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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Sep 14. 2024

일곱 번째 일기

끔찍한 날이다


일곱 번째 일기

 

끔찍한 날이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뜨거운 찜통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가? 일단 내가 죽지 않았으므로 아직 죽을 정도의 더위는 아니지만, 때로는 죽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기온과 땅을 걸으면서도 익사할 듯한 습도는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불쾌지수가 아니라 미침지수가 생겨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죽지 않았지만, 세상에는 분명 더워서 죽는 사람도 존재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별안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그대로 방치되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열 살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돈을 벌거나 물을 얻기 위해 이글거리는 땅바닥을 맨발로 걷는다. 몇 시간씩 걷는다. 광활한 농장에서 몇 초도 쉬지 못하고 걷고 오르고 자르고 베고 담고 옮기며 산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광경이 믿기지 않는 것은 내가 그런 세상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거나 겪거나 살아보지 못한 건 쉽게 와닿지 않는 두꺼운 피부를 가지고 말았기 때문에.


어떤 섬에서는 아직도 염전 노예가 존재한다. 성행하듯이 사람을 부리고 몰아세우고 죽으면 그 시신을 내다 버리면서 산다. 그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몇백 년 전에는 노비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더워서 죽는 사람들과 추워서 죽는 사람들과 힘들어서 죽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무엇이 나의 사인이 될지는 모른다. 나는 오만한 인간들의 최후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며 남몰래 희열을 느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아마 나를 혐오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여하튼 날씨 이야기를 계속한다면, 여름에 태어났지만 한순간도 겨울보다 여름을 사랑했던 적이 없다. 에어컨을 제외한 그 어떤 융통성도 통하지 않는 이기적인 계절.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끔찍한 한여름을 마주하게 되었다. 에어컨을 구매하면 어떨까. 지금 나의 재정 상태로는 불가능할뿐더러 지구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돌고 있다. 모든 기계는 힘 있게 돌아가는데 정작 그 기계를 만들고 설치하고 쓰는 인간들은 힘이 없어서 지구는 언제나 힘의 불균형에 시달리며 괴롭힘을 당한다.


늘 그랬듯이 선풍기로 버텨보자 다짐했지만, 선풍기에서는 정말 미지근한 바람이 나온다. 선풍기는 이미 뜨거워진 공기를 이용해서 덜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장치일 뿐이지 뜨거운 공기를 차가운 바람으로 변환시키는 환상의 도구가 아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인류를 원망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에어컨을 발명하고 무선 통신망을 구축하고 우주까지 진출한 인간이 고작 전기세 덜 나오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는 작은 에어컨을 발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원망한다.


지금은 너무 더워서 허리에 얼음을 가득 채운 비닐을 수건으로 감싸 올려두었다. 오래된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내가 누운 방바닥은 높은 체온 때문에 그새 뜨뜻해졌고 땀 때문인지 습기 때문인지 끈적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 끔찍한 날이다. 낮이 너무 길다. 차라리 저 햇빛으로 광합성이 가능했다면 나는 여름을 지금보다 덜 싫어했을 텐데. 인간은 잘못 진화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뒤틀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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