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쓴 글을 읽지 못한다
열 번째 일기
나는 내가 쓴 글을 읽지 못한다. 이 글 또한 완성하고 나면 절대로, 다시는 읽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짧게 산책했다. 평소보다 길게 카페에 머물렀다. 카페인이 몸에 잘 받지 않아 ―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각성하는 느낌이 든다. ― 여느 때처럼 복숭아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평소보다 차가웠다.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얼음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대신 아이스티의 양은 줄었을 것이다. 어쩐지 싱겁고 밍밍한 맛이었다.
카페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노래가 이렇다 할 순서나 정렬 없이 뒤죽박죽 섞여 나왔다. 발라드 장르의 팝송이 나왔다가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 나왔다가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팝송이 나왔다가 빠르고 강렬한 힙합과 잔잔하고 서글픈 발라드가 번갈아 나오는 식이었다. 사장이나 아르바이트생이 노래의 중요성을 모르는 듯했다. 자영업의 마케팅에는 매장 분위기와 어울리는 적절한 음악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가. 내가 카페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아이유의 노래가 가득 퍼지고 있었다. 들어갈 때 나온 노래는 아마 블루밍, 나올 때 나온 노래는 아마 비밀의 화원. 그녀의 노래와 목소리가 좋다.
음악과 노래는 영혼을 치유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맹신하는 수준이다. 그것들은 한없이 짧은 수명을 지닌 나를, 무려 지금까지 살아 있게 만든 것에 크게 기여했다. 나는 나의 장례식장에서 틀 노래 목록도 신중하게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하지 않을 테다. 만약 하더라도 내가 손수 정성을 들여 만든 노래들은 하나도 틀지 않을 것이다.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나의 마음과 영혼 일부가 담긴 플레이리스트는 고심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냉정하게 외면당하리라.
그러나 선명하게 새겨진 나의 수많은 시간들은 남겨진 자들의 의도대로 처참하게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목록을 완성하지는 못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 많은 노래와 음악이 추가되거나 빠질 것이다. 매일 목록은 변할 것이고, 내가 죽을 때까지도 미완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득 내가 어떤 계절에 죽어야 좋을지 궁금해진다. 여름에 죽었는데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는다면 시신의 부패도 빠르겠지. 나의 마지막 모습은 살점이 썩어 들고, 사체에 구더기가 모여들고, 끈적하고 악취가 풍기는 체액이 흐르다가 말라붙은 불쾌하고 끔찍한 모습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나마 죽음이 싫어졌다. 지저분한 삶을 살고도 깨끗한 죽음을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이자 욕심이다. 지저분하게 살았던 인간의 최후가 결코 깔끔할리는 없다.
나의 마지막은 하얀 눈이 펄펄 휘날리는 한겨울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