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팀장
여덟 번째 일기
계 팀장. 아무리 개인적인 일기라도 타인의 실명이나 나이를 밝히는 것은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애석하게도 성과 직급으로만 그를 언급한다.
그는 누구인가. 회사에 입사한 지 육 년 만에 팀장이 될 정도로 유능한 ―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온갖 귀찮은 잡무와 책임만을 떠맡아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팀장직에 반강제로 앉은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인 듯 보이는 ― 계 팀장. 그의 성장과정이 심히 궁금하다. 도대체 어떻게 자랐기에 저토록 뒤틀린 인간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 '계'라는 희귀 성씨는 금상첨화다. 계 팀장을 싫어하는 직원들이 칭하는 그의 별칭은 운명처럼 계새끼가 되었다. 조금 순화한다면 계스테릭이나 계식이나 계놈이 정도가 있다. 다만 나는 그를 계새끼나 계스테릭이나 계식이나 계놈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계 팀장이라고 말한다.
가족사를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다. 계 팀장은 누나 셋을 둔 막내아들이고, 적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린 사람이다. 그러나 소문을 좋아하는 옆 부서 박 팀장에 의하면 아내의 허영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은 부부싸움을 하고 다섯 살 된 아들은 성정이 난폭해 유치원에서 친구를 때렸다는 둥 누구를 깨물었다는 둥 문제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죽하면 같은 유치원생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항의가 심해서 학교도 아닌 유치원을 한 번 옮긴 적도 있을 정도라고. 사춘기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남았는데 벌써 문제아 기질을 보인다니, 아내와의 갈등과 직장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계 팀장이 저토록 지랄 맞게 변한 것이라면 아주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계 팀장의 인성은 근본부터 살짝 뒤틀린 느낌이다. 자기 기분 안 좋다고 남에게 막말하며 스트레스 해소하는 어른으로 자란 인간을, 성장 환경이나 특별한 사정까지 고려하며 이해하고 해량할 아량까지는 없다. 나를 보라. 화목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지만 계 팀장처럼 되지 않았으며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모 내지는 주 양육자의 학대가 한 인간의 성장에 얼마나 끔찍한 독이 되는지는 지긋지긋할 만큼 잘 알지만 그렇게 성장한 모든 사람이 계 팀장처럼 자라지는 않는다. 그러니 계 팀장은 이미 타고난 성품 자체에도 어딘가 결함이 있었음을 확신한다.
그를 밤송이처럼 깔 의도는 없었지만 변명할 도리 없이 까는 글이 되고 말았다. 유서 일기라고 이름 붙인 글에 계 팀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으면 왠지 그가 나의 죽음에 일조한 공범이 되는 기분이라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는 확실히 지랄 맞은 인간이고 갑자기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할 정도로 꼴 보기 싫은 상사지만 어쨌든 그는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나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랄 맞으니 괜찮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정서적 안정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아내의 허영기가 조금만 잦아들고 아들이 조금만 더 얌전해진다면 계 팀장의 발작적인 흥분과 지랄 또한 조금은 사그라들 테니까. 그렇게 믿고 있지만, 내가 죽기 전까지 그런 기적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자의 욕심은 얼마나 끝도 없는가. 인간을 가장 숭고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척박하고 지저분한 수렁 밑바닥으로 파멸하게 만드는 존재가 무엇인지 안다. 질투와 시기와 욕심. 한 사람의 인생은 산산조각을 넘어 가루가 되어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무언가를 시기하고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연기처럼 흩어지는 영혼조차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죽어서도 산 자를 향한 질투와 시기와 욕심을 꺼뜨리지 못해 아주 악독한 영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었을 적부터 지독했던 인간은 육체가 죽으면 반드시 영혼까지도 죽어야 한다. 그래야 이승에 남은 자들에게 피해가 없다. 계 팀장의 아내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어디서부터 망가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고 살아 있을 때는 남편을 끈질기게 괴롭힐 것이다. 물론 계 팀장도 마찬가지다. 계 팀장은 피해자가 아니다. 내 눈에는 그저 동조하는 자에 불과하다. 그들 사이에서 자식으로 태어난 난폭하고 자기중심적인 아이는, 안타깝게도 내가 판단할 소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