례식장을 상상해 본다. 파란 하늘이거나 붉은 노을이거나. 비는 쏟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