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일기를 쓴 날이 벌써 한 달 전이다
열한 번째 일기
열한 번째 일기를 쓴 날이 벌써 한 달 전이다. 저번 주 금요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연락이 왔다. 전화는 아니고 문자였다.
그래도 생일인데 가족끼리 만나서 식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엄마가 보낸 문자였는데, 말투가 꼭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어머니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반가움이나 기쁨에서 우러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어차피 부모님과는 절연 수준으로 사이가 소원한 마당에 차라리 나도 부잣집 자식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아빠는 회사원이고 엄마는 자영업자이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몇천만 원의 대출금이 있었고,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전부 상환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자와 더불어 갚다 보니 지금도 원금을 다 상환하지 못한 상태라고 안다.
부모님은 나에게도 대출금 상환을 위해 돈을 몇 번 빌려 간 적이 있다. 그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나에게 돈을 받아갈 때도 고맙다는 인사치레조차 한 적이 없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문제는 은근히 덮어버리는 게 부모님의 오랜 수법이다. 애초에 돈을 받은 적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나오길래 나 또한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마 아빠와 엄마는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돈에는 상환할 의무 따위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결코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가 될 수 없고, 자식이 부모에게 생활비를 주고 뒷바라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만, 부모는 자식을 일방적으로 태어나게 했으니 최대한 잘 키우는 것을 일종의 책임으로 짊어지고 시작하는 입장이다. 태어나게 해 주었다는 이유로 금전적인 보상과 부양을 요구하는 건 상당히 이기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다간 낳아준 은혜부터 시작해 너 키우느라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는 둥, 너 키우는 데에 들어간 돈이 네가 빌려준 돈의 몇십 배라는 둥 과장스러운 불만과 한탄을 토로하며 나를 죄인으로 몰아갈 게 뻔했다. 사이가 돈독하거나 애틋한 부부는 아니지만 나를 몰아세울 때는 그토록 잘 맞는 콤비가 없다.
작년 생일은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고향으로 내려간 날은 단 하루밖에 없다. 그것도 평생 챙기지 않았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는 그들이 법적 부부로 이어진 날에 그들이 가장 과격하게 부서지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한평생 서로를 만난 것을 후회하고,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나를 낳아 키운 것을 후회하면서 지독하게 붙어사는 우스운 꼴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신경을 건드리는 방법을 안다. 의도적으로 속을 긁어놓을 수도 있다. 그들이 어떤 말을 들으면 분노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좌절하는지 안다. 남들에게 좋은 부모처럼 보이고 싶은 부모님의 과분한 욕심을 잘 알고, 그러다가도 몇 분만 지나면 금세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모습을 드러내는 모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 또한 지겹도록 보면서 자랐으니까.
올해는 부모님을 만났다. 먼저 연락해 놓고는 오랜만에 보는 자식에게 반가운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얄미웠다. 어쩌면 엄마도 내가 거절하기를 바라면서 연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연락하기 싫다면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될 일인데, 부모님은 워낙 고지식한 사람들인지라 그래도 가족이라는 말을 억지로 입에 붙이고 산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말하면 마음이 약해질 줄 아는 것이다. 그래봤자 그동안 없었던 유대감이 갑자기 생겨나거나 내가 효도를 행하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꾸 쓸데없는 기대감을 품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왜 아직도 애인이 없냐면서 슬슬 결혼할 생각이 없냐는 엄마의 말에 나는 물었다. 엄마는 결혼해서 행복하냐고. 덕분에 식사 자리는 편안한 침묵이었다. 누구도 말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하면 삶이 달라진다거나 자식 낳고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면서 슬그머니 나에게 죄책감을 전가하려는 아빠의 시도는 시큰둥한 대답에 볼품없이 사그라들었다. 그 대답은 명백한 나의 저의를 담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계속 이렇게 알아서 살아가라는 속마음. 그것은 부모님의 삶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철저히 방관하는 나의 마음을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덕분에 부모님은 식사하는 내내 속이 불편했을 것이며 당장이라도 내 뺨을 때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으리라 확신한다. 부모님은 밥을 먹자마자 그릇도 치우지 않고 ― 이건 확실히 엄마에게 불효스러운 행동이긴 했다. 아빠가 집안일을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 일어나 먼저 가보겠다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주방을 향해 외쳤다.
그래도 내가 태어나서 엄마랑 아빠는 행복하지?
'했지'가 아니라 '하지'라고 말한 것은 고의였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얽매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뒤틀린 마음이다. 알면서도 일부러 내뱉었다. 이런 점에서는 아직도 내가 부모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고 느낀다. 우리는 너무 심하게 엉키고 얽혀서 영영 풀어지지 못할 사이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 말로 인해 부모님의 마음은 문드러졌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생채기는 남겼다. 그날 밤 부모님은 아주 크게 싸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부모에게 상처를 주며 쾌감을 느끼는 자식이라니, 말만 들으면 이토록 끔찍한 인간이 있나 싶다. 내 주변에 나 같은 인간이 있었다면 분명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내 삶에서 나만큼 나를 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즐거웠다.